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올림픽에 나가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무척 고민스럽다. 취리히 골든리그(8월 6일)가 끝난 후 최종결정을 내리겠다".

올림픽이 코 앞으로 닥쳤건만 '육상 중거리 황제' 히참 엘 게루지(30)는 아직 올림픽 출전 여부를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호흡기 쪽의 문제 때문. "요즘 매일마다 치료를 받고 있는데 별 차도는 없네요". 더욱 답답한 건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 보통 때는 그럭저럭 견딜 만 하지만 훈련하고 난 후에는 증상이 더욱 심해진다고. 그러나 연습을 거를 수도 없는 노릇. 올림픽은 점점 다가오고, 마음은 갈수록 초조해지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엘 게루지는 모로코가 낳은 세계적인 육상스타다. 현재 남자 1,500m 세계기록(3분26초00) 보유자로, 세계선수권 1,500m 4연패를 달성했고, 96년 올림픽 이후 1,500m에서는 83차례의 레이스 중 딱 2번 패했다. 하지만 7월 초 로마에서 열린 골든리그 갈라에서 29연승 행진에 종지부가 찍혔다.

엘 게루지는 이 대회에서 1위 라시드 람지(바레인)에 2초 이상 뒤진 3분32초64의 저조한 기록으로 8위에 그쳤다. 4년 동안 패배를 몰랐던 엘 게루지는 충격을 먹었는지 시합이 끝난 후 말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경기가 열린 로마 올림픽스타디움은 98년, 자신이 세계최고기록을 세웠던 바로 그 장소라서 더욱 마음이 쓰렸다. '철옹성' 누르딘 모르셀리(알제리)으로부터 세계 1인자 자리를 물려받았던 그가 이제는 모르셀리의 입장이 된 것이다.

비록 29연승 행진에 제동이 걸렸지만, 올 시즌 성적(기록 상 랭킹 8위)도 기대 이하지만 엘 게루지는 여전히 올림픽 1,500m의 유력한 우승후보다. "아테네 대회는 나에게 마지막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그가 이토록 올림픽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올림픽 챔피언이 되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중거리 제왕'으로 불리는 그이지만 이상하게도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96년 올림픽 때는 상대 선수 발에 걸려 넘어졌고, 2000년 올림픽 때는 무명의 노아 게니(케냐)에게 발목이 잡혔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만 2개. 남한테 지는 게 익숙지 않은 엘 게루지에게 2등은 낯선 숫자 였다.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하지만 모로코 국민들은 은메달에 그친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폐막 후 모로코의 국왕 하산 2세(작고)는 왕실 전용기를 보내 엘 게루지를 픽업했고, 그가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자 왕실 주치의가 직접 치료하도록 조치했다.

"트랙을 사랑하고, 스타디움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는 엘 게루지. 그는 또 말한다. "고통스러운 훈련을 극복했을 때의 희열, 이 기분을 적어도 2~3년은 더 느끼고 싶어요". 모로코 최고의 스포츠 영웅, 엘 게루지의 세 번째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을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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