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올림픽 금메달은 천운'이라고 한다. '금메달은 떼논 당상'이라고 할만큼 출중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이상하게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는 선수가 있다. 반면 그저 최선을 다한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참가했다가 덜컥 금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도 있다.

올림픽에서 불운했던 선수로는 우선 '인간새' 세르게이 부브카(장대높이뛰기)가 있다. 세계기록 35차례 경신, 세계선수권 6연패. 그의 삐까번쩍한 경력만 본다면 올림픽에서 금메달 3~4개쯤은 너끈히 땄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절대 아니다. 부브카가 4차례 올림픽에 출전해 목에 건 메달은 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이 유일하다.

'불운'하면 여자육상 단거리 스타 게일 디버스도 빼놓을 수 없다. 디버스는 92, 96년 올림픽 100m 2연패를 달성했지만 사실 그녀의 주종목은 100m 허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올림픽 100m 허들에서는 무관에 그쳤다. 특히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00m 허들에서는 계속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허들에 걸려 비틀거리는 바람에 5위에 그쳤다. 당시 그녀의 안타까운 눈빛을 어찌 잊으랴.

이 외에도 지독한 불운 때문에 눈물 뿌린 선수는 숱하게 많다. 하지만 '불운'하면 딱 오르는 선수 한 명이 있다. 바로 마라토너 도란도 피에트리(이탈리아)다. 1908년 런던 올림픽 남자 마라톤 경기. 가장 먼저 경기장 입구에 들어선 선수는 도란도였다. 경기장 1마일(약 1,600m) 앞에서 찰스 헤프론을 추월한 그는 줄곧 선두를 내달렸다. 그의 우승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때 도란도가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일어나보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던 그는 계속 쓰러졌다. 보다 못한 심판들이 그를 일으켜 세워 골인점에 도착할 수 있도록 부축했다. 덕분에 도란도는 가장 먼저 결승선을 끊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등으로 들어온 존 헤인즈(미국)는 “레이스 도중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어필했다. 결국 주최측은 헤인즈가 제기한 이의를 받아들여 도란도를 실격 처리 했고, 헤인즈에게 금메달을 수여했다. 얼떨결에 금메달을 박탈당한 도란도는 심판들에게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도움 때문에 억울하게 실격된 그는 속으로 분을 삭힐 수밖에 없었다.

비록 금메달은 빼앗겼지만 도란도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영국의 알렉산드라 여왕은 그에게 특별 제작한 골드컵을 수여했고, 위대한 작곡가 어빙 벌린도 직접 작곡한 노래를 그에게 헌정했다. 무엇보다도 일명 '도란도 금메달 강탈사건'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마라톤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로부터 96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도란도는 많은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어찌보면 도란도는 '비운의 선수'라기 보단 '마라톤 전도사'라는 별명이 더 잘 어울릴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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