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 정성일.정우열의 영화편애
정성일.정우열 지음 / 바다출판사 / 2010년 8월
장바구니담기


그(차이밍량)에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차이밍량은 대답했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면 상업 영화이고, 나의 내일을 걱정하면 예술 영화입니다. 그러므로 상업 영화는 항상 책임질 수 없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예술 영화는 자기가 알 수 있는 한계 안에서 그냥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기가 다루려는 테마가 커질수록 그것은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예술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454~45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을 본다는 것
케네스 클라크 지음, 엄미정 옮김 / 엑스오북스 / 2012년 11월
장바구니담기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방금 거론했던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동의하겠지만) 만약 미술이 즐거움을 주는 것 이상이라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말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미술은 막대사탕이나 풀 향기가 나는 상큼한 퀴멜 주 한 잔처럼 한 순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위대한 미술 작품의 의미, 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그 의미의 이부가 영혼에 활력을 주듯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어야만 한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활발한 참여를 요하는데, 초기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84 펭귄클래식 48
조지 오웰 지음, 이기한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0월
절판


그녀가 말하는 동안 그는 정통성이 무엇인가를 모르면서 정통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깨달았다. 어떤 점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납득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공적 사건에 충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가장 악랄한 현실침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이 정상적이다. 마치 한 알의 곡식이 소화되지 않고 새 몸뚱이를 거쳐 탈없이 그대로 나오듯, 뒤에 아무런 찌꺼기도 남기지 않으므로 그들이 무얼 삼키든 목을 넘어간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해로움도 줄 수 없는 것이다.

「이중사고」를 가장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중사고」를 만들어 대고 그것은 거대한 정신적 사기방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 사회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현실 그대로의 세계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이해력이 클수록 미망(迷妄)이 크고, 많이 알면 알수록 착란이 심해진다. 이러한 좋은 예가 전쟁에의 열광이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아질수록 심해진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전쟁에 대해 거의 이성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분쟁지역에 사는 예속민들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전쟁이란 파도처럼 자기 몸 위에 덮치는 끊임없는 재앙이다. 어떤 편이 이기는가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다. 통치자가 바뀌었다라도 전에 받던 취급을 받으며 새 주인을 위해 전과 같은 일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이들보다 약간 나은 대접을 받는 소위 「노동자」들은 가끔 가다 전쟁을 의식할 정도다. 필요할 때면 그들은 광적인 공포와 증오에 흥분되기도 하지만 혼자 있게 되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잊어버린다. 당원급, 특히 내부당원에 이르면 진짜 전쟁열에 휩싸버린다. 당원급, 특히 내부당원에 이르면 진짜 전쟁열에 휩싸인다. 세계의 정복이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더욱 굳게 믿기워진다. 이러한 상반된 것의 결합-무지와 지식, 맹신과 냉소의 결합이 오세아니아 사회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공식적인 이념은 그럴 이유가 없는 데까지 모순을 지니고 있다.

그는 침대에서 돌아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권력의 성직자(聖職者)야, 신(神)은 권력이고.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자네가 보기에 권력은 말뿐일 거야. 이제는 자네가 권력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때야. 자네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권력이란 집단적이란 걸세. 개인은 오직 개인임을 포기할 때 권력을 갖게 돼. <자유의 예속>이란 당의 슬로건을 알겠지. 그것을 역(逆)으로 생각해 보았나? 예속은 자유라고. 혼자서, 자유로이 있으면 인간은 언제나 패배해.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죽을 운명에 처해있고 죽음은 가장 커다란 패배이기 때문이야. 그러나 인간이 완전하고 명백한 복종을 행할 때, 그리하여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당에 포섭되어 그 자신이 곧 당이 된다면 그는 전능하고 불멸의 존재가 되는 거야. 둘째로 알아 둘 것은 권력이란 인간에 대한 권력이란 점일세.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무엇보다 정신을 지배하는 권력이어야 해. 사물에 대한 권력, 자네 식으로 하자면 외적인 실재에 대한 권력은 중요하지 않아. 사물에 대한 우리의 권력은 이미 절대적이야.」
-238쪽

윈스턴은 잠시 동안 다이얼을 무시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고 애를 썼으나 몸을 비트는 바람에 고통만 왔을 뿐이었다.
「그럼 어떻게 사물을 지배할 수 있단 말예요?」 그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날씨도, 인력(引力)의 법칙도 지배할 수 없는데. 게다가 병과 고통과 죽음이……」
오브리엔은 손짓으로 그의 말을 막더니 자기가 말을 계속했다.
-23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합정역의 어느 출판사 앞 가판대를 무심히 지나치다가 머리에서 용수철이 튀어오르는 책의 표지를 보게 되었다. 책 제목은 <권태>. 졸고 있거나 멍한 표정의 할아버지들이 잔뜩 앉아 있는 집회의 한 장면을 찍은 사진이 책의 표지이다. 아..어지러~정말 지루해보인다. 표지 한 번 잘 만들었군, 이라며 충동구매를 했다. '지루함의 아나토미'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몸문화연구소가 2012년에 '권태'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기획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의 초반에 실린 세 개의 글을 흥미를 갖고 읽게 되었는데 도서출판b의 대표라는 분이 쓰신 "권태와 청춘"이라는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과 라르스 스벤젠의 <지루함의 철학>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부분과 빗겨간 부분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 흥미로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낭만주의 시대 이후 '민주화된' 근대적 개념으로서 권태를 발견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라르스 스벤젠의 <지루함의 철학>을 읽게 되었다. <권태>에 라르스 스벤젠의 책이 참고문헌으로 상당히 자주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반부는 주로 <권태>에 많이 등장하여서 외려 재미가 있었던 부분은 2장 지루함의 역사였다. 근대 이전에 지루함을 아케디아에서 찾더니 영화 <크래쉬>에서 폭력이나 죽음과 연관 된 부분을 찾고 급기야 앤디 워홀을 반낭만주의자로서의 낭만주의자라고 칭한다. 미술이나 문학, 영화에서 표현된 권태에 대해 분석하는 부분이 재미있었고 공감가는 면도 적지 않으나 조금 깊이가 얕다고나 할까. 특히 앤디 워홀 작품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아케디아에서 근대 이전의 지루함을 살펴보는데 납득이 안가는 것도 아니지만 아케디아는 메멘토 모리나 멜랑콜리의 측면과의 연관성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다른 맥락이기는 한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다가 조금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과사회에서 자신을 착취하는 한편 힐링하는 현대인에 대한 지적이었다. 사색할 시간이 없이 분주히 일하는 현대인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하는 신경증적 사회의 단면이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권태 혹은 지루함은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간에게 사색의 기회, 내적 자아의 인식의 시간을 제공해주는 정서는 아닐까. 그런데 이런 논의가 내게 낯설지가 않아서 돌이켜보니 서동진 계원예대 교수의 박사논문이 책으로 나온 <자유의 의지 자기개발의 의지>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피터 투이의 <권태-그 창조적인 역사>라는 책을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또 권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펼쳐보일 것인가. 권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내 일상이 권태롭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