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저녁에 찾은 태릉선수촌. 오후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저녁을 먹은 뒤 모두 숙소로 들어갔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선수촌은 인적이 드문 탓인지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몸은 천근 만근. 피곤할 텐데도 시종일관 자상한 답변으로 기자를 감동시킨 선수. '체조스타' 김동화(29)를 만났다.

♦ 부상을 이겨내다

김동화는 지난해 6월 유니버시아드 대표선발전 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체조선수에게 아킬레스건 부상은 치명타나 마찬가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링 금메달, 개인종합 은메달을 딴 후 한창 상승세를 타던 김동화는 깊은 실의에 빠졌다. 주위에서는 '재기가 힘들지 않겠냐'고 했고, 본인도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었다. "몇 십 년 동안 체조를 했는데도 당시에는 TV나 신문에 체조가 나오면 보기조차 싫었어요".

아킬레스건 수술을 한 후 5개월 정도 운동을 중단했다. 깁스를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스스로 재기에 대해서 반신반의 하던 상태라 많이 쉬었다. 그런데 푹 쉰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동안 쉼 없이 운동했던 터라 몸은 휴식이 절실했던 것. 쉬면서 아픈 부분도 낫고, 몸을 추스를 수 있는 기회도 됐다.

'국내시합만 조금씩 나가겠다'는 김동화의 마음을 다잡아 준 사람은 소속팀(울산동구청) 김무근 감독. "되든 안 되든 간에 한 번 더 시도해 보라"고 용기를 북돋워줬다. 아내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그래, 도전해보자' 마음을 고쳐 먹었다. 모교인 한양대에서 후배들과 함께 연습을 했다. 젊고 활기찬 후배들과 어울리면서 침체됐던 마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활력도 되찾았다. "제가 힘들 때 많이 도와준 학교 후배들에게 너무 고마워요".

김동화가 재기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렇다. "후배들에게 아킬레스건이 끊어져도 체조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후배들이 나중에 다치더라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 올림픽 대표에 선발되다

김동화는 지난 14일 끝난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5위를 차지하며 대표로 선발됐다. 세 번째 밟는 올림픽 무대지만 이번에는 각오가 남다르다. 정말 힘들게 태극마크를 달았기 때문. 솔직히 떨어진 줄 알았다고 한다. 1차 선발전을 4위로 통과했지만 2차 선발전 안마 종목에서 실수를 많이 했다. 대충 점수 계산을 해보니 힘들 것 같았다. 경기를 마친 후 체조장 밖으로 나가 최선을 다 한 것을 위안 삼으면서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그런데 웬 걸. 심판을 봤던 여홍철이 다가오더니 김동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하는 말. "축하한다. 동화야. 5등 했다". 그동안 힘들었던 부분들이 죄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정말 기뻤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정말로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 부상악몽

"예전에는 좋은 성적 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시합에 임했는데 이젠 안 다치고 시합을 끝냈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요". 체조선수는 고난도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부상이 잦다. 김동화는 유독 심했다. 2001년 11월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결승. 주종목인 링 연기 도중 팔목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당시 개인종목 철봉, 링 결승에 들었는데 링은 충분히 메달을 바라볼 수 있었고, 철봉도 해 볼만 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 이었다. "거기에서는 의사가 괜찮다고 했어요. 계속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이를 악물고 재활훈련에 매달렸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성공적으로 재기했다.

♦ 마지막 도전

김동화가 기대를 걸고 있는 부분은 단체전과 개인종목 링. 전망은 밝은 편이다. 선수들 스스로가 역대 최강의 멤버(김승일, 김대은, 양태영, 이선성, 김동화, 조성민)라는 자부심을 갖고 훈련하고 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예선 조 편성(중국, 일본, 우크라이나, 독일)도 유리하다. '일본만 잡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자체평가다. 대표팀에서 항상 막내였던 김동화는 어느덧 맏형이 되었다. 그만큼 책임감도 많이 느끼는 듯 했다. "후배들과 합심해서 꼭 단체전 메달을 일구고 싶어요".

올림픽에 3회 연속 출전하는 김동화에겐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무대다. 사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은 멋 모르고 뛰었다. 실수투성이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도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그러나 아테네 올림픽은 다를 거라고 확신한다. 힘들게 대표로 선발된 만큼 본인의 마음가짐이 차돌처럼 단단하다. 그는 "저한테 뜻밖의 행운이 주어진 게 기쁜 소식이 있으려고 그런 것 같다"며 "삼 세 번 이라는 말도 있듯 세 번째 도전에서 좋은 성적 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메달을 따면 그동안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 가장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 프로필

생년월일: 1976년 2월 21일 신장,몸무게: 165cm, 58kg 출신교: 성호초-마산중-경남체고-한양대-한양대교육대학원 박사과정(스포츠마케팅)-울산동구청 국가대표 경력: 92년부터 현재까지 주요경력: 98방콕아시안게임 마루운동 은메달, 2001유니버시아드 링 은메달, 2002부산아시안게임 링 금메달, 개인종합, 단체전 은메달 가족관계: 부모님, 3남 중 막내, 부인(윤정아) 별명: 민감, 예민 징크스: 시합 당일날 미역국, 계란을 안 먹음

-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정아야, 오랜만에 편지 띄운다. 이제 올림픽이 3개월 여 밖에 남지 않았네. 세 번째 나가는 올림픽이지만 긴장되고 떨리는 건 항상 똑같은 거 같아. 선수촌에 들어온 지 5일. 11개월 여 만에 선수촌에 들어와서 그런지 10년 넘게 생활한 곳인데도 무척 생소하게 느껴져. 그래서 요즘엔 몸도 마음도 무척 분주해.

이런 말 하긴 쑥스럽지만 너한테 얼마나 고마운 지 몰라. 2차 선발전 때 내가 예민해져 있으니까 말도 잘 못 걸고, 내가 하는 대로 다 따라 하고.. 너무 고마웠어. 내가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니까 안 그럴 거라고 하는데도 그게 자꾸 눈에 보이니까 너무 미안했어. 아마도 네가 체조를 해서 나를 더 잘 이해해주는 것 같아.

정아야, 아킬레스건 부상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건 네 힘이 컸어. 내가 포기하려고 했을 때 네가 그랬지. '최선을 다해서 다시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사실 너한테 얼마나 미안 했는 지 몰라. 작년 3월에 결혼하고 6월에 바로 아킬레스건을 다쳤잖아. 주변에서는 '결혼하자 마자 다쳤다'고 말들이 좀 있었구. 그때 마음에 상처 많이 받았지? 대표로 선발 되고 너의 짐을 좀 덜어준 것 같아서 좋았단다.

남은 기간 동안은 정말 내 모든 걸 쏟아 부을 생각이야. 그리고 항상 나를 염려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한테 꼭 메달을 선사해주고 싶어. 이 다음에 태어날 우리 아가에게도 보여주고 싶구. 하루 하루 고된 훈련을 견뎌내는 건 네가 있기 때문이란 거 잊지마. 연습시간이네. 다음에 또 쓸게.

PS) 올림픽 끝나면 '이웃사촌' (여)홍철이 형네랑 파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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