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쨍쟁 내리쬐는 뜨거운 날씨.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솟고,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러니 몇 시간 째 배드민턴 코트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선수들은 오죽이나 더울까. 연신 땀을 닦아내던 기자는 민망한 나머지 슬그머니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27일 태릉선수촌 배드민턴 연습장에서 손승모 선수를 만났다.
♦ 끝까지 최선 다할 터
'쉴 틈이 없어요'. 국가대표팀 일정을 보면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올 법도 하다. 스케줄이 정말 빡빡하다. 손승모는 올해 한국배드민턴최강전(1월 7일~10일)을 시작으로 지난 25일 끝난 전국봄철실업배드민턴연맹전까지 줄잡아 10여 개 대회에 출전했다. 국내대회가 있을 땐 밀양시청 소속으로, 국제대회가 있을 땐 태극마크를 달고서 연신 코트를 누볐다. 부지런히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느라 좀 야윈 모습이었다. "많이 뛰다 보니까 피곤한 상태에요. 처음에는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가 지금은 거의 원상복귀 됐어요".
28일부터 3일간 쉬고 나면 31일에 다시 선수촌에 복귀한다. 앞으로는 체력훈련을 중점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제가 처음에는 괜찮은데 시합을 계속 하다 보면 금방 지치는 편이거든요" 스피드와 체력이 좋은 중국 선수들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키우는 게 필수다. 그래서 남은 기간 동안 운동화 끈을 더욱 바짝 조여 맬 생각이다.
♦ 성실하고 노력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손승모는 평상시와 경기할 때 모습이 사뭇 대조적이다. 평소에는 장난기 많고, 수줍은 듯 순박한 미소가 인상적인 털털한 청년이지만 시합 때는 터프한(?) 선수로 변신한다. 벌써 눈빛부터 다르다. 선해 보이는 눈망울은 온 데 간 데 없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상대방을 쏘아본다. 진지한 표정에서도 오기와 독기가 뚝뚝 묻어나긴 마찬가지.
평소 연습벌레로 소문난 그이기에 플레이 할 때도 묵묵한 '포커 페이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정반대다. 온 힘을 다해서 내리꽂는 '불꽃 스매싱'과 공격 성공 후 주먹을 불끈 쥐며 기합을 불어넣는 세리머니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성실하고 노력하는 자세와 시원시원하고,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 그리고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은 손승모의 인기 비결이기도 하다.
'지고는 못 사는' 승부근성도 빼놓을 수 없다. "잠을 못자면 다음날 몸 상태가 달라요. 그런데 8강쯤 올라가면 잠 잘 때 시합 생각하느라 잠이 안 오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이땐 이렇게 했어야 되는데...' 상대 선수 공치는 모습도 자꾸 생각나구요".
♦ 꼭 메달 따겠습니다
생애 두 번째 올림픽에 출전하는 손승모. "주변에서 올림픽 나간다 그러면 당연히 메달 따는 줄 알아요"라며 웃는다. 다들 하는 얘기가 "부담 갖지 말고 메달 따오라"고 한다나. 내색은 안 하지만 '부담 만빵'이다. 아닌 게 아니라 손승모의 목표는 메달권 진입이다. 뭣 모르고 가서 일만 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와는 사정이 영 딴판이다. 지난 4년간 손승모는 쑥쑥 컸고, 어느새 한국 남자 단식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1차 목표는 시드를 받는 것이다. 그래야 초반에 강적들을 피해갈 수 있다. 세계랭킹 8위까지 시드가 배정되는데 손승모는 현재 9위다. 올림픽 전에 말레이시아오픈이 남아 있지만 참가 여부는 미지수. 하지만 상황은 희망적이다. 시드는 국가당 3명까지 받을 수 있는데 8위 안에 중국선수 4명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 된 배드민턴에서 지금까지 금4, 은3, 동메달 3개를 수확해 냈다. 그런데 유일하게 남자단식만 노메달이었다. 손승모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일단 감은 좋다. 손승모를 비롯, 이현일, 박태상 등 최정예 멤버가 출동하고, 배드민턴이 경기 일정 상 앞쪽(8월 14일~21일)에 있는 것도 유리한 부분이다. 순위 다툼이 치열해질 막판보다는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덜 할 테니까 말이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역시 중국 선수들. 린 단(1위), 첸 홍(2위), 바오 춘라이(4위)가 출전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중에서도 상대전적 1승5패로 뒤져있는 린 단이 가장 까다로운 상대다. 또한 왕 충 한(3위, 말레이시아), 히다얏 타우픽(11위, 인도네시아)도 경계대상이다. 하지만 세계랭킹 10위 이내 선수들의 실력은 백지 한 장 차이다. 어차피 당일 컨디션에 따라서 성적이 좌우될 공산이 크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꼭 메달 따겠습니다" 손승모는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 쇼핑 하는 거 좋아해요
'배드민턴으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6년 째 선수촌 밥을 먹고 있는 손승모. 하지만 운동복을 벗으면 그도 젊고 건강한 25살 보통 청년으로 돌아간다. 운동하고 쉬는 시간에는 스타와 고스톱 같은 컴퓨터게임을 즐기고, 시합 없는 날은 동료들과 영화도 본다('트로이'도 벌써 봤단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즐거운 시간은 동갑내기 여자친구(김나미)와 데이트 할 때. 같이 쇼핑도 하고, 맛난 것도 먹으러 다닌다. 오랜만에 나오면 '세상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나. 운동도, 데이트도 열심히 하는 손승모는 한 마디로 멋진 청년!
손승모에게는 그동안 숱한 좌절과 영광이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 때, 셔틀콕에 오른쪽 눈을 맞아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이름 모를 뇌사자의 안구를 기증 받아 시력을 되찾았던 일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극적으로 단체전 우승을 일궈냈던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라고 한다.
이제 올림픽이 2개 월 앞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아킬레스건 염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꾹 참고 견디는 것도 올림픽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 그렇기에 오늘도 손승모는 선수촌에서 셔틀콕을 친다. 묵묵히, 열심히, 그리고 힘차게!
▲ 프로필
생년월일: 1980년 7월 1일 신장: 181cm 출신교: 밀양초-밀양중-밀양고-원광대-밀양시청(경남대학원 재학 중) 국가대표 경력: 99년부터 현재까지 주요경력: 2001년 홍콩오픈 단식 우승, 2002년 코리아오픈 단식 준우승, 2002년 아시안게임 단체전 우승, 단식 3위, 2003년 세계선수권 단식 3위 가족관계: 부모님, 누나 별명: 해효 징크스: 시합 전 잠을 못 자면 몸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