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KT 천안지점 임계숙입니다". 사전에 임계숙 씨가 근무하는 곳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전화를 건 거였지만 임계숙 씨가 직접 전화를 받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하마터면 "어머머, 하키선수 임계숙 씨세요?"라며 호들갑을 떨 뻔 했다. 지금 나이가 20대 후반 이상인 사람이라면 '임계숙'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여자 하키의 불모지였던 한국을 일약 하키 강국으로 변모시킨 한국 여자하키의 간판스타, 16년 선수생활 중 14년을 태극마크를 달고 뛰며 120골 이상을 넣은 세계 최고의 골게터를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이제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고 있는 임계숙(41)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 88년 올림픽- 아쉬움은 없어요
여자하키팀은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강훈련에 돌입했다. 목표는 금메달. 절대 욕심이 아니었다. 한국은 86년 아시안게임에서 인도, 파키스탄 등 강팀을 모두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한 터. 아시아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었다. 이듬해 열린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줄곧 3위권을 유지했다. 올림픽 출전국 중 호주를 제외하곤 다 이겨본 적이 있는 팀이었다. 더구나 우리의 홈그라운드에서 열리는 대회가 아닌가. '한 번 해보자' 16명의 여전사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매서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필승의지를 다졌다. 88년 가을, 드디어 '붉은 땅벌'의 세계 정벌이 시작됐다.
9월 30일 여자하키 결승전이 열린 성남공설운동장은 3만 여 관중이 빼곡이 들어찼다. 한국과 금메달을 놓고 격돌한 팀은 예상대로 호주였다. 역시 호주는 강했다. 철저한 대인방어로 한국의 공격리듬을 뚝뚝 끊었다. 미드필드를 완전장악 해 한국의 주무기인 속공 플레이를 무력화 시켰다. 한국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했고, 아쉽게도 경기는 0-2 호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결승이라 부담이 좀 됐어요. 그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구요"(웃음) 하지만 은메달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단다. 오히려 짧았던 준비과정에 비하면 은메달도 대단한 성적이라는 자평. "결과에서는 졌지만 게임 내용에는 만족했어요. 무엇보다도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지요".
특히 예전 B조 마지막 경기였던 호주전은 명승부 중의 명승부로 꼽힌다. 3-4로 뒤진 채 후반전을 맞은 한국은 연거푸 2골을 넣으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종료 6분 전 동점골을 허용해 결국 경기는 5-5 무승부로 끝이 났다. 임계숙은 양 팀 통틀어 총 10골이 폭발한 이 경기에서 혼자서 3골을 책임졌다. 관중들도 일진일퇴의 '박 터지는' 공방전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경기 내용도 비슷비슷하고, 골도 많이 넣어서 참 재밌었죠". 뭇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셔준 이 경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 훈련 또 훈련
임계숙에게 물었다. "하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뭐냐고". 사실 '내 인생', '올림픽 은메달' 같은 대답이 나오겠지 싶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임계숙 왈. "박영조 감독님이요".^^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 얼마나 훈련이 힘들었으면..' 순간 기자는 무릎을 탁 쳤다. '한국 여자하키의 힘이 바로 훈련에서 나오는 거구나'. 전후반 70분 동안 쉴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하키는 체력소모가 많은 운동이다. "유럽선수들은 부딪혀보면 남자처럼 단단해서 아파요". 덩치 좋고, 기운 센 유럽선수들과 대적하기 위해선 체력이 필수인 셈. 한국 여자하키팀은 체격, 체력에서의 열세를 끊임없는 훈련으로 커버했던 것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성남공설운동장을 뛰고 또 뛰었다. 발이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도 남한산성 로드워크는 계속됐다. "그냥 쓰러지고 싶었어요. 그럼 조금이라도 쉴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훈련이 고되고 힘들었다는 얘기다. 유난히 까만 피부와 근육질의 딴딴한 장딴지는 여자하키 선수들이 훈련을 통해 얻은 '훈장'인 셈이다.
♦ 92년 올림픽- 눈물 '펑펑'
"막상 손때 묻은 스틱을 놓아야 했을 땐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많았죠". '하키여왕' 임계숙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끝으로 16년간 정들었던 필드를 떠났다. 풋풋했던 소녀시절부터 '여인의 향기'가 물씬 나는 서른 무렵까지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하키. 지난날의 영광과 좌절과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하키와 '이별의 입맞춤'을 할 때의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대한 쓰라린 기억 때문이다. 한국팀의 전력은 역대 최강.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한국은 4위에 머물렀다. 스페인과의 준결승에서 연장 2분 여를 남기고 뼈아픈 결승골을 허용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고, 3,4위전에서도 영국과 연장 접전 끝에 3-4로 패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쉬워요". 90년 북경아시안게임 이후 은퇴를 결심했던 그가 다시 스틱을 잡은 것은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뜨거운 열망 때문이었다. 대회 직전 당한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투혼을 발휘했던 것도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별무대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29살 노장, 임계숙의 꿈은 와르르 무너졌다. "대회 끝나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당시 누구보다 진한 눈물을 펑펑 쏟아냈던,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어버린 임계숙을 보면서 마음 숙연해 졌던 사람들도 있으리라. 임계숙은 '바르셀로나의 한'을 가슴에 묻은 채 은퇴했다. 하지만 은퇴한 후 그녀는 '레전드'가 되었다.
♦ 최선을 다해라
현역시절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에너자이저'를 연상시켰던 임계숙. '하키 부부'이기도 한 그는 어느덧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가 됐다. 혹시 아이들을 운동선수로 키울 생각은 없냐고 했더니 "안그래도 학교에서 자꾸 운동시키라고 난리에요"라며 웃는다. 마지막으로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번에 힘들게 올림픽 티켓을 땄다고 들었다"고 운을 땐 그는 "사실 하키는 메달 따고 못 따고의 차이가 많잖아요. 올림픽에서의 성적이 하키에 대한 관심과 발전으로 이어지니까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의 하키 여전사들이 또 한번 가슴을 후벼파는 감동을 선사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