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왕성했던 20대 청년은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는 중년의 아저씨가 됐다. 스포츠팬들의 가슴을 벌렁벌렁 거리게 했던 '미소년' 같은 이미지는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창 던지기 선수 같지 않은 날씬한 몸매와 거뭇거뭇한 턱수염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거기다 오랫동안 세계정상을 지켜온 베테랑답게 얼굴에서 부드러운 미소와 여유로움이 보기 좋게 녹아있다. 바로 체코가 낳은 스포츠 영웅, 얀 젤레즈니(38) 얘기다.

아마도 젤레즈니가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을 것이다. '아, 도대체 언제적 젤레즈니란 말인가'. 기자가 중학교 다닐 때 봤던 선수가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얼마전 미국의 육상스타 게일 디버스가 올림픽에 5회 연속 출전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전해졌다. 그런데 소리 소문 없이 5번째 올림픽 메달 사냥에 나서는 선수가 또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첫 선을 보인 젤레즈니는 5회(아테네 올림픽 포함)의 올림픽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혹시 '개근상' 운운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모르는 소리. 성적도 '우등상'감 이었다.

젤레즈니는 4번의 올림픽에서 금3, 은메달 1개를 따냈다. 이것은 올림픽 창 던지기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 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타피오 코듀스(핀란드)에 16cm 뒤져 2위에 그쳤지만,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3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젤레즈니는 96, 2000년 올림픽 때는 출전 선수 중 체중(77kg)이 가장 가벼웠다. 하지만 불리한 신체조건을 특유의 순발력과 집중력, 그리고 노련미로 커버했다.

그렇다면 젤레즈니의 선수생활은 늘 평탄대로를 달렸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창 던지기 선수는 어깨부상을 늘 달고 살지만 98년에는 운동을 중단해야 될 만큼 심했다. 그러나 이름(젤레즈니는 체코말로 '철'이라는 뜻) 덕분일까. '철인'답게 99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며 당당히 재기했다.

창 던지기 세계기록(98.48m)을 보유하고 있는 젤레즈니. 냉정하게 보면 올림픽 4연패가 그다지 쉽지는 않을 듯싶다. 올 시즌 최고기록(87.73m)을 세운 알렉산더 이바노프(러시아) 등 신예들의 기세가 무섭다. 반면 젤레즈니의 올해 최고기록은 이바노프에 1.61m이나 뒤져 있다.

그는 더 이상 세계챔피언도, 세게랭킹 1위도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다. 왜냐하면 젤레즈니는 실력과 운이 동시에 따라줘야 하는 올림픽에서 벌써 3개의 금메달을 따냈으니까. '니케'(승리의 신)가 젤레즈니의 간절한 염원을 들어줄 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