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다". 2003년 4월 자국에서 열린 런던마라톤에서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한 폴라 래드클리프(32)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내뱉은 첫 마디다. 그가 세운 기록은 2시간15분25초. 그야말로 '놀라 자빠질 만한' 기록이건만 그는 아직도 기록에 목마른가 보다.

래드클리프는 '마라톤 여제'로 통한다. 지난날 그가 이룬 빛나는 업적을 살펴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물론이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풀코스 데뷔 무대인 2002년 런던마라톤에서 2시간18분56초로 우승한 그는 같은 해 10월 시카고마라톤에서 다시 정상에 섰다. 그것도 세계최고기록(2시간17분18초)로. 그리고 6개월 후 2003년 런던마라톤에서 세계기록을 1분53초 앞당겼다.

달릴 때마다 기록을 갈아치우는 여자, 래드클리프. 100m만 달려도 헉헉대는 사람들이 봤을 땐 그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도대체 뭘 먹고 그렇게 잘 달리는 지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할 것이다. 그는 말한다. "뛰는 걸 즐기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마라톤 광, 아버지를 둔 덕분에 일찌감치 달리기의 세계에 눈을 뜬 그는 결혼도 육상선수 출신과 했다. 어쩌면 그에게 달리기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래드클래프의 등장은 여자 마라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현재 남자 마라톤 세계최고기록은 2003년 9월 베를린마라톤에서 폴 터갓(케냐)이 세운 2시간4분55초. 10년 전까지만 해도 남녀 마라톤 세계기록은 15분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0분30초로 줄었다. 여자 마라톤이 2시간 10분 벽을 돌파한다면 그 주인공은 래드클리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래드클리프가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할 지는 미지수다. “올림픽 때 마라톤을 뛸 지 1만m를 뛸 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만약 래드클리프가 출전한다면 월계관은 그의 차지가 될 것이다. 2004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 캐서린 은데레바(2시간18분47초)의 기록은 세계최고기록에 3분22초 뒤져 있다. '봉봉남매' 함봉실(2시간25분31초)의 기록은 10분 가량 처진다. 다만 35도를 웃도는 무더위와 오르막 경사가 많은 난코스가 변수가 될 듯.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은 기원전 490년 그리스 병사 필리피데스가 달린 마라톤 평원에서 진행된다. 많은 사람들이 근육질 몸매와 검은 선글라스가 트레이드 마크인 래드클리프의 역주를 보고 싶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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