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있었다. 4살짜리 꼬마는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처음 유도장을 찾았다. 84년 L.A올림픽에서 하형주를 보고 한 눈에 반해버린 외할머니는 손자를 훌륭한 유도선수로 키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유도가 뭔지도 몰랐던 아이는 노란색 유치원복 대신 도복을 입었다. 본격적으로 유도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겨우 9살 때였다. 다른 애들보다 유도입문이 훨씬 빨랐던 아이는 매일같이 유도매트에서 땀을 쏟았다. 갈수록 유도에 흥미를 느꼈다. 노력했는 데도 안 될 땐 자신에게 실망도 했다. 그러나 곧 극복해냈다. 유도의 매력에 풍덩 빠졌다. 올림픽 금메달을 가슴에 품었다. 아이는 어느덧 24살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지금은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태릉선수촌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아이의 이름은 권영우(남자유도 81kg급)다.

♦ 이 기회, 놓치고 싶지 않아요

지난 6월 16일 용인에서 있었던 아테네올림픽 최종선발전 81kg급 결승. 권영우는 종료 1분 47초 전 민성호를 호쾌한 업어치기 한판승으로 꺾은 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우승과 함께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국제대회보다 국내선발전이 더 어렵다'는 말처럼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고비는 1차 선발전. "그때 시합이 말렸어요. 김수경(용인대) 선수한테 졌을 땐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패자전이 남아있었지만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 "김석규(한양대) 감독님의 격려가 힘이 됐어요. 그래도 그때 3등을 해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것 같아요". 자신감을 회복한 권영우는 2,3차 선발전에서 모두 우승했다.

권영우를 비롯, 국가대표팀은 지난 20일 선수촌에 입촌했다. 일단 훈련조건은 '굿~!'이라고. 남자대표팀 권성세 감독과는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 권 감독은 권영우의 보성중·고 시절 은사다. "선수들 마음을 너무 잘 아세요. 기술적인 면에서도 잘 가르쳐 주시구요". 실력 짱짱한 선배들도 든든한 존재다. 특히 보성고 동문인 장성호(100kg급)는 기술적인 면에서 많은 조언을 해준다. 난생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된 권영우의 각오는 아주 다부지다. "4년마다 한 번씩 있는 대회니까 기회 놓치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하고 있고 있어요. 꼭 금메달 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친구야, U-대회 기억나지?

"누구랑 닮은 것 같은데.." 권영우와 얘기를 나누면서 슬쩍슬쩍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런!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바로 코 앞에 두고서 괜히 엄한 사람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았군. 딩동댕~ 정답이다. 이원희 선수랑 닮았다! 척 보면 알겠지만 일단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똑같다. "같이 다니면 쌍둥이냐고 그래요. 하도 붙어 다니다 보니까 말투나 행동도 비슷해졌어요".(웃음) 권영우와 '한판승의 마술사' 이원희(73kg급)는 절친한 친구 사이. 두 사람은 보성중·고 동기동창인데다가 현재 실업팀(마사회)에서도 한솥밥을 먹고 있다. 물론 아테네 올림픽에도 동반출전 한다. 얼마나 좋을까. 어릴 적 옆집 살았던 애가 올림픽에 나간다는 말만 들어도 설레발 치며 좋아할 텐데, 중학교 때부터 유도장에서 동고동락해온 친구랑 같이 올림픽에 출전하니 말이다. "힘들 때마다 옆에서 격려해주고, 자세 잘못되면 고쳐주고 그래요". 두 사람은 서로 힘이 되어 주는 존재다. "원희는 어쩔 땐 제가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독할 때가 있어요. 생활이나 운동 면에서 절제력도 강하구요". 두 사람은 서로 배울 점이 많은 친구이기도 하다.

두 사람에겐 잊을 수 없는 대회가 있다. 바로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권영우와 이원희는 이 대회에서 나란히 2관왕(단체전, 개인전)에 올랐다. 사실 두 사람은 '엇갈린 승부' 때문에 고민 깨나 했다. "이상하게 원희랑 같이 나가는 대회에서는 제가 1등 하면 원희가 못하고, 원희가 1등 하면 제가 못하고 그래요". 이어지는 권영우의 말. "이때도 제가 먼저 금메달을 땄었거든요. 근데 원희가 컨디션이 너무 안 좋다는 거에요. 걱정이 너무 많이 됐죠". 하지만 웬 걸. 이원희는 젼 경기를 한판승으로 장식하며 여유 있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만 가지 기술을 다 써가면서 말이다. "정말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입가에 미소를 살포시 머금고 있던 권영우의 입이 어느새 귀에 걸려있다. "우리 뽕빨나게 한 번 해보자꾸나". 두 사람은 지난해 헝가리오픈과 U-대회에 이어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 번째 동반우승을 꿈꾼다.

♦ 부돌린은 없다

"남자 81kg급 결승. 이제 12초 남았습니다. 유효 1개로 뒤지고 있는 권영우 선수, 부돌린에게 자신의 주특기인 업어치기를 시도합니다. 아, 한판! 5,4,3,2,1. 금메달! 권영우 선수, 금메달입니다". 요즘 이런 상상을 자주 한다는 권영우. 그러나 절대 상상만은 아니다. 현재 남자 81kg급은 '절대 강자'가 없는 상황. 어떻게 보면 정상을 꿰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라이벌로는 에스토니아의 부돌린(2001세계선수권 준우승)과 독일의 위너(2003세계선수권 우승)를 꼽을 수 있어요". 요즘 비디오를 보면서 전력 탐색에 한창인 권영우는 나름대로 대비책을 강구해놓고 있다. "유럽선수들이 자주 구사하는 들어메치기는 초반에 체력소모가 많아요. 3분 정도만 잘 버틴 다음 후반에 승부를 걸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봐요". 다만 비디오를 봐도 '정답'이 안 나오는 부돌린에 대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선배들한테 차근차근 물어봐야죠". 그러나 일본 국내선발전에서 추성훈을 꺾고 올림픽 티켓을 따낸 토노우치에 대해서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학시절 교환경기도 많이 해봤고, 4월 한·일 합동 전지훈련(태릉선수촌)에서도 많이 잡아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파악이 된 상태에요". 한 가지 아쉽다면 추성훈이 탈락했다는 것. 권영우와 추성훈이 올림픽 결승에서 맞붙는다고 생각해보라. 상상만해도 멋지지 않은가. "저도 추성훈 선수가 출전하길 바랐었는데 너무 아쉬워요".

권영우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만약 포상금을 받게 되면 어디에 쓸 거냐고 물었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냉큼 "십일조 헌금을 낼 거"란다. 마음 속으로 준비하고 있는 세리머니도 '기도 세리머니'. 혹시 기도의 주내용이 '금메달 따게 해달라'는 게 아닐까. "아니요. 구체적으로 해야 들어주세요. 저는 기술을 달라고 해요. 무조건 금메달 따게 해달라고 하면 안 들어주시더라구요".(웃음) '가식없이 소탈한 순둥이', '생각 바르고, 진중한 멋쟁이', 권영우. 그런데 '아무리 봐도 괜찮은' 이 남자, 갑자기 핏대를 올리더니 단호하게 한 마디 한다. "TV에서 50일 남았다고 하니까 저희가 50일 '바짝' 해서 나가는 거라고 생각 하시는데요. 저희는 1년 넘게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안 되면 진짜 죽는다는 각오로 하고 있습니다".

♦ 프로필

생년월일: 1981년 4월 10일 신장, 몸무게: 176cm, 84kg 출신교: 강동초-보성중-보성고-한양대-마사회 국가대표 경력: 2001년(대학교 2학년)부터 현재까지 주요대회 경력: 2001년 베이징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3년 헝가리오픈 금메달,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2관왕, 2003년 코리아오픈 금메달 가족관계: 부모님, 1남1녀 중 장남 종교: 기독교 별명: 권띵 취미: 음악감상 징크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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