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셀더하위스(지음), 신호섭(옮김), 《루터, 루터를 말하다》, 세움북스, 2016.
중세
유럽에서 그랬다던가, 태어나자마자 나는 할머니 품에 안겨 영세와 동시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세례명은 그대로 호적에 기재되어
공적 호칭이 되었다. 할머니에 의한 할머니를 위한 가톨릭 신자가 되어 열두 해를 살았을 무렵 "무시무시한 천둥폭풍우를 만났다."
어머니가 개신교로 개종을 선언했다. 종교 문제가 아니어도 편치않던 고부 관계는 극으로 치달았다. 교황처럼 할머니는 박해했고
루터처럼 어머니는 저항했다.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서서히 프로테스탄트가 되었다. 어머니에 의한 어머니를 위한 개신교도로 산
햇수가 가톨릭 신자로 살았던 기간을 상쇄할 무렵,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부흥과
성장에만 마음을 빼앗겨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 본질은 간데없고 가식과 위선만 난무하는 교회에 의문이 생겼다. 교회 안에서 소심하게
이의도 제기해보고 교회 밖에서 '가나안 성도'로 떠돌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가톨릭 신자로 살았던 시간에 개신교도로 살았던
시간을 더한 만큼 또 세월이 흘러갔다. 철 지난 유행가처럼 저항도 함께 흘러갔다.
끓어오르던 저항의 열기가 식어버리자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저항의 아이콘, 프로테스탄트의 아버지 마르틴 루터. 그런데 아는 것이라고는 '면죄부
반대' 밖에 없는 한마디로 '루.알.못'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두꺼운 책은 베개로 쓸 게 아니라면 인테리어 소품일
뿐이고 어려운 신학 용어로 도배된 책은 폼이야 나겠지만 라틴어 원서를 읽겠다고 덤비는 것과 다를 바 없을 테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수준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방대하지 않으면서도 루터의 삶 전체를 이해하기 쉽도록 간명하게 집약한 전기가 적절하겠다.
《루터, 루터를 말하다》의 목차를 살펴보면 이 책이 그러한 범주에 속하는 책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루터의 생애를 시대순으로
나누고 각 시대별로 중요한 사건들을 조목조목 다루고 있다. 게다가 서론에서 저자는 "가능한 이 책은 루터 자신이 한 말들과 그의
동시대 인물들이 한 말을 통해서 루터를 묘사했다"고 하니 저항하는 한 인간이 개혁의 길을 걸으며 했던 생각을 나름대로 따라가며
파악하는 데에도 유용할 수 있겠다.
가장 궁금한 지점부터 살펴보자.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는 그
유명한―하지만 오늘날 읽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은―95개조 논제가 나오기 전, 루터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 당시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그 결과 도시 전체에 죽음의 냄새가 진동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 떨었고
그 가운데 루터도 있었다." 그는 수도사가 되기로 했다. "왜냐하면 루터는 철저한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깊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도원에 입문한 후에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서 '여기
나의 거룩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모든 행실을 통해 경건하고도 엄격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루터가 한 이 말에는 로마의
가르침이 함축되어 있다. 훗날 루터는 그 오류를 지적하고 한계를 비판하게 될 것이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러한 결심을 한 것은
개혁자 루터가 아니라 새내기 수도사 루터일 뿐이었다.
경건하고 엄격한 삶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자 했던 수도사 시절의 루터가 무엇을 했는지 루터는 말한다.
"나는 모든 규칙을 가혹할 정도로 준수했습니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수도사로 지냈습니다. 그동안 기도와 금식과 철야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나 자신을 고문했습니다. 추위는 나를 거의 죽음으로 몰고 갈 뻔했습니다."
"나는 스스로 내 방에 갇혀 내게 주어진 모든 기도의 시간을 끝낼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아주 극단으로 치달았고 나의 몸과 영혼을 우리 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만일 내가 좀 더 수도원에 있었다면, 나는 철야와 기도와 낭독과 다른 의로운 생활을 추구하다 죽음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인상적인
몇 부분을 옮겨 적었는데, 과장된 수사가 포함되었으리라. 그 과장을 덜어내더라도 루터가 어디에 관심을 쏟았던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을 찾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어설프게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을
학대하면서까지 자기 자신에게 저항했다. 끝까지 밀고 나가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그 한계에서,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철저한 자각에서 은혜를 맛보았고 복음을 발견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온몸으로 겪은
깨달음이었다. 한계까지 자신을 밀고 나갔던 것이 첫 번째 저항이었다면 깨달음 이후의 과정은 두 번째 저항이었다. 첫 번째
저항으로부터 곧바로 두 번째 저항이 시작되었고, 루터는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것, 믿었던 것을 모두 폐기했다. 그것은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던 토대 전체를 무너뜨리는,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는 저항이었다. 1517년 비텐베르크 교회 문 앞에 선 루터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었다. 수도원에 들어갈 때부터 열두 해(!) 동안 길고 고통스러운 저항 속에서 끈기있게 하나님을
찾은 끝에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그렇게 벼려졌다.
500년 전 개혁은 종교 영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 사회, 문화를 포괄하여 서유럽 전체를 뒤흔든 변혁이었다. 그 변혁의 중심 어느 한 곳에 루터가 있었다.
개혁을 생각한다면 루터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루터가 본래의 루터가 아니라 내 생각,
혹은 어떤 누군가의 생각을 투사한 루터의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과 그 주인공 루터를 기리는 일 만큼이나 그를 둘러싼
허상을 거두어내는 일도 필요하다. 그것은 '루터를 말하는 루터'에게서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길어 올리는 작업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저항이 무엇이고 무엇에 저항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정신. 그 정신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