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짜릿한 승부였다. 4년 전, 시드니 올림픽 남자육상 1만m 결승. 마지막 한 바퀴가 남았을 때까지도 승부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결국 골인지점을 몇 미터 앞두고 하일레 게브리셀라시에(에티오피아)가 폴 터갓(케냐)을 앞질렀고, 가장 먼저 결승점을 밟았다. 간발의 차였다. 진짜 아슬아슬했다.

힘겹게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게브리셀라시에는 시상대에서 이를 다 드러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냈고, 에티오피아는 환호성으로 물결쳤다. '언젠간 나도 저 자리에 서리라'. 그 순간 가슴 졸이며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18세 에티오피아 소년 케네니사 베켈레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이제 그 꿈을 이루려 한다.

하일레 게브비셀라시에를 잇는 남자 장거리의 간판스타, 베켈레(22). 그는 아테네 올림픽 5천m, 1만m 두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 두 종목 모두 출전하기로 마음먹기까지는 갈등과 고민이 많았다. 물론 이미 경험이 있긴 하다. 그는 지난해 파리세계선수권에서 10만m 금메달, 5천m 동메달을 땄다. 하지만 올림픽은 세계선수권과는 차원이 또 다르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대회. 경쟁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게 뻔하고, 아테네의 '살인더위'도 염려된다.

한편으론 걱정이 되지만 또 한편으론 자신감이 울끈불끈 솟는다. 그도 그럴 것이 베켈레는 5천m, 1만m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그의 기량은 최절정기를 맞고 있다. 기록 경신 속도는 놀랍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다.

지난 6월 1일 베켈레는 육상그랑프리 FBK게임(네덜란드, 헹겔로) 5천m에서 12분37초37로 세계기신기록을 세웠다. 6년 전 게브리셀레시에가 수립한 종전기록을 2초 이상 앞당긴 것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8일 후에는 1만m 세계기록도 갈아치웠다. 6월 9일 슈퍼그랑프리 골든스파이크대회(체코 오스트라바) 남자 1만m 결승. 그는 26분20초31을 기록, 또 다시 게브리셀라시에의 세계기록(26분22초75초)를 깨뜨렸다. 이 역시 6년 만이었다.

베켈레가 5천m에서 세계기록을 세우자 게브리셀라시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곳(헹겔로)은 내가 10년 전 5천m 첫 세계기록을 세웠던 장소다. 이 곳에서 팀동료인 베켈레의 아름다운 질주를 보게 돼서 너무 기쁘다. 나는 베켈레가 너무 자랑스럽다". 이제 그는 자신의 우상인 게브리셀라시에를 뛰어넘으려 한다.

"올림픽 후 결혼할 내 피앙세에게 금메달을 바치겠다". 베켈레가 금메달을 따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과연 올림픽 2관왕의 꿈은 이뤄질 것인가. 그의 찬란한 미래는 아테네 올림픽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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