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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이근후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평점 :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각자 살아간다 해도, 우리 모두는 대부분 같은 사회 안에서 비슷한 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각 단계마다 연령마다 보편적으로 느끼는 갈등과 행복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한 명의 인간이자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동료로서 당신처럼 인생의 사계절을 보내왔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어떻게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나름대로 정성들여 편지를 써봤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인생의 사계절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띄우는 나의 편지입니다. -p, 9
네팔 사람들은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눈다고 한다. 사람이 100살까지 산다는 가정 하에 인생을 4등분하여 마치 사계절처럼, 25살까지의 봄, 50세까지인 여름, 75세까지인 가을, 그 이후의 삶을 겨울이라 하는데 이에 따르면 나는 이제 봄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사계절 중 하나의 계절을 보냈을 뿐인데도 나는 스스로에게 수많은 물음을 던져왔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선택해나가는 것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사라져가고 '과연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이런 선택을 하는 게 맞는걸까?' 등등의 물음과 함께 누군가가 나의 삶에 이래라저래라 해도 좋으니 조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부모님이 내 삶에 조금이라도 간섭을 할라치면 난 되려 자유를 속박당한 억울함에 불만을 토로하곤하는 딜레마에 처하곤 하기에, 그저 누군가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내가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에, 내가 혼자 이겨내기 힘든 어려움에 힘겨워하고 있을 때 조용히 다가와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인 것이다.
이런 내 바람을 들어주는 책을 만났다. 정신과전문의 이셨던 이근후 박사님의 책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마지막 계절을 보내고 있는 이근후 박사님께선 이 책을 통해 앞서 자신이 미리 겪어낸 계절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또한 자신과 같은 계절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조언과 위로와 충고가 담긴 따뜻한 편지를 적어주셨다.
인생의 계절 중 봄을 보내고 있는 난 역시, 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적은 편지들을 읽으며 내가 그동안 품어왔던 수많은 고민과 물음에 대한 답을 해주는 듯 해 그동안 답답했던 부분들을 시원히 긁어주는 듯 했고 여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적은 편지들을 읽을 땐 그 계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 오빠가 떠올랐고, 가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적은 편지들을 읽을 땐 역시 그 계절을 보내고 있을 우리 엄마, 아빠가 떠올랐고, 겨울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적은 편지는 사실 아직 나에게 너무나 먼 이야기라 와닿지는 않았지만 우리 부모님이 읽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살아가는 동안에 누구나 인생의 사계절을 보내야한다. 그때문인지 내가 이 책을 다 읽고나선 권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떠올라 누구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어야할지, 그 다음 타자(?)를 정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결국 이 책은 엄마에게 돌아갔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이 책의 이름을 알려주어서라도 꼭 읽어보라고, 꼭! 꼭! 읽어보라고 말해주리라.
한 번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 수 없는 우리는, 매순간 영원 속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한정된 현재를 영원 속에 새기는 것이 인생이니,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있을까요? -p, 27
내가 만나고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내가 사는 세상입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의 범위는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폭과 깊이에 의해서 좌우된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좋은 세상에서 사는지, 나쁜 세상에서 사는지, 그것은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상대방의 세상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좋은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과 좋은 일들을 해나간다는 말로도 바꿔볼 수 있겠습니다. -p, 42
하지만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간입니다.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부모만 늙는 것이 아니라 자식인 나도 늙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느꼈던 부모의 깊이나 넓음은 점점 희미해지다가, 이제 내가 늙었다고 생각할 즈음에는 흔적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자식은 이런 부모를 측은하게도 보고 분한 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측은한 감정은 나이가 든 부모에 대한 공통된 정서일 것입니다. 분하다는 것은 어렸을 때 느꼈던 그 당당하고 깊고 넓은 당신을 볼 수 없어 생기는 자기 분노입니다.
시간은 흘러갑니다. 부모도 늙고 나도 늙어갑니다.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생각해봅시다. 이제 그들은 당당하게 나를 학습시켰던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세월 앞에 담담하게 사그라지면서도 자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한 노인일 뿐입니다. 여전히 부모로서 기대를 한다면 그것은 욕심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망감만 쌓일 수 있습니다.
부모는 우리가 유아일 때 서투른 것에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기고 귀여워하며 돌보았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보호해주는 사람에서 보호를 받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달라져가는 부모에게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있을까요?
스스로 하나의 비밀을 품어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부모는 내가 돌볼 자녀가 되어간다고. 그 마음과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시간의 선물이라고. -p, 50~51
이렇게 살아가는 이상 자유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자유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경험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자유 역시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속박은 언제나 함께 존재하며 역학관계를 이루기에 예단만으로는 자유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자유는 경험해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가치를 모르고는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용기가 없는 새는 새장 밖 세상을 알 수 없습니다. 자유를 얻고자 한다면 용기를 내 새로운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새장 밖으로 나가 날아본 새가 새장 속의 모이를 그리워할까요? 그것 역시 새장 밖에서 겪을 경험에 달렸습니다. 하지만 새장에만 있는 새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p, 102
천상병 시인은 삶 자체가 소풍이라 했습니다. 삶은 그렇게 소풍처럼 왔다가 둘러보고 체험하는 여정일 수 있습니다. 어차피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면, 더욱 좋은 것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을 구경하는 게 낫겠죠. 그런 의미에서 학습이란 우리 생에서 가장 적극적인 구경과 체험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세상의 더 깊은 곳을 구경하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라 해도, 다시 전문가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여력이 되는 만큼 자신의 호기심을 즐기면 됩니다.
길에서건 책에서건 교실에서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세상을 보고 싶은 만큼 즐겁게 볼 권리가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나이가 있지, 자기 인생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p,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