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의 어느 출판사 앞 가판대를 무심히 지나치다가 머리에서 용수철이 튀어오르는 책의 표지를 보게 되었다. 책 제목은 <권태>. 졸고 있거나 멍한 표정의 할아버지들이 잔뜩 앉아 있는 집회의 한 장면을 찍은 사진이 책의 표지이다. 아..어지러~정말 지루해보인다. 표지 한 번 잘 만들었군, 이라며 충동구매를 했다. '지루함의 아나토미'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몸문화연구소가 2012년에 '권태'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기획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의 초반에 실린 세 개의 글을 흥미를 갖고 읽게 되었는데 도서출판b의 대표라는 분이 쓰신 "권태와 청춘"이라는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과 라르스 스벤젠의 <지루함의 철학>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부분과 빗겨간 부분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 흥미로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낭만주의 시대 이후 '민주화된' 근대적 개념으로서 권태를 발견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라르스 스벤젠의 <지루함의 철학>을 읽게 되었다. <권태>에 라르스 스벤젠의 책이 참고문헌으로 상당히 자주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반부는 주로 <권태>에 많이 등장하여서 외려 재미가 있었던 부분은 2장 지루함의 역사였다. 근대 이전에 지루함을 아케디아에서 찾더니 영화 <크래쉬>에서 폭력이나 죽음과 연관 된 부분을 찾고 급기야 앤디 워홀을 반낭만주의자로서의 낭만주의자라고 칭한다. 미술이나 문학, 영화에서 표현된 권태에 대해 분석하는 부분이 재미있었고 공감가는 면도 적지 않으나 조금 깊이가 얕다고나 할까. 특히 앤디 워홀 작품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아케디아에서 근대 이전의 지루함을 살펴보는데 납득이 안가는 것도 아니지만 아케디아는 메멘토 모리나 멜랑콜리의 측면과의 연관성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다른 맥락이기는 한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다가 조금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과사회에서 자신을 착취하는 한편 힐링하는 현대인에 대한 지적이었다. 사색할 시간이 없이 분주히 일하는 현대인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하는 신경증적 사회의 단면이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권태 혹은 지루함은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간에게 사색의 기회, 내적 자아의 인식의 시간을 제공해주는 정서는 아닐까. 그런데 이런 논의가 내게 낯설지가 않아서 돌이켜보니 서동진 계원예대 교수의 박사논문이 책으로 나온 <자유의 의지 자기개발의 의지>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피터 투이의 <권태-그 창조적인 역사>라는 책을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또 권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펼쳐보일 것인가. 권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내 일상이 권태롭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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