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은 누구일까?'
8월 23일 새벽 5시10분 그리스 아테네의 올림픽스타디움에서 남자육상 100m 결선 경기가 열린다. 바로 이 곳에서 '총알 전쟁'의 최후 승자가 가려지는 것이다. 현재 남자 100m는 절대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는 상황.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정상을 넘보고 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선수는 '단거리의 제왕' 모리스 그린(30)이다. 일단 그간 거둔 성적에서 50점은 거저 먹고 들어간다. 97년부터 세계선수권 100m 3연패,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관왕(100m, 400m계주) 등 화려한 전적을 자랑한다. 그가 최고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적어도 2001년 까지는.
그러나 '정상은 오르기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말처럼 그에게도 시련과 고난으로 점철된 시기가 있었다. 지난 3년이 그랬다. 그린은 2002년 팀 몽고메리에게 세계최고기록(9.78) 타이틀을 넘겨줬다. 고질병인 무릎부상도 악귀처럼 따라붙어 그를 괴롭했다. 그러니 기록이 좋을 리 만무했다. "쯧쯧, 그린도 한 물 갔나보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10초37의 저조한 기록으로 준결승에서 떨어졌을 땐 이런 말까지 들었다.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 체면은 종이처럼 구겨졌다.
어느덧 서른 줄에 접어든 그린. 나이도 많고, 체력도 떨어지고…. 이제 재기는 힘들지 싶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올 시즌 보란 듯이 일어섰다. 그린은 지난 7월 12일 미국 대표선발전을 당당히 1위(9초91)로 통과했다. 그가 '컨디션 굿, 자신감 만빵'이라고 외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그린이 지난 99년 6월 자신의 최고기록(9초79)를 세웠덧 곳이 바로 아테네 그랑프리였다. '감 잡았어'. 그는 최근의 상승세를 앞세워 기필코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다는 각오다.
하지만 '타도! 그린'을 외치는 신예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올 시즌 최고기록 보유자 숀 크로포드(9초88), 미국 대표선발전 2위 저스틴 게이틀린(9초92 이상 미국), 지난해 세계선수권자 킴 콜린스(세인츠 키츠 네비스), 올 시즌 랭킹 2위 기록을 낸 아사파 포웰(9초91, 자메이카) 등이 그린에게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중에서도 크로포드는 경계대상 1호. 특히 그린과 크로포드의 대결은 후원사인 아디다스vs나이키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어 더욱 흥미로운 대결이 될 듯.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더 빠를 수 있었다. 바람이 마지막 스퍼트를 방해했다”. 지난 6월 초속 3.7m의 바람을 업고서 비공인 세계타이기록(9초78)을 세운 뒤 큰 소리를 뻥뻥 쳤던 그린. 트랙 밖에서는 모범적인 사생활로 귀감이 되고, 경기장 안에서는 기상천외한 세리머니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그린. '그린, 금메달'이라는 멘트와 함께 그의 전매특허인 앙증맞은(?) '혀 내밀기' 세리머니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과연 0.01초 전쟁의 승자는 누구일까. 2년 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세계기록(9초78)이 깨질 것인가. '인간 탄환'들의 쾌속 질주가 펼쳐질 올림픽스타디움은 벌써부터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