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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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읽었던 류비셰프, 생활하다가 간혹 그가 떠올랐다.  그물처럼 던져진 시간 속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될 때 그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류비셰프. 기계적인 시간관리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삶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가 관건인 그의 시간기록, 시간일기는 그가 살아낸 시대와 현대라는 이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현대의 시간 안에는 양적으로 팽창한 정보에 어떻게 접근하느냐 하는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같은 시간 안에 얼마나 다양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정보를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으니 그렇다. 그런 문제의 해결방안이 시간일기에는 있다.


  류비셰프는 기존의 권위 있는 견해들에 맞서기를 좋아했다. 그의 일기는 사실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글이 아니다. 다만 성실성, 사상, 그리고 의지를 요구할 뿐이다. 또한 그의 시간일기는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하였고, 무슨 방법을 썼는가’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그는 1916년 1월 1일에 시작하여 1972년까지 지속된 그 자신의 일기를 ‘시간의 통계’라 명명한다. 이를 통해 시간을 조금도 허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를, 어떻게, 무슨 일로 허비하였는가를 몸의 감각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에게 시간은 곧 삶이었다. 시간을 대하는 태도는 그에게는 하나의 도덕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스스로 숭고한 목표를 내걸었을 경우라야만 이 시간통계법이 성립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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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 개정판, 원문 영어 번역문 수록 현암사 동양고전
노자 지음, 오강남 풀어 엮음 / 현암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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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에게 듣다, 듣기가 어려운 부분은 살면서 배워 나가기로 하고, 일단 듣는다. 노자는 시적인 은유로 직설적이지 않고 에둘러 가르침을 준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서 함을 발견하고, 없음의 쓰임에서 있음의 이로움을 역설하며, 하고서도 드러내려 내세우지 않는 깨달은 자의 자세를 말한다.


  1장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이 하늘과 땅의 시작이며
  이름이 있는 것은 모든 것의 어머니.
  항상 욕망이 없다면 그 신비스러움을 볼 수 있으며
  항상 욕망이 있다면 그 분명함을 볼 수 있다.
  이 둘은 한 근원에서 나왔으나 이름만 다를 뿐,
  그 같음을 어둠이라 부른다.
  어둠 속의 어둠이어라 모든 신비의 문이여!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 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同,
  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덕경 1장은 많은 흥미로움을 주는데, 우선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는 말이 함의하고 있는 뜻은 무엇인가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말로 표현되면 이미 도를 떠나서 다른 무엇이 된다는 뜻 같기도 하다. 나는 ‘도’를 도 말고도 다른 것으로 대체해 본다. 내가 이루려는 목표, 사랑 등으로. 문맥이 통하기에 더 생각해 본다. 우리는 쉽게 사랑을 말하고, 쉽게 자신의 꿈을 말한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말로 설명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게 노자의 입장이다.


  도를 꿈을 사랑을 한 가지로 보는 나는 그것을 어떻게 일상 생활 속에서 이룰 것인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셋이 함께 가야 행복할 텐데, 욕심을 낸다. ‘부를 수 있는 도는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임의로 이름을 지어 부르는 모든 대상들 또한 유한자로서 영원하지 못하다. 개체를 반복해서 이어가더라도 더 이상 그 이름은 아닌 것. 이름지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한정하는 것으로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기 위해 도를 행하되 그 자체로서 충만하고, 이름을 짓되 그 자체로서 충만하면 될까? 이름을 짓기 시작한 때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욕망이 없고있음으로 하여 신비로움과 분명함을 볼 수 있다. 흔히 빛을 경외하며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빛을 빛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둠이다. 그런 논리로 욕망이 없기 때문에 신비로움을 볼 수 있고, 반대로 욕망이 있기 때문에 분명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둘의 근원은 어둠, 어둠 속의 어둠, 그것은 모든 신비의 문이라 일컫는 것에서 밝은 면과 그것을 그것답게 하는 어둠을 함께 보는 눈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가 인생무상으로 흐르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길을 걷는 성인의 모습으로 투영되는 것은 노자의 사상이 그만큼 원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로서 오히려 우리들에게 삶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러이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루려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정도로 해야 한다, 그러니 그런 것을 꿈꾸지 말라, 아니 말하거나 부르기 전에 이런 전제 정도는 알고 출발하라. 다소 어감이 딱딱해졌더라도 이해하시길. 아마도 노자는 좀 더 부드럽고 자상한 면모를 지녔으리라.


  오히려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무위자연을 역설하고 있는 노자는 어느 누구보다도 시대를 앞서 산 철학자일 것이다. 전편에 흐르는 마음결로 사상은 철학자, 절대자, 군주,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까지도 들여다보는 혜안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위자연은 아마도 모든 것을 끝까지 열심히 해낸 자의 역설 같이 느껴진다. 다 하고 나서도 그 다함을 드러내지 않는 태연함, 속속들이 체험하고 나서 느끼는 여유로움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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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 문예출판사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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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지브란의 '예언자'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조용하면서도 깊은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사랑은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 

사랑은 소유하지도, 소유당할 수도 없는 것 

사랑은 다만 사랑으로 충분할 뿐.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것의 의미를 하나둘 알아가는 일은 

많이 돌고 돌아 먼 길을 걸어오게 되었지만, 

결국 칼릴지브란의 사랑론에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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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대비 우리 아이 맞춤법
유정룡 엮음, 백철 그림 / 잎파랑이(제이제이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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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많다 보니 맞춤법에 관련된 책들을 제법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아이가 흥미를 느끼기 쉽도록 구성되었으며, 

적절한 설명과 연습하기, 만화로 꾸며진 부록이 있어서 좋다. 

맞춤법, 띄어쓰기는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는 때부터 본격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이 책은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시점인 초등 고학년부터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중학생이 보기에도 좋고,  

논술교사 또는 부모가 참고하여 알기 쉽게 전달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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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문학동네 시집 34
이산하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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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산하 - 1960년 경북 영일 출생. 82년 이륭이란 필명으로 ‘시운동’에 등단.
시집 ‘한라산’ 필화사건 이후 11년간 절필도.

☆ 제 무늬 고운 줄 모르고, 제 빛깔 고유한 줄 모르면
차라리 피지나 말지, 차라리 붉지나 말지

누구에게나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마음으로는 만리장성을 쌓으면서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현실 앞에서
우두망찰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볼 여유 또한 없이
다만 앞을 향해 흘러가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시간 있는 법이다.
문제는 그러한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은 달라진다.

이왕에 그리 된 것,
속속들이 아파해 보고 가슴 치며 느껴볼 일이다.
심연 속으로 풍덩,
나를 내어맡기는 수밖에 달리 도리는 없는 듯,
그게 전부인.
그러므로 그 속에서 새로 태어나는 언어 있으면 놓치지 말 것.
내 안에서 태어나는 움직임 하나 붙잡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는 원동력으로 만들 것.

푸른 상처, 먼지의 무늬
그것들을 꼭 바라볼 것.
근처에서 배회하다 그마저도 놓치지 말고
제 눈으로, 힘 닿는 데까지 꼭 바라볼 것.

어느 날엔가 문득
상처라든가 먼지 같은 하찮은 것들 속에서
내가 품는 이상의 언어 잉태되는 순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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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하 시인의 '열흘 붉은 꽃 없다'를 신문지 한 귀퉁이에서 만났더랬다.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위에 쓴 감상은 그때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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