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9월 10일 로마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열렸다. 로마시청을 출발한 69명의 건각들은 로마 시내를 일주하는 코스를 달리고 또 달렸다.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 결승점인 콘스탄틴 개선문을 가장 먼저 통과한 사나이는 아베베 비킬라 였다. 우승기록은 2시간15분16초2. 당시 '마의 벽'으로 통하던 2시간20분대 벽을 5분 가까이 단축시킨 세계최고기록 이었다. 아프리카 흑인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이기도 했다.

아베베가 올림픽 마라톤의 월계관을 쟁취한 순간 그의 조국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1935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군대는 에티오피아를 무력침공 했고, 시바여왕의 후예들은 9년간에 걸쳐 피의 항전을 벌어야 했다. 그로부터 25년 후 아베베는 맨발로 옛 침략국의 수도를 정복했던 것이다.

'아베베의 전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베베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해 또 다시 세계최고기록(2시간12분11초2)을 갈아치우며 올림픽 2연패를 이뤘다. 이번에는 맨발이 아니라 양말과 신발을 모두 갖추고서 였다. 경기 40일 전 맹장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대역주였다. 1위로 골인한 후 5분간 정리체조를 하면서 "앞으로 20마일(35km)은 더 달릴 수 있다"고 큰소리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에티오피아의 황실근위병 소속이던 아베베는 두 번의 올림픽 우승으로 일등병에서 하사로, 하사에서 다시 중위로 특진했다. 도쿄올림픽 직후 황제는 그에게 폴크스바겐 승용차를 하사했다.

아베베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그는 사상 초유의 올림픽 마라톤 3연패를 노렸지만 중간에서 레이스를 포기했다. 대신 후배인 마모 웰데가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했다. 그의 희생 덕분에 에티오피아는 '올림픽 마라톤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웠다.

아베베는 6개월 뒤 명예회복을 선언하고 다시 훈련에 돌입했지만 얼마 후 자동차 충돌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평생 휠체어에 앉아 생활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 다리로 세계를 제패한 그에게 뛸 수 없다는 건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전에 '포기'라는 단어는 없었다. 대신 탁구라켓을 잡았고, 결국 피나는 노력 끝에 장애인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올림픽 마라톤 2연패 못지 않은 위대한 성취였다. 아베베가 진정한 올림픽 영웅으로 추앙 받는 이유다.

그는 1973년 10월 25일, 휠체어를 탄 채 또 한 번 교통사고를 당해 불과 41살의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의 질주는 현재 세계 육상계를 강타하고 있는 아프리카 '검은 돌풍'의 시발점이었고, 그가 만든 '맨발의 전설'은 여전히 아프리카인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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