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재연한 개막식 식전행사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이자 가슴 뭉클한 역사의 현장이 아테네올림픽 개막식에서 재연됐다. '신들의 도시' 아테네에서 열리는 올림픽답게 개막식은 그리스 문명과 인류의 발전상을 한 눈에 보여주는 대서사시로 꾸며진 것. '반인반마' 켄타우로스, '바다의 신' 페가수스, '태양의 신' 아폴로를 비롯해 제우스, 에로스, 헤라, 니케, 갑옷을 입은 병정까지 금방 그리스 신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들이 아테네올림픽의 개막식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한국축구, 반세기 8강 염원 성취

올림픽 축구 사상 첫 조별예선 통과와 56년만의 8강 진출 등 한국축구가 이번 대회를 통해 이룬 업적은 대단하다는 평가. 한국은 조별예선 1차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무승부, 다소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멕시코전에서 1승을 올려 8강 진출 가능성을 높였고, 말리와는 극적인 3-3 무승부를 기록하며 8강 테이프를 끊었다.

그러나 세계의 벽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했던 대회이기도 했다. 선수들의 개인능력 뿐만 아니라 전술 이해능력이나 작전 소화능력에서도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미흡한 모습을 보였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렀던 말리, 8강전 상대 파라과이가 이번 대회에서 상대팀에 따라 포백, 스리백 등 상대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펼치는 데 비해 한국의 전술은 너무나 단순했다.

일, 중 도약...미, 러시아 쇠퇴

미국-러시아의 스포츠 양강 체제가 서서히 종말을 고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호주의 강세와 일본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이후 종합순위 1,2위를 나눠 가졌던 미국과 러시아는 스포츠 강국의 면모는 유지했지만 예전처럼 다른 나라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미국은 수영(12개)과 육상(8개)에서 20개의 금메달을 가져갔지만 금메달 수가 30개를 겨우 넘는 수준. 특히 믿었던 여자육상에서 단 2개의 금메달에 그친 것이 부진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러시아는 더욱 심각하다. 수영 경영과 기계체조는 노메달. 종합순위도 3위로 내려앉았다.

반면 중국은 당초 목표(금메달 20개, 종합순위 3위)를 초과달성하며 러시아를 추월해 미국을 위협하는 스포츠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대회 초반까지만 해도 중국의 1위 질주를 '탓잔 속 태풍'이라고 폄하하는 시각이 많았던 것이 사실. 그러나 중국은 사격, 역도, 다이빙 등 전통적인 강세종목 뿐만 아니라 카누, 테니스, 육상 등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각 종목에서 고른 기량을 과시했다.

일본의 선전도 눈부시다. 유도(금8 은2개)가 효자종목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기초종목에서 도 뚜렷한 강세를 보였다. 기타지마 고스케가 남자수영 2관왕에 오르는 등 수영에서 금메달 3개를 수확해냈고, 육상 여자마라톤에 출전한 미즈키 노구치도 아테네의 폭염을 뚫고 우승했다. 일본이 기초종목에서 이 같은 결실을 맺은 것은 과학전인 훈련시스템과 아낌없는 투자 덕분.

아테네 뜬 별

수많은 별들이 뜨고 지는 올림픽.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난히 반짝반짝 빛난 별들이 있다. 단연 돋보이는 스타는 '수영신동' 마이클 펠프스(미국). 당초 목표로 했던 8관왕의 꿈은 무산됐지만 6관왕에 오르며 이번 대회 최다관왕에 등극했다. 나머지 자유형 200m와 계영 800m에서도 동메달을 보태 단일 올림픽 최다 메달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연일 이변이 속출했던 육상 트랙에서도 스타탄생이 이어졌다. 22세의 신예 게이틀린은 남자 100m에서 9.85의 기록으로 프란시스 아비크웰루(9.86), 모리스 그린(9.87) 등 쟁쟁한 스타들을 제치고 1위로 골인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공인받았다. 여자 100m에 출전한 리야 네스테렌코(벨로루시)도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먄들며 '무명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육상스타 히참 엘 게루즈도 빼놓을 수 없다. 게루즈는 중거리인 1,500m와 장거리인 5,000m를 동시에 제패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두 종목을 동시에 석권한 것은 1924년 파리올림픽의 파보 누르미(핀란드) 이후 8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5,000m에서는 10,000m 우승자이자 5,0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케네시아 베켈레(에티오피다)를 꺾어 더욱 값졌다. '중거리 제왕'이 진정한 트랙의 지존으로 우뚝 선 것이다. 루마니아의 17세 소녀 카탈리나 포노르는 새로운 체조여왕으로 등극했다. 포노르는 단체전 금메달에 이어 평균대와 마루운동에서도 금빛 연기를 선보이며 3관왕에 올랐다. 체조경기장이 연일 오심과 항의로 얼룩졌지만 포노르는 침착함과 대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했다.

비운의 스타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다.' 바로 이 선수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대표적인 선수는 '마라톤 여제' 폴라 래드클리프(영국).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인 래드클리프는 아테네의 살인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여자 마라톤 36km지점에서 레이스를 포기했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쏟았던 래드클리프는 실추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1만m 출전을 강행했지만 9바퀴를 남기고 포기,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일본 남자유도의 자존심 이노우에 고세이(100kg급)도 불운에 울었다. 사실 이노우에는 우승여부 보다 전 경기를 한판승으로 이기고 금메달을 따느냐가 더 큰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8강전에서 허무하게 낙마하고 말았다. 아무도 예상 못한 결과였다. "이노우에와 꼭 한 번 붙고 싶었다"는 장성호(100kg급 은메달리스트)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한 채 말이다. 그 순간 일본 관중석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일본 열도는 충격에 휩싸였다.

러시아의 체조요정 스베틀라나 호르키나도 쓸쓸히 퇴장했다. 개인종합에서 미국의 칼리 패터슨에 1위를 내주며 2위에 그쳤을 때만해도 호르키나는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올림픽 개인종합 우승은 물 건너 갔지만 그녀에게는 이단평행봉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믿었던 탓일까. 호르키나는 이단평행봉 결승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며 출전자 8명 가운데 최하위에 그쳤다. 올림픽 이단평행봉 3연패의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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