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어요, 지금도 - 소설처럼 살아야만 멋진 인생인가요
서영아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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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어른일까?"

티아 할머니는 조용히 되물었다.

"두려운 걸 아니까 어른이지. 진짜를 아니까."

나는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누구나 두렵단다. 홀로 감정 앞에 선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 두렵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 봐 두렵고. 하지만 그걸 다 알면서 우리는 그 감정을 건너가야 해."

티아 할머니의 눈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저는 늘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아직 내가 강렬하게 원하는 것도 모르겠고,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건너야 할 감정은 너무나 많지요. 과연 건널 수 있을지, 마주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부족함이 아니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움이지. 사물도 사람도 늘 거리를 두고 아끼되 지배당하지 않아야 해요. 사람이니까 자꾸 곁을 보고, 나와 삶의 키를 비교해보고, 겉으로는 괜찮다 말하지만 가끔 마음에 무거운 추를 매달지. 그런 날이면 한없이 가라앉아요. 그래도 다음 날 아침, 회사에 가고 일을 하잖아. 햇빛 아래 나가면 절반 이상은 잊어버린다고……. 그러면 또 그만큼 건너가고 있다는 뜻이지."

"할머니, 나는 잘 건너가고 있는 건가요?"

"모르지, 그건. 하지만 믿고 가는 거야. 그게 다야." -p, 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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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위한 드레스를 고르고 들러리 파티를 할 수 있는 장소인 티아 하우스, 미혼과 결혼의 가운데에 놓여 있는 다리와 같은 곳. 이 곳의 주인인 티아 할머니가 신부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준비한 모임인 '브릿지 타임'에서 그녀들이 나눈 이야기를 담아놓은 책.


아직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결혼'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인지 읽는 속도가 더뎠고, 자꾸만 내가 책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어 이 책을 끝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내가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행위인 '공감되는 글귀에 포스트잇 붙이기'의 결과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보자니 신기할 따름이고, 공감했던 글귀를 옮겨 적어보니 결혼과 가까운 나이인 언니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여러 주옥같은 멘트들을 옆에서 야금야금 주워들은 것 같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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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읽어보고 정말 괜찮았다며 빌려주었던 《네이키드 소울》에 쓰여있었던 글이 서영아 님의 글이었다니, 어쩐지 분위기가 비슷하다 했었다. 지금은 절판되어 쉽게 구할 수 없게 되었지만 다행히 난 글귀를 정리해두었었지.



▼ 《네이키드 소울》서평, http://blog.naver.com/se_eun92/22002414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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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처럼 한 번의 브릿지 타임에서 나눈 하나의 주제들에 대해 찬찬히 들려주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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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브릿지 타임에선 한 명씩 자신의 이야기를 대표로 들려주고 있었다. 이들은 도보 여행자부터 건축가, 요리사, 성우, 편집자, 블로거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관점을 가진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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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티아 할머니가 적어두었다는 티아 할머니의 노트를 볼 수 있었는데, 만약 존재한다면 티아 할머니의 노트 전체를 가져와 읽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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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만 해도 내가 가는 결혼식들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부모님이 아는 사람이거나 친척들의 결혼식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사회에서 알게된 언니, 오빠들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기도 하고 결혼식 하객 복장에 대해 이것저것 신경이 쓰이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직 주인공이 아닌 하객이지만. 내가 주인공이 아닌 결혼식이어도 결혼식장에 가면 눈물이 핑 도는걸 보니 '결혼'이라는 의식 자체가 참, 가벼이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닌 듯 하다. 5월에 결혼을 한 언니, 오빠가 얼마 전 임신을 했다며 임신 소식을 SNS를 통해 알렸는데 그걸 보고 엄마한테 이런 말을 했다. "그냥 나한테는 언니, 오빠였는데 어느새 부부가 되고, 어느새 엄마, 아빠가 되어버렸어. 뭔가 신기해."


언젠가 내가 결혼이라는 단어와 더 가까워지는 날이 오면 그때 아래에 정리해 둔 글귀들을 한 번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 그때 나에게 이런 대화를 나눌 친구, 동생, 언니들이 있다면 더 좋겠고. 티아 하우스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더더욱 좋겠지?





   




당신이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요. 느리고 빠름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요. 좋은 시간을 늘려 쓰고, 힘든 시간을 건너는 방법을 연구하세요. 몸과 정신이 시들지 않도록 시간의 중심에 두 발을 굳건하게 세워요. 마흔 이후의 삶은 새로운 여자로서 살아가는 기회가 될 거예요. 마치 여행처럼 말이죠. 여행의 지도에 필요한 것은 직접 걷고, 사랑하고, 경험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게 다예요. 견디지 말고 경험해요. 시간을 견디면 온몸이 아파요. 근육이 뭉쳐요. 힘든 시간은 리듬을 타야 해요. 그리고 누군가와 그 시간을 나누어 쓰는 지혜를 가져야 해요. 씨앗을 심으면서 비와 바람을 피하려 하지 않는 농부의 시간을 생각해봐요.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의 시간에 들어가려면 내가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봐야 하지요. 귀찮고 괴롭고 아픈 시간은 벼랑 끝에 나를 세우는 시간이에요. 단단하고 멋진 여자가 되기 위해 나를 단련하는 시간이죠. 반드시 보상이 돌아올 시간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돼요. 조금은 아이처럼 단순해질 필요가 있어요. 내가 이 시간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근사한 세계의 문을 열기 위해 이 길을 건너고 있다고 믿어보는 거예요. 그러려면 과정 자체를 새롭게 배워야 해요. 시간을 나누어 쓴다는 건 서로 동등해진다는 겁니다. 처음 결혼을 시작하는 두 남녀도 그렇지요. 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만나는 그 순간, 우리는 새로운 시간의 리듬을 만들어내지요. 새로운 개념의 시간이 창조되는 거예요. 낯선 여행자들처럼 다음에는 무슨 재미있는 일이 올까 기대하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해요. 그렇게 웅크리고 있지 말고. 그럼 돼요. 마음이 시작되면 몸은 좋은 방향으로 따라갈 거예요. -p, 38



어떤 여자들은 질문 때문에 반짝임을 잃게 되기도 해. -p, 51



삶에 영감을 주는 경험들은 우리를 깨어 있도록 해주죠. 힘든 순간에도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요. 사람마다 반짝이는 순간은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말이에요. 과정이 중요한 사람도 있고, 결과에 짜릿한 사람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사람도 있죠. 하지만 내 마음의 자리가 그곳에 없으면 그건 가짜예요. 무리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시선, 세상의 평가가 중요해지면 진짜 나는 점점 빛을 잃어가는 거예요. 곳곳에 내 자리를 많이 만들어놓으세요. 자리라는 말은 내가 앉아 있는 곳, 속해 있는 그곳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답니다. 내가 보는 풍경, 내 마음이 차지하는 공간까지 모두 속합니다. -p, 53~54



너는 좀 단단해져야 했기에 지금 외롭고 쓰리고 아픈 건지도 모른다. -p, 109



책 한 권과 한 사람의 인생이 이어진다면 내 인생은 어떤 책에 가까울까. 나는 정말 심심한 책 한 권을 쓰고 있다. -p, 140



사랑은 우주적 테마라서 우리를 몽상에 잠기게 한다. 참으로 기묘한 경험이다. -p, 147~148



인생에서 매듭을 잘 짓는다면 다음 단계로 건너갈 수 있는 힘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매듭에는 끝을 위한 매듭과 관계를 더 견고히 잇기 위한 매듭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머리를 땋아주던 엄마의 손길을 기억합니다. 그때 매듭을 짓는 엄마의 손길과 눈길을 떠올려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대하는 마음, 그것이었겠지요. 매듭은 시작할 때와 끝낼 때 모두 중요합니다. 인연도 그래요. 한 시절을 매듭지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끝이라는 것을 알 때가 오죠. 회사를 옮겨야 할 때, 결별이나 죽음 등으로 매듭지어지는 인연의 끝도 있습니다. 여기, 지난 사랑을 봉하여 작은 상자에 가두었습니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상처를 닫았습니다. 멈추어야 할 순간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닙니다. 인연이 다했을 때 우리는 수많은 사인을 받게 됩니다. 울리지 않는 전화, 미뤄지는 약속들, 침묵 같은 것들. 식어가는 마음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가장 불행한 것은 그 시기가 두 사람에게 다르게 다가온다는 거죠. 어느 날 더 이상 설레지 않을 때, 도망갈 핑계를 찾습니다. 그리고 언제 그 마음을 영원히 닫을지 시기를 볼 뿐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먼저 돌아설 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까 잠깐쯤은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은 갑자기 연락을 끊고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굴지는 않습니다. 그가 스스로 알아채기를 기다려줍니다. 가끔은 그게 더 큰 상처가 된다는 걸 모르고 말이죠. 저는 헤어질 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혹한 시간이니까요. 마음이 식어버린 사람의 상자는 이미 닫혔습니다. 그리고 온갖 신호로 '안녕'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아픈 것은 아직도 사랑이 남은 한 사람이 자신의 연애 상자를 닫을 때입니다. 그 상자 속에는 의미 있는 이야깃거리가 수없이 들어갈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기록들에도 추억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무척이나 사랑스럽던 추억들, 작은 메모와 사진들, 선물들. 한동안 심장 깊숙이 그 상자를 간직합니다. 거리를 지나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도, 함께 듣던 음악을 듣다가도 상자의 뚜껑이 들썩들썩합니다. 그런 날이면 가슴이 아파지고 눈이 뜨거워져 견디기가 힘들겁니다. 그들의 상자는 술을 마시거나, 계절이 바뀔 때 또다시 들썩거려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걸고 싶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고, 웃게도 되고, 울게도 되고, 여러번의 가을과 겨울을 건너 아름다운 봄날이 오면 그때 상자를 한번 꺼내봅니다. 꽁꽁 묶어두었던 마음이 풍선처럼 하늘로 날아가죠.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에요. 그때 한 번 손을 흔들어줍니다. 안녕…… 잘 가라. 한때 진짜 좋아했었다. 마음 한편이 짠하지만 그리운 건 그때 한 사람을 향해 달려갔던 마음일 겁니다. 이제 그 마음을 풀어줍니다. 그렇게 한 시절이 고요히 문을 닫죠.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진짜 삶으로 돌아섭니다. 우리에게는 숨겨진 상자가 몇 있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상자를 열어야 합니다. 끝과 직면해야 합니다. 완전히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고, 또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때가 되었을 때 좋은 마무리를 하는 것이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데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매듭을 잘 짓는 사람만이 그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할 자격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p, 161~163



청춘은 그렇게 천방지축 부딪히다가 어느 날 닻을 내린다. 쓸쓸해져서, 혹은 시간이 다 되어서. 그리고 평화를 꿈꾼다. 폭풍 같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열정과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p, 169



우리는 가끔 인생의 가벼움을 위해 정답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더 무거워지고 만다. -p, 207



그러니까 여자들에게는 고양이의 시절과 강아지의 시절이 있다니까. 고양이의 시절은 탐색과 고독과 예술가의 삶이야. 강아지의 시절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 속에서 평온을 찾는 삶이지. 나는 여자들이 고양이의 시절과 강아지의 시절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p, 230



"무엇이 어른일까?"

티아 할머니는 조용히 되물었다.

"두려운 걸 아니까 어른이지. 진짜를 아니까."

나는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누구나 두렵단다. 홀로 감정 앞에 선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 두렵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 봐 두렵고. 하지만 그걸 다 알면서 우리는 그 감정을 건너가야 해."

티아 할머니의 눈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저는 늘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아직 내가 강렬하게 원하는 것도 모르겠고,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건너야 할 감정은 너무나 많지요. 과연 건널 수 있을지, 마주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부족함이 아니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움이지. 사물도 사람도 늘 거리를 두고 아끼되 지배당하지 않아야 해요. 사람이니까 자꾸 곁을 보고, 나와 삶의 키를 비교해보고, 겉으로는 괜찮다 말하지만 가끔 마음에 무거운 추를 매달지. 그런 날이면 한없이 가라앉아요. 그래도 다음 날 아침, 회사에 가고 일을 하잖아. 햇빛 아래 나가면 절반 이상은 잊어버린다고……. 그러면 또 그만큼 건너가고 있다는 뜻이지."

"할머니, 나는 잘 건너가고 있는 건가요?"

"모르지, 그건. 하지만 믿고 가는 거야. 그게 다야." -p, 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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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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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 의미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다. 내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다. -p, 316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은 제목 덕을 참 많이 본 책이라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용기를 내야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제는 미움을 받는 일까지 용기를 내야한다니, 세상에나!' 하면서도 우린 모두에게 예쁨받고 인정받고 싶은 어찌보면 한없이 여린 사람들이기에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고맙게도 난 이 책을 친구로부터 건네받았다. 고등학생때 알게되어 그땐 딱 붙어 떨어질줄 모르던 우리였는데 요즘은 각자 자기 일로 바빠 여러 계절이 지나고나서야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다. 친구가 책을 좋아하는 걸 알기에 내가 읽고 괜찮았던 책들을 바리바리 챙겨갔고, 내가 책을 건네주자 그 친구도 이 책을 건네주었다. "내가 밑줄그어놨는데 괜찮아?" 하며 세심한 배려의 말과 함께. 책에 밑줄을 긋거나 접는걸 싫어하는 나였는데, 친구가 빨간 볼펜으로 그어놓은 밑줄은 읽는 내내 기분 좋게 다가왔다. '난 이 부분이 괜찮았는데, 넌?' 하면서 옆에서 재잘대는 느낌이었달까.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학설인 '개인심리학'을 청년과 철학자가 나누는 대화로 알기 쉽게 풀어쓴 글인데, 제목인 '미움받을 용기'는 이 학설의 내용 중 요즘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을 겨냥한 듯 하고 무엇보다 난 '행복해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라는 글을 보고 머리가 뎅- 했다. 우리는 과거에 겪었던 큰 일, 그 큰 일에 대해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이름 붙여놓고 그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 이렇게 행복하지 않은거야.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행복해질 용기가 없기 때문에 그 트라우마를 도피처로 삼고 있다는 식의 글을 읽고 내가 트라우마라고 여겼던 것들을 하나씩 지워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받은 날도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무엇보다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취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 나 혼자 뒤쳐지는게 아닐까 두려움이 가득해 '누구 어디 취업했대!'라는 말에도 축하와 기쁨의 감정보단 질투와 부러움, 나 자신에 대한 무능력함이 앞선다는 이야기들.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 때문에 더 부풀려져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적절한 시기에 읽게되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어 고맙다.         









아들러의 목적론은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라고 말해주는거지.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여기' 를 사는 자네라고 말일세. -p, 67~68



자신의 불행을 '특별'하기 위한 무기로 휘두르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불행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네. -p, 103



유대교 교리를 보면 이런 말이 있네.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단 말인가?" 자네는 자네만의 인생을 살고 있어. 누구를 위해 사느냐고 하면 당연히 자네를 위해 살아야겠지. 만약 자네가 자네를 위해 살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자네의 인생을 살아준다는 말인가?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를 생각하며 사는 거라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이유가 없지. -p, 154~155



공부하는 것은 아이의 과제일세. 거기에 대고 부모가 "공부해" 라고 명령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에, 비유하자면 흙투성이 발을 들이미는 행위일세. 그러면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지. 우리는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혹은 자신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에 의해 발생한다네. 과제를 분리할 수 있게 되면 인간관계가 급격히 달라질 걸세.


누구의 과제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네.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만약 아이가 '공부하지 않는다' 라는 선택을 했을 때 그 결정이 가져올 결과―이를테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지망하는 학교에 불합격하는 등―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야. 아이란 말이지. 즉 공부는 아이의 과제일세. 


세상 부모들은 흔히 "너를 위해서야" 라고 말하지. 하지만 부모들은 명백히 자신의 목적―세상의 이목이나 체면일지도 모르고, 지배욕일지도 모르지―을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한다네. 즉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이고, 그 기만을 알아차렸기에 아이가 반발하는 걸세.


여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네. 아들러 심리학은 방임주의를 권하는 게 아닐세. 방임이란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라네. 그게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켜보는 것. 공부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이 본인의 과제라는 것을 알리고, 만약 본인이 공부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전하는 걸세. 단 아이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말아야 하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물론 곁에서 최선을 다해 돕기는 하지. 하지만 끝까지 개입하지는 않아. 어느 나라에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네. 아들러 심리학에서 하는 상담, 혹은 타인에 대한 지원 전반이 그런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게. 본인의 의향을 무시하고 '변하는 것'을 강요해봤자 나중에 반발심만 커질 뿐이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네. -p, 160~163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과 타인의 과제를 떠안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무겁게 짓누른다네. 만약 인생에 고민과 괴로움이 있다면―그 고민은 인간관계에 있으니― 먼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내 과제가 아니다" 라고 경계선을 정하게. 그리고 타인의 과제는 버리게. 그것이 인생의 짐을 덜고 인생을 단순하게 만드는 첫걸음일세. -p, 166~167



자신의 삶에 대해 자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것', 그뿐이야. 그 선택에 타인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고, 자네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일세. -p, 168



유대교 교리 중에 이런 말이 있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비판한다.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 명 중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는 더없는 벗이 된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이때 나를 싫어하는 한 명에게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사랑해주는 두 사람에게 집중할 것인가, 혹은 남은 일곱 사람에게 주목할 것인가? 그게 관건이야. -p, 280



분필로 그어진 실선을 확대경으로 보면, 선이라고 여겨진 것이 실은 연속된 작은 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선처럼 보이는 삶은 점의 연속, 다시 말해 인생이란 찰나(순간)의 연속이라네.


그래. '지금'이라는 찰나의 연속이지.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밖에 없어. 우리의 삶이란 찰나 안에서만 존재한다네. -p, 301



이렇게 생각해보게. 인생이란 지금 이 찰나를 뱅글뱅글 춤추듯이 사는, 찰나의 연속이라고. 그러다 문득 주위를 돌아봤을 때 "여기까지 왔다니!" 하고 깨닫게 될 걸세. -p, 302~303



자네가 극장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게. 그때 극장 전체에 불이 켜져 있으면 객석 구석구석까지 잘 보일 거야. 하지만 자네에게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바로 앞줄조차 보이지 않게 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네. 인생 전체에 흐릿한 빛을 비추면 과거와 미래가 보이겠지. 아니,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 하지만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과거도 미래도 보이지 않게 되네.


우리는 좀 더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야하네. 과거가 보이는 것 같고, 미래가 예측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자네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지 않고 희미한 빛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일세.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며,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아. 자네는 과거와 미래를 봄으로써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하고 있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간에 자네의 '지금, 여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미래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 여기'에서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고 있다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을 걸세. -p, 307~308



인생에 있어 의미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다. 내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다. -p,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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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빌라 - La Villa de Paris
윤진서 지음 / 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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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바랄 뿐이다. 부디 나의 삶에 사랑이 넘치기를. -p, 193

 






 








《파리 빌라》는 배우 윤진서가 쓴 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관심을 갖게 되는 책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편견을 가진 채 보게되는 것도 사실인지라 몇몇 서평만 보더라도 소설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배우 윤진서에 대한 평가글이 쓰여있어 안타까웠다. (어쩌면 나도 그런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친구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음에 이별을 겪으면 마냥 힘들어하는 것 대신 훌쩍 여행을 가버릴거야. 그땐 내 정신이 온전치 못할테니까 이왕이면 평소에 쉽게 결정하지 못할 해외여행으로.' 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도 이별 후 여행을 한다는 점이 내 생각과 닮아 괜히 반가웠다.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혼자 청승도 떨어보고 뭐가 잘못이었을까 방해 받지 않고 떠올려보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슬픔을 잊어보는 것도 내가 생각했던 '이별 후 여행'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내 또래 친구들은 이미 여러번의 이별을 경험한 경우가 많은데, 새로운 사람을 만났어도 그 이전의 연애에서 자꾸만 영향을 받는 모습을 많이 본다. 일단 나부터도 이전의 연애에서 경험했던 안좋은 일들을 다시 경험하면 덜컥 무서워지기도 하고, 문득 이전의 연애보다 좋지 않아도 무섭고, 좋아도 언젠가 이 좋음이 끝나진 않을까 무섭고. 이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파리 빌라》의 주인공처럼 사랑을 할 땐 그 사람과 나밖에 보이지 않는, 영원할 것 같은 세상에서 살다가, 우리에겐 심각하지만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문제로 이별을 하고나면 더이상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거부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하지만 그녀는 긴 여행 끝에 그런 자신의 모습마저 같이 감내해줄 사람을 만나서 맞서나갈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결국 언젠가는 사랑 앞에서 도망가지 않게 될 것이었다.


요즘 내 연애관은, 친구들끼리 종종 하는 말인데 '연애는 해도 지랄 안해도 지랄이니 이왕이면 하면서 지랄인게 낫다고.' 그러니 이전의 연애가 생각나 힘들어하고, 이 연애도 언젠가 끝날까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이왕 하는거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지지고 볶고 그 순간에 충실하자는 것.


아래에 따로 정리를 해두겠지만, 이별 후 사랑 앞에서 도망치고만 있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좋을 구절들이 참 많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 배우 윤진서의 독특한 분위기가 녹아있는 소설이어서인지 문득문득 이 소설의 주인공의 모습으로 윤진서를 떠올리며 읽고 있다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배우 윤진서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그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소설 또한 좋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잠시 혹은 영원 사이의 시간동안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불안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느끼기 위하여 여러 상태로 자신을 몰아간다. 어쩌면 그 속에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기도 할 것이다. 그래야만 사랑이라는 확신이 더 강렬하게 들어서일 것이며 어쩌면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p, 28



다음번 그의 집에 갔을 때 나는 와인을 한 잔만 마시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잔을 비울 때마다 다시 잔을 채우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물었고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물었으며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들에 대해 다시 물었고 결국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물었다. 그렇게 더이상 우리의 식탁에는 인생의 부정적인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들은 미화되어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기 위해 지나왔던 과거가 되었으며 그렇게 그와 나는 서로를 위해 새로운 자신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그와 나는 연인이 되었다. -p, 36~37



"있잖아, 만약에 네가 누군가에게 실연을 주었다면 아마도 그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을 거야. 네가 당했던 실연만이 진짜 사랑이었을 거야. 이유를 불문하고 끝까지 곁을 지키지 못한 쪽은 사랑했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거야." -p, 55



"사랑은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어. 그 하나의 끈을 계속해서 엮어나가는 거야. 한 번 끊어질 때마다 사랑이 없어졌다고 믿어버리면 사랑에 도달할 수 없어. 결국 네가 하는 사랑은 어떤 색도 아닌 너의 색을 띠게 되지. 원래부터 끈은 스스로 만들고 엮게 되어 있는 거야. 사랑을 마음 안에 가지고 있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긴 끈을 갖게 되는 거야." -p, 105



그가 떠나고 나서부터는 달라졌다. 나의 슬픔이 떠나가고 그를 잠식했던 슬픔의 이유를 짐작하기 시작했다. 곧 두 사람분의 슬픔이 밀려왔다. 이전까지의 나는 사랑이란 상대방의 슬픔까지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몰랐었다. 상대방의 슬픔까지도 곱씹고 나야 무엇이 잘못된 건지 내가 아는 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또 무엇이엇는지 제대로 짐작할 수 있었다. 만났던 기간의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아파했고 영화를 볼 수도 친구를 만날 수도 마음껏 술에 취할 수도 없었다. 그의 슬픔을 곱씹는 순간 속에는 마치 그가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들어 있었다. 마치 그를 실제로 보는 듯해서 가끔은 그가 떠났다는 것마저도 잊어버리는 순간이었다. -p, 117~118



원래부터 나란 인간은 척을 잘한다. 초연한 척, 관심 없는 척, 괜찮은 척. 사실 그렇게 척을 하다보면 스스로도 그렇게 믿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겐 눈물이 날 일이라곤 별로 없었다. 특히나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이라고는 인생에서 꼽을 만했다. 그렇지만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나는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이 자주 눈물을 흘린다. 새벽녘 와인을 마시고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그랬고 아비뇽에서 끊어진 다리를 보고 나서도 그랬고 조금 전 잠에서 깨어나서도 그랬다. 이러다가는 밥을 먹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배낭을 메다가도 눈물을 흘릴지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척을 잘하는 여자는 사라지고 최소한의 슬픔도 숨길 수 없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p, 133



"뭐야 대체? 그렇게까지 잊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 있는 거야?"

"그런 건 아니야. 문득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고나 할까?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이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었어."

"다른 인생을 살려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어디선가 그런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 배우가 한 영화를 마치고 다른 영화로 넘어갈 때 다른 인생으로 넘어가는 기분이라는.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라 생각했어."

내 말을 효정이 받았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배우들은 한 영화를 마쳤다고 해서 그 세상을 부정하고 떠날 수 없을 거야. 우린 그 영화 속 배우를 영원히 기대할 테니까. 영화에서 한번 만들어진 세상은 영원히 그 자리에 존재한단 말이지. 네가 이전의 자신을 부정한다 해도 그 시간의 네 인생은 사라질 수 없을 거야. 지금의 네가 존재하는 한, 아니 지금의 네가 사라진다 해도." -p, 159~160



"그 사람도 참. 울부짖으며 거리에서 고래고래 화를 내고 당장 그 여자에게 전화를 하라고 소리친 여자한테 어째서 청혼했을까? 나라면 그 길로 도망갔을 거야."

"나도 똑같은 질문을 그에게 했지. 그런데 그 사람이 말하길, 지금까지 만난 프랑스 여자들은 그런 적이 없었대. 그렇게 지독하게 자신만을 사랑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대. 절대로 자신을 다 드러내지 않는 거지. 재미났던 건, 미친 사람처럼 따지며 울부짖는 나를 보는데 기묘하게 기분이 좋았다는 거야. 본능적으로 거부할 수 없겠더래. 그러고는 이토록 충분히 사랑받고 있으니 이 여자라면 만족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더래. 그러니 어쩌면 너도 언젠가 너의 사랑 앞에서 도망가지 않게 될지도 몰라. 이런 종류의 사랑이 요즈음 시대에 흔하지 않아서 내가 바보 같은 여자로 느껴지겠지만, 너 역시 자신이 완전히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할 때 오히려 완벽히 마음을 내주게 될지도." 

완벽한 사랑을 받는다는 말 앞에서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말에서 바람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데스밸리 공원과 요세미티 공원을 유랑하듯 떠돌며 몇 개월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 숨이 멎을 만큼 뜨거운데다 흙과 태양,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있다보니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되더라고. 삶과 죽음의 중간 지점에 딱 들어와 있구나. 숨이 턱턱 막히며 몇 개월 지낸 끝에 느낀 거라고는 고작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어. 높이가 엄청난 큰 바위로 둘러싸인 곳을 지나기도 했어. 처음에 난 그 굉장한 광경을 보면서 무섭다고 생각할 줄은 몰랐거든. 하지만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무력하다고 느껴지면서 정말이지 두려움이 뭔지 알게 되었던 것 같아. 금방이라도 내게로 쏟아져내릴 것 같은 거대한 돌덩이 앞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무기력함이었지. 대자연 앞에 선 나의 육체의 무게가 너무도 가벼워 오히려 그쪽으로 소유되는 기분. 그리고 사랑이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 놓여 있는 인간에 대해 생각했어.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사랑이 내게로 온다면 결국 어떻게 될까 하고. 내가 자연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기력하게 휩쓸리고, 서로의 육체에 빨려들어가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겠지.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할 거야. 그렇지만 어떤 면으로는 그 순간이야말로 진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을 거야. 네가 보여준 사랑의 표현들이 인간적이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에 그 역시 너의 사랑 방식을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본능적이었을 거야. 넌 마치 엄마를 찾는 아이 같았잖아." -p, 163~165



굉장히 소중한 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슬픈 느낌이 든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것의 소중함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 그 대상과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동시에 그것의 의미를 읽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소중하다고 느낀 시간은 아주 작은 시간임에도 강력한 힘을 지닌다. 그 힘을 위해 그만큼 아파온 것일 테니까. 지금 내가 굳이 역사라는 단어를 부여한 것은 모든 것에 종말의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슬픔을 느끼면서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고 그와 함께 용감히 종말을 부정할 수 있는 세상 속으로 기꺼이 걸어들어갈 때 마침내 사랑의 힘이 발휘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알아본 대가로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듯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사랑의 대가라고.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가끔 길을 잃고 방황하며 상대방에게 이곳이 어디냐 묻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의 의미가 변해버린 세상에 이전의 의미로 현재를 해석하려 하는 어리석은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랑, 그것만이 신이 인간에게 준 천국이란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사랑할 때, 이전의 경험들을 지우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자세로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소중한 것을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슬픔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슬픔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 그 슬픔의 에너지로 인해 심장을 다시 뜨겁게 가열시킬 것이며 가열된 심장은 더욱 붉어져 당신의 눈을 멀게 할 것이고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비교와 가치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눈과 귀를 가지고 자신만의 가치와 의미로 세상을 해석하게 될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사랑에 동반된 슬픔은 익숙함에서 벗어나 일정 부분을 버려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안녕일지도. -p, 166~168



"사랑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대가가 아닐까?"

"하지만 사랑이 끝나고 나면 그 흔적들을 지우는 과정과 시간 때문에 지치는 것 같아요.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것 같고요. 그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다기보다 더 힘든 것은 그 시간을 진짜로 송두리째 지워야 한다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이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허무함과 함께 싸우면 좋을 사람을 만나면 좋겠구만. 사라져버리는 사람 따위 말고."

"그런 걸 함께해줄 사람이 있을까요?"

"결국 세상은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지 않나? 함께해줄 사람이라고 믿으면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도 있을거야. 안 그러나 친구?"

노신사는 효정을 향해 물었다.

"그러길 바랐는데 이제는 믿지도 않는 걸 찾아서 보여줘야겠더라고요."

"그 싸움이야말로 정말 힘들겠는데? 믿지도 않는 걸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하다니. 친구. 자네 이름이 뭔가?"

"폴린입니다."

"폴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 보여주는 게 뭔가?"

"그것이야말로 사랑 아니겠습니까?"

"자네가 나보다 낫구만. 나는 이제서야 사랑이 무엇인 줄 알았는데.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고 다시 그것을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증명시키고 설득해야 사랑이 된다네. 그 이전 단계까지의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사랑이 아니거든.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에게라도 그것을 증명시키고 간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작가가 아니겠나." -p, 18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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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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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p, 57

 







 







까칠한 남자의 매력은 도통 못느끼던 나였는데 이 책을 읽고나선 까칠한 남자의 매력을 알아버렸다. 


《오베라는 남자》라는 제목에서부터 '이 소설은 오베라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야' 라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데, 읽는 내내 연예인 박명수 생각이 났다. 그만큼 '오베'는 박명수처럼 까칠까칠한 남자였고, 박명수처럼 어마어마한 사랑꾼이었다.


그의 첫인상은, 만약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면 마주치기 싫어서 피해다녔을 수도 있겠다 싶을만큼 까칠까칠. 원리원칙을 중요시해 그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복수(?)를 하며,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가 침범하는 것을 매우 불쾌해하는 그러한 모습이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어갈수록 보여지는 따뜻한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투덜거리면서도' 이웃이 아프면 병원에 데려다주고, '투덜거리면서도' 이웃집에 수리할 게 있으면 가서 수리해주고, '투덜거리면서도' 추운 겨울에 갈 곳 없는 고양이를 데려와 키우는 이러한 따뜻한 모습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매력은 <오베였던 남자와 기차에 탄 여자> 라는 챕터에서 드러나는데, 그가 (미래의 아내가 되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보고있자면, 그의 아내가 한없이 부러워질 뿐이었다. 세상 모든 여자가 바라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남자였달까. 떠벌떠벌 말로만 표현하는 사랑이 아닌 묵묵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이었기에 (또한 여자가 충분히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행동이었기에). 


이 소설은 까칠한 남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책이기도 했지만, 여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기도 했다. 연애애 서툰 남자들이 한번쯤 읽어보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오베처럼만' 한다면 그는 그녀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p, 57



근 40년 동안 살면서, 소냐는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데 어려움을 겪는 수백 명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들에게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혔다. 

같은 기간 동안 그녀는 오베가 셰익스피어 희곡을 한 편이라도 읽도록 하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택 단지로 이사하자마자 그는 몇 주 동안 내내 저녁마다 헛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그가 작업을 마쳤을 때, 그녀가 본 것 중 아름다운 책장들이 거실에 놓였다. 

"책들을 어디에 보관은 해야 하잖아."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드라이버 끝으로 엄지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들을 콕콕 찔렀다. 그녀는 그의 품에 파고들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p, 208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했던 얘기였다. 그녀는 선을 위해 싸웠다.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아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p, 280~281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p, 4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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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Me - 완벽한 여자는 멍청하다!
안 소피 지라르.마리 알딘 지라르 지음, 이주영 옮김 / 시공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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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는 지금까지 잡지, TV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을 보며 또 모든 것을 가져 주눅 들게 하는 여자들을 일상에서 마주치며 완벽한 여자들을 닮기 위해 애썼다. 


그동안 우리는 노력할 만큼 했다! 더 나은 여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가? 그런데 우리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가 바로 이것이다! '완벽한 여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 이거 하나만 바로 알자! 완벽한 여자는 멍청하다!


이 책이 여러분을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여러분이 가진 단점을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키워드를 가르칠 것이다. 


- 프롤로그 中

 












 

지라르 자매의 《Just ME : 완벽한 여자는 멍청하다!》라는 이 책은 다른 사람과 비교만 하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여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만 봐도 예쁜 여자, 옷 잘 입는 여자, 감성적인 사진을 잘 찍는 여자, 몸매가 좋은 여자, 멋진 글을 쓰는 여자, 청순한 매력을 가진 여자, 섹시한 매력을 가진 여자, 화려한 삶을 사는 여자, 명품을 잔뜩 가지고 있는 여자 등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나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떨어뜨릴만한 여자들이 수없이 널리고 널려있다.

이런 여자들을 닮기 위해, 아니 따라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봐도 달라지는 건 점점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일 밖에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공감이 되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완벽한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한 규칙'들을 알려준다.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완벽해지기도 모자란 와중에 완벽해지지 않기 위한 규칙이라니. 기가 찰 수도 있겠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래, 굳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잖아?' 라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완벽한 여자 = 세상을 너무 빡빡하게 사는 멍청한 여자' 라는 공식이 그려진다면, 축하한다! 이제 완벽하지 않은 여자로 세상을 재미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왕에 망한 거' 수칙을 배웠으니 그동안 자잘한 실수에도 나 자신을 못살게 굴었던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저녁 6시 이후론 금식해야지!' 하는 지키지 못할 다짐 따위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라면 봉지를 뜯고 물을 끓이는 것으로 '이왕에 망한 거 계란이랑 김치도 넣어먹을까?' 하며 행복을 느끼고 (살도 얻게 되었다).




  


 







 

배운건 썩혀두지말고 맘껏 응용해보고, 





 







 

그럼에도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면 초콜릿 과자 남은 것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즉시 쓰레기통을 비우라는 중요한 팁도 알려주고 있다. 초콜릿 과자 위에 표백제를 부어버리던가 하는 무시무시하지만 무시할 수 없이 끝내주는 팁까지.




 

 








살찌지 않는 여자는 먹지 않는 여자다. 

살찌지 않는 여자는 먹지 않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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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정답! 




이 책을 남자들이 본다면 여자에 대한 환상이 깨질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완벽한 '척'하는 여자는 많아도 정말 완벽한 여자는 판타지에나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남동생들이 누나의 집과 밖의 180도 다른 모습을 보고 치를 떤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의미에서 내 남동생이 가끔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날 보면서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이 갑자기 떠올랐다.)


책의 제목이 《Just ME : 완벽한 여자는 멍청하다!》이다보니 여자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지만 남자든 여자든 가장 좋은 비교는 자기 자신과의 비교가 아닐까 싶다. 타인과의 비교보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하는 비교는 얼마든지 추천하고 싶다. 다만, 완벽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고 '완벽한 나' 보다는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바랄 것.










▲ 


언젠가 힘들고 우울하다고 했더니 힘내라며 이렇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캔커피를 기프티콘으로 보내준 언니, 

이 책을 읽고 마침 생각이 나서 집에 오는 길에 바꿔왔다.


완벽하지 않은 나라도 이렇게 날 위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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