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유쾌한 만남이었다. 강초현 선수, 총 잘 쏘고, 이쁘고, 똘망똘망 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 만나보니 마음 씀씀이는 비단결이요, 생각하는 건 수심 3,454m 바다다. 거기다 은근슬쩍 곁들이는 유머에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비가 한바탕 퍼붓고 난 후라서 그런지 나무냄새, 흙 냄새가 너무도 싱그러웠다. 맑게 갠 하늘보다 더 맑은 강초현(23)을 태릉사격장에서 만났다.

♦ 추억의 시드니올림픽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떨리고, 긴장돼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 공기소총 은메달리스트 강초현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감회 어린 표정을 지었다. "경기 끝나고 뒤를 딱 돌아봤는데, 이은철 선수가 2등이라고 말을 해줬어요". 계속 1등을 달리던 강초현은 9번째 발에서 동점을 허용했고, 마지막 10번째 발에서 낸시 존슨(미국)에게 역전을 당했었다. "아까웠죠.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은메달도 굉장한 거 잖아요".

강초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팀의 대회 1호 메달리스트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시상대에서 보여준 해맑은 미소 때문이었다. "올림픽에서 2등 하는 게 어디 쉽나요. 저는 은메달 따고도 선수들이 시상대에서 고개 푹 숙이고 그런 게 싫었어요". 시상대에 서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걸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고, 밑에서부터 뭔가가 밀려오는 느낌이 들었단다. "그러니 금메달 딴 선수들은 어떻겠어요. 저 같아도 울 것 같아요". 게다가 '재미 만빵'이었다고. "말도 안 통하는데 옆 선수들이랑 막 말하구요". 뭐라고 말하냐고 물었더니 "Congratulations! 거기까지 하고, 그 다음부턴 한국말로 하죠"라며 장난스레 웃는다.

♦ 재밌고 신기해요

"버스도 못 타고, 혼자서 못 다녔죠". 올림픽 후 '태극마크 초년생' 강초현은 속된 말로 '떴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사람처럼. 강초현 태풍은 시드니에 있을 때부터 거세게 불어 닥쳤다. "기자분들 피해서 도망다녔어요. 방 안에 갖혀 있구요". 주변에서 너무 귀찮게 해서 폐막식도 못보고 서둘러 한국에 돌아왔다. "그때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근데 한국 오니까 더 심했죠".(웃음) 마냥 신기하고 놀라웠다. 유명해지길 바랐던 것도 아니고, 그저 열심히 총을 쐈을 뿐인데 한 두 달 새 유명인사가 된 자신이. "저 자신은 변하지 않았는데, 주변이 달라졌죠". 좋고 나쁜 걸 떠나 재밌었단다. "저는 아직도 제가 신기해요.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시니 너무 고맙죠. 그게 언제적 일인데..."(웃음)

♦ 사심을 버려라

가만 보면 고등학생들이 총을 잘 쏘는 것 같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공기소총 금메달리스트 여갑순도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강초현도 시드니올림픽 때 고교생 사수였다. 요즘 '잘 나가는' 천민호도 그렇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겁이 없어서 그럴 거에요. 저도 뭘 몰랐고, 사심이 없었죠". 메달에 대한 욕심은커녕 출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좋았단다. "마음을 비우는 게 중요한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지금은 사심 많죠".(웃음)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순위가 뒤바뀌는 공기소총. 보는 사람도 조마조마한데 직접 쏘는 사람은 어떨까. "점수에 신경 안 쓰려고 해요. 점수를 의식하다 보면 더 안 맞거든요".

사격을 잘하기 위한 뽀인뜨는 집중력이라고. "저는 보통 때는 집중력이 없어요. 사격 들어가면 노력하는 편이죠. 그래서 '놀 땐 놀고 할 땐 한다'는 소리를 들어요". 그래도 실수로 잘 못 쏘면 평상심을 잃어버릴 때도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럴 땐 또 방법이 있단다. "만점을 쏘든 9점을 쏘는 내색하지 않는 거에요. 본인이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면 게임에 말릴 수가 있거든요". 사실 올림픽 때 무지하게 떨렸단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강초현이 떨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더니 바로 돌아오는 답변. "보는 사람들은 제가 진짜 침착했대요. 표정 동요 하나 없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웃음) 하지만 사격이 '멘탈스포츠'라서 좋은 점도 있다. "저를 보셔도 알겠지만 신체적인 조건은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더 좋아요. 오래오래 할 수 있잖아요".(웃음)

♦ 제 꿈은 강 쌤~~~~

"맨날 학교 가고 싶죠". 강초현은 현재 고려대 체육교육과 02학번 학생이다. 학교생활 재밌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친구들이랑 같이 운동하면서 땀 흘리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테니스, 배드민턴, 농구, 수영. 종목도 안 가린다. 뽀인뜨는 즐기는 것. "저는 수영장도 혼자서 잘가요. 근데 남이 시켜서 하는 건 싫어요". 고등학교 때 학창생활을 제대로 못 누린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대학 때는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싶다고. 그렇다고 거창한 건 절대 아니다. "쇼핑할 때 '어디 가면 더 싸게 살 수 있을까' 연구하고, 다리품 팔면서 돌아다니는 게 너무 좋아요. 중요한 건 과가 과인만큼 남자들이 많다는 것 아니겠어요".(웃음)

인생의 소박한 즐거움을 아는 강초현의 꿈은 체육선생님. 마음씨 좋은 선생님이 될 거 같다고 하자 "팰 땐 막 팰 거 같아요. 얼굴과 매치 안 되게"라며 웃는다. 체육시간에는 엄하지만 보통 때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단다. '내년에 있을 교생실습이 기대된다'는 강초현은 참 행복한 사람!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 계속 지켜봐주세요

놀라지마시라. 마냥 앳되어 보이는 '깜찍이' 강초현이 팀(갤러리아 사격단) 내에선 맏언니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마음가짐이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전에는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놀기 좋아하고, 생각도 끌려가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무조건 후배들한테 잘해주고, 모범을 보여야 겠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선후배 관계라기 보단 가족처럼, 친구처럼 편한 사이. 그래도 선배로서 '싫은 소리' 해야 할 때가 있지 않을까. "제가 모질 지 못해서 그런 말을 잘 못 해요. 제가 말하고도 제가 더 미안해 하고, 더 신경 쓰고 그래요".

팀 내에서 '깡언니'로 통한다는 강초현에게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아테네 올림픽 선발전은 탈락했지만 아직 젊고, 도전할 수 있는 열정과 의지가 있기 때문에 계속 노력할 거구요. 그러니까 너무 아쉽게 생각하지 마시고, 지켜봐 주세요". 인터뷰를 마친 후 사대로 총총히 걸어가는 강초현의 뒷모습을 보면서 기자는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기특한 것'.^^ 참, 아테네올림픽에서 멋진 해설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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