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점심 무렵 찾은 태릉선수촌. 때 아닌 6월 무더위가 절정을 이룬 이날, 실외에서 선선한 곳을 찾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찾기'나 다름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운동장 앞 벤치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땡볕은 접근할 엄두도 못냈다. 흥겨운 음악이 선수촌 가득 울려퍼지는 가운데 제법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김기석 선수와 얘기를 나눴다.

▲ 무지하게 많이 뺐죠

'시합보다 체중감량이 훨씬 어렵다'는 것은 체급종목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물론 김기석도 예외는 아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48kg급 선수였던 김기석에게 "체중감량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평소 체중은 54kg. 대회 때마다 6~7kg씩 빼야 했으니 답변은 들으나 마나. "무지하게 많이 뺐죠" 그때와 비교하면 51kg급에서 뛰고 있는 지금은 양반이지만 감량의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다. "어차피 빼는 건 똑같아요".

김기석은 3개국(이탈리아,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전지훈련에서 돌아온 다음날(3일)부터 바로 태릉선수촌 합숙에 들어갔다. 그리고 5일부터는 다시 강훈련에 돌입한다. 전지훈련지에서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너무 더워서 어쩌냐고 했더니 "지금 한국 날씨가 운동하기에는 딱 좋아요"라고 잘라 말한다. '체중과의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 첫 태극마크의 추억

첫 키스, 첫 미팅, 첫사랑.. '처음'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마음을 들뜨고, 설레이게 한다. 잠시나마 아련한 옛 추억에 젖어들게 해 미소짓게 만든다. 아마도 운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선수들은 '첫 시합' '첫 승리' '첫 태극마크' '첫 메달'을 평생 잊지 못할 게다. 어느덧 국가대표 6년 차 중고참이 된 김기석도 '첫 태극마크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국제대회 데뷔전은 99년 킹스컵 대회. 부푼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김기석의 첫 시합 상대는 쿠바선수 였다. 상대선수로 말할 것 같으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2연패한 '절대강자'. 국제경험이 전무한 신참내기가 상대하기엔 너무도 벅찬 상대였다. 당연히 졌다. 그리고 '비극'은 계속 된다. 두 번째로 출전한 대회였던 99년 세계선수권 1차전 상대 역시 그 선수. 물론 졌다. "대적한다기 보단 무서웠어요" 잔뜩 얼어서 시합이고 뭐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잘 했어, 그 정도면 아주 잘 한 거야" 코치 선생님의 말소리만 귓가에 맴돌 뿐.

▲ 유쾌, 상쾌, 통쾌한 청년

"천진난만하고, 잘 놀고, 이야기 잘하고.." 본인의 말마따나 김기석은 명랑, 쾌활한 청년이다. '복싱선수'하면 으레 '한 터프'할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정반대다. '후까시'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동혁' '현빈'같은 럭셔리한 이름보단 '봉수' '만수'같은 서민적인 이름이 훨씬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 김기석은 뭘 물어봐도 거침이 없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답변도 시원시원하게 잘 한다. 솔직담백한 것도 장점. 말할 때 이러 저리 재는 법이 없고, 생각나는 대로 툭툭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예의 바르고, 말에 조리가 있다. '삼척 동자'(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들에게 고하노라. '김기석 반 만 닮아라'.

선수촌 내 식당, 김기석은 오랜만에 만난 다른 종목 친구들과 얘기 꽃을 피우기에 바쁘다. 나이보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도 그렇고, 신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이 꼭 사춘기 소년 같다. 여자친구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더욱 밝아진 김기석은 이 말을 꼭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수정아, 다치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해라. 오빠가 응원 많이 할게”.

▲ 복싱은 운명

김기석이 처음 복싱에 입문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무렵.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뜀박질도 잘 하고, 태권도에도 소질이 있었다. 본인도 그렇고, 부모님도 그 쪽으로 가길 바랐다. 하지만 앞집 사는 형 때문에 진로를 복싱으로 바꿨다. 앞집 형(류지운)은 당시 경북체고에서 잘 나가던 복싱선수. 어린 마음에 펀치를 마음껏 휘두르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글러브를 끼게 됐다. 어찌보면 복싱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슉슉~

김기석은 한국 아마복싱을 이끌고 있는 선두주자. 6년 째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도 땄다. 하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안쓰러운 마음과 걱정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지금도 썩 좋아하시진 않아요. 마음 아프잖아요” 집(대구)에 내려가면 가장 먼저 "어디 다친 데는 없냐?"면서 몸부터 챙겨주는 부모님. 그렇기에 김기석은 더 열심히 샌드백을 두드린다.

▲ 노력한 만큼 결과 얻길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 권투는 노메달에 그쳤다. 한국이 올림픽 복싱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변에선 '추락' '몰락'같은 단어를 써가며 입에 거품을 물면서 한국 복싱의 앞날을 걱정했다.

김기석은 2000년 올림픽 때 한국선수로는 유일하게 8강까지 올랐지만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8강전에서 브라힘 애슬럼(프랑스)에 8-12로 판정패 해 메달 문턱에서 발길을 돌렸던 것. 그로부터 4년 후, 그는 한 체급을 올려 다시 돌아왔다. 올림픽 메달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해서 메달 따고 은퇴하고 싶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길.

원형 탈모증 때문에 머리를 아예 밀어버려 동료들 사이에서 '빡빡이'로 통하는 김기석. 그의 앞날도 '빡빡머리'처럼 시원하게 뚫리길 바란다. 그나저나 어쩌나. 올림픽 끝나면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 만나고, 여행 다니면서 한 달간 푹 쉬고 싶다는데 9월 중순에 바로 전국체전이 있으니 말이다. 별 수 없지 뭐. 본요리(올림픽) 먼저 화끈하게 해치우고, 디저트(전국체전)로 깔끔하게 무리하는 수밖에.^^

▲ 프로필

생년월일: 1980년 9월 2일 신장/몸무게: 171cm, 54kg 출신교: 대구효동초-경북체중-경북체고-서울시립대-서울시청 국가대표 경력: 99년부터 현재까지 주요경력: 2001년 동아시안게임 금메달,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03년 중국오픈 금메달 별명: 빡빡이 취미: 친구들과 어울리기 종교: 불교 여자친구: 박수정(경성대 수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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