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의 한 미술관 옆에 자리한 멋들어진 기와집. 금방이라도 갓 쓰고, 턱수염 늘어뜨린 훈장 선생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휘적휘적 걸어나올 것 같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그러나 그곳엔 훈장도 없고, 천자문 외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올 뿐.

도무지 씨름단 숙소로는 보이지 않았던 터라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반갑게도 빅 사이즈 운동화가 빼곡이 들어찬 신발장이 기자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잠시 후 황규연(30·신창건설)이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덕분에 1시간 가량 '미술관 옆 숙소'에서 낭만적인(?) 인터뷰를 가질 수 있었다.

2001천하장사대회 vs 2003천하장사대회

2003년은 황규연과 '궁합'이 잘 맞지 않은 한 해였다. 97년 이후 매년 빠짐없이 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는데, 유독 이 해만은 '무관'에 그쳤다. 2002년 8월 올스타 장사에 오른 것이 마지막이니까 꽃가마 타본 지도 꽤 됐다.

하지만 황규연의 가슴을 더욱 쓰리게 만든 것은 2003천하장사대회였다. 98년부터 천하장사대회 '단골손님'이었던 황규연은 이 대회에서 16강 예선탈락했다. 당시 이성원(LG)이 금강급 선수로는 19년 여만에 천하장사대회 8강에 진입, 모래판이 떠들썩했는데, '대이변'의 희생양이 다름 아닌 황규연이었던 것이다.

사실 팀의 기둥 선수라는 책임감에 출전은 했지만 대회 전 연습 도중 부상을 입어 제 켠디션이 아니었다고 한다. 게다가 황규연은 몇 년째 부상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2001년 3월, 훈련 도중 허리 부상(척추분리증)을 당했는데, 연습하다보면 크고 작은 부상이 끊이질 않기 때문에 여느 때처럼 한숨 푹 자고 나면 괜찮겠지 싶었다. 하지만 웬걸. 다음날 아파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그 뿐인가. 어째 요 놈이 거머리마냥 착 달라붙어서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안한더란다. 쿡쿡 찌르고, 콕콕 쑤셔대는 것이 보통 성가신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장 수술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재활에 온 힘을 쏟는 수밖에.

반면 2001년은 황규연과 아주 좋은 '금실'을 자랑했다. 6월 광양 지역장사, 10월 영암 백두장사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황규연은 마침내 난생 처음 천하장사에 등극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결승전에서는 김영현과 맞붙었다. 2-2 상황. 결국 21세기 첫 천하장사의 향방은 다섯 번째 판에서 가려졌다. 두 선수는 거의 동시에 떨어졌는데 주심은 지체없이 황규연의 손을 들어줬다.

자신의 승리가 선언되자 황규연은 눈물과 모래로 뒤범벅된 채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펄쩍펄쩍 뛰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흐느끼다가 나중엔 아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펑펑 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점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운동 시작한 후 처음 천하장사가 됐고, 그동안 힘들었던 것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나서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아주 팅팅 부었어요. 계속 우니까 나중에 총재님이 그래요. '그만 울어라. 텔레비전에 나간다'(웃음)."

게다가 신봉민(8강), 이태현(4강), 김영현(결승) 등 한 가닥하는 선수들을 죄다 꺾고 거머쥔 우승이기에 더욱 값진 승리로 기억된다.

"그때는 생각지도 않게 게임이 잘 풀렸어요. 경기하는 날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다음날 되니까 '아, 내가 전 천하장사들을 다 이겼구나' 싶더라구요."

반짝반짝 빛나는 씨름판의 보석, 황규연

그의 귀공자풍 외모만 보고, 그동안 거둔 화려한 성적만 보고 황규연이 탄탄대로를 달려왔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따지고 보면 민속씨름판에서 그만큼 쓴 맛, 단 맛 다 본 선수도 드물다.

황규연은 95년 10월 당시 역대 최고 계약금을 받고 세경진흥에 입단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팀이 해체되는 비운을 맛봤고, 그후로도 이런 저런 이유로 현대, 삼익 캐피탈, 신창건설 등으로 옮겨 다녔다.

좀 할 만하면 보따리 싸고, 좀 적응됐다 싶으면 다른 팀으로 이적해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렸으니 성적은 둘째 치고라도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듯 싶다.

"당시엔 정말 정신 없었죠. 운동을 그만둬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됐던 거 같아요. 왜냐하면 한 팀에 오래 있으면 조금 나태해졌을 수도 있고, 여러 팀 거치면서 다양한 훈련 방법과 감독님을 접할 수 있었거든요."

황규연의 신체 사이즈는 187cm, 136kg. 백두급에서는 정민혁, 원종수 선수 정도를 제외하고는 체구가 가장 작다. 하지만 허리가 아파서 무작정 체중을 늘릴 수도 없는 처지. 그러니 150kg 넘는 선수들이 득시글한 요즘, 불리한 체격 조건을 감수해야 한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신체 조건 때문에 밀리면 정말 회의를 느껴요. 체구가 비슷하면 '내가 좀 안 되는구나' '기술로 졌구나' 싶을 텐데 원체 217cm, 160kg이러니까.'(웃음)"

그렇다고 남들처럼 힘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다만 황규연에게는 그만의 무기가 있다. 바로 유연성과 기술. 이만기(KBS 해설가)씨가 황규연만 나오면 으레 하는 얘기가 있지 않은가.

"버드나무처럼 유연한 허리를 갖고 있는 선수에요."

"남들보다 제가 유연하다는 느낌은 갖고 있어요. 근데 유연성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힘이 받쳐줬을 때 발휘되는 거지 암만 유연해도 힘이 없으면 안 되요."

유연성 말고도 황규연은 '기술 씨름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구사하는 기술이 다채롭기 그지없다.

"에이, 기술 씨름의 달인은 아니구요. 왜냐하면 한라급, 금강급 가면 화려하고 멋진 기술 쓰는 선수가 얼마나 많은데요. 제가 기술이 좋은 게 아니라 남들이 그걸 못하니까 그런 거지. 다 크고 그러니까 기술이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는데 저는 좀 작으니까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이적의 설움, 신체 조건 상의 불리함,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타고난 유연성과 다양한 기술로 극복해낸 황규연은 그야말로 민속 씨름판의 '보석'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냥 묵묵히 제 할 일 하면서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요"

요즘 '스포츠 얼짱'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씨름은 예로부터 미남선수가 많기로 유명한데, 황규연도 그 계보를 잇는 선수다. 살포시 미소를 머금을 때마다 양 볼에 푹 패이는 보조개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

그래서인지 그의 이름 앞에는 '모래판의 귀공자'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몇 년 전 씨름장 장내 아나운서가 지어준 별명이라고 하는데, 본인도 썩 마음에 드는 눈치다.

'노랑머리'하면 한때 '노랑머리'였던 백승일이나 지금의 최홍만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기자는 황규연이 떠오른다. 비록 '전통 스포츠에 노랑머리가 웬 말이냐?'는 총재의 불호령(?)에 금방 검정머리로 원상복귀시켰지만, 황규연의 '노랑머리'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무엇보다도 잘 어울렸으니까)

하지만 보수적이던 씨름판도 몇 년 새 많이 변했다. 요즘은 개성 있는 머리 스타일과 독특한 세리모니를 오히려 적극 권장하는 추세다. 특히 신인 선수 최홍만은 덩치와는 달리 앙증맞은'테크노춤 세레모니'로 큰 호응을 얻었다.

"저도 그런 주문을 많이 받아요. 근데 성격 탓인지 잘 안돼요. 이젠 나이도 있고…. 물론 그런 걸로 인식되는 것도 좋지만 전 그냥 무덤덤하게 제 할 일 하면서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요."

2004년은 황규연 '부활의 해'

오는 21일부터 이틀간 장충체육관에서 2004년 마수걸이 대회인 설날장사대회가 열린다. 99년 설날대회에서 장사를 차지했던 황규연은 5년만에 이 대회 정상을 노린다.

사실 2003 설날장대회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였다. 판정시비 끝에 8강전에서 김동욱에게 1-2로 아깝게 졌던 것. 그렇게 지고 나면 허무하기도 하고, 내심 억울한 마음도 들지 않았을까.

"에이, 졌으니까 변명은 못하구요. 어차피 어느 스포츠나 오판은 있거든요. 그리고 씨름은 다른 스포츠보다 눈으로 감지하기가 힘들어요. 지면 바로 위에서 승부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허다하거든요. 뭐 어쩌겠어요. 이길려면 더 열심히 해서 확실히 처박고, 안 그러면 암말 안 하고 있어야지.(웃음)."

황규연은 지난 한 해, 부상과 씨름하느라 제 실력 발휘를 할 수 없었다. 올 시즌 첫 대회를 앞두고 각오를 들어봤다.

"작년에는 부상 때문에 겨우 겨우 시합장에 나와서 시합하고 그랬는데, 몸이 괜찮아지고 있거든요. 일단 성적을 내야죠. 운동 선수는 결과인 거 같아요. 좋은 결과 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웃음)."

씨름판에 발을 디딘 지 어느덧 17년.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씨름 생각만 하며 부지런히 달려왔다. 그리고 이제는 선수로서 책임감이 앞서는 고참급이 됐다.

예전에 황규연에게는 '번외 대회의 강자'라는 닉네임이 따라다녔다. 유독 번외대회(97, 98, 2002 올스타장사, 99설날장사, 2000백제장사)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들이 신경 별로 안 쓰는 번외 대회조차 소홀히 하지 않고, 언제나 최선을 다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영광스런 칭호가 아닐까 싶다.

어릴적 우상이었던 이만기(인제대 시절), 이준희(신창건설)씨한테서 모두 가르침을 받은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씨름 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다'는 '억세게 행복한 사나이', 독서(요즘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재밌게 읽었다)와 스노우 보드를 즐기는 '미지의 사나이' 황규연. 그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보는 사람들 식상하지 않게 앞으로 잘하는 후배들이 많이 나오고, 지금보다 팀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듬직한 체구만큼이나 우렁찬 웃음 소리가 인상적인 황규연. 언제나 묵묵히 씨름 인생을 꾸려 나가는, 10년을 한결 같이 우리 곁에 머물면서 씨름의 묘미를 한껏 선사해 주는 황규연. 10년 후쯤에는 지도자로 활약하는 모습을 모래판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늘 변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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