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고 나서 2001년 국제그랑프리대회 나가서 드몽 포콩 선수랑 붙어서 이겼었죠?
"예. 그때 이기고도 되게 기분 나쁘더라고요. 이 놈, 세계선수권대회 때 좀 지지. 그러니까 별명을 바꿔줘야 돼요. 자꾸 '비운', '비운' 그러니까 세계선수권 때는 지고, 별로 안 중요한 대회에서는 이기고… 이러는 게 자꾸 연결이 되는 거 같아요."

- 대구 U-대회랑 2003세계선수권 때 MBC에서 해설하셨잖아요. 해설은 처음 하시는 거였을텐데 해보시니까 어떠셨어요?
"처음 할 때는 긴장된 상태에서 하니까 진짜 떨리더라고요. 대구 U-대회 때 첫날은 정말 힘들었어요. 근데 둘째날, 셋째날 되니까 조금 감이 잡히고, 넷째날에는 농담도 던지고 그랬어요. 그때 같이 했던 캐스터가 '윤 코치, 이젠 농담도 하네' 그러더라고요. 유도만 하다가 새롭게 해설을 해보니까 제 시각도 넓어진 거 같고요.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해보고 싶어요."

-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근데 솔직히 '너 왜 그렇게 못하냐?' 그렇게 말은 못하죠. 대부분 잘 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은 정말 좋았어요. 제 생각에 유도는 동작이 순간 순간 바뀌기 때문에 다른 종목보다 해설하기가 힘든 거 같아요. 처음에는 아나운서가 말을 하면 제가 빠져줘야 되는데 타이밍을 못 잡아서 부딪힐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갈수록 나아지더라고요. 방송사에서 농담으로 그래요. '윤 코치, 올림픽 대표로 선발 안 되면 해설로 가면 되겠네'. 보내주면 가면 좋죠.(웃음)"

- 주위에서 윤동식 선수를 두고 '편파판정의 최대 희생양'이라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변 사람들한테서 '네가 어느 학교를 갔다면 네가 바라는 메달을 진작에 땄을 텐데…' 이런 얘기 들으면 마음이 안 좋죠. 어떤 면에서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요. 근데 제가 한양대를 나와서 도움이 됐던 것도 진짜 많거든요. 한양대 나와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요. 얼마든지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 그러고 보니 올해에는 선수, 코치, 해설 등 세 가지 역할을 다 하신 거 같아요. 어떤 게 제일 힘드신가요?
"가장 힘든 건 운동이죠.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건 정말 힘들어요. 힘들다는 생각이 단 하루도 떠나질 않아요. 몸이 피곤하니까. 어느 정도냐면 눈만 딱 뜨면 영양가 있고 좋은 음식만 찾게 돼요. 제가 영양제를 대 여섯 개 복용하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 몇 알, 점심에 몇 알… 정말 영양제 먹다가 하루가 다 가요. 콜라 같은 탄산음료나 커피도 안 마셔요. 이왕이면 몸에 좋은 걸 찾게 되지. 그렇게 먹고도 운동하기 진짜 힘들어요.(웃음)"

- 유도하시면서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인가요?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땄을 때요. 그 당시가 군 면제가 되느냐, 안 되느냐 그 시기였거든요. 제가 남자 유도선수 중에서는 첫 금메달을 땄고, 군대도 면제됐고, 실업팀(마사회)도 결정됐고, 뭐 더할 나위 없었죠. 94년에는 정말 좋은 일이 많았던 거 같아요."

- 전기영 선수랑 상대 전적이 어떻게 되세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데, 그걸 따로 체크하진 않았거든요. 기영이하고 고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서른 번 정도 싸우지 않았나 싶어요. 초반에는 제가 많이 졌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제가 4번인가 연속해서 이겼거든요. 그 전에는 두 번 지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면 한 번 이기고 이런 식이어서 전체적인 전적에선 제가 좀 딸리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기영이가 한 체급 올리게 된 게, 제가 4번을 연달아 계속 이기니까 체중도 많이 나가는 상태여서 '체급을 올려야겠다' 그래서 올렸고, 전체 전적으로 봤을 땐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근데 마지막에 내가 많이 이겼으니까 내가 한 두 번 더 이기지 않았나.(웃음)"

- 96애틀랜타 올림픽, 2000시드니 올림픽 때 조인철, 유성연 선수가 나갔는데 결국 두 선수 모두 금메달을 못 땄잖아요. 그래서 더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을 거 같은데요.
"제 욕심일지 모르지만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제가 나갔어야 했어요. 97세계선수권은 아니고요. 그때는 인철이 기량이 많이 향상됐었기 때문에 충분히 나갈 만했고, 금메달도 땄잖아요. 96년 올림픽에서 인철이의 실력은 동메달이면 최상의 성적이었거든요.

인철이는 올림픽 금메달이나 메달권 진입보다는 출전하는 거 자체에 만족했었지만 저는 금메달이 목표였기 때문에 96애틀랜타 올림픽은 제가 나가는 게 정상적인 거였어요.

그리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는 제가 나갔으면 어떻게 됐을 지 모르겠지만 그 전에 국제대회에서 90kg으로 우승도 몇 번 하고 잘했거든요.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 땄던 후이징가 선수도 같이 한 체급 밑에 있을 때 저랑 두 번 싸워서 두 번 다 졌거든요.

그때 동메달 딴 선수랑 전부 다 보면 저한테 졌던 선수들이에요. 96년 올림픽 때 금, 은, 동메달 땄던 선수들도 전부 저한테 졌던 선수들이고요. 유도 선수들은 대체로 자기랑 한 번 해서 이겼던 사람들한테는 잘 안 지거든요. 특히 저는 그랬어요. 한 번 딱 이기면 잘 안 졌거든요. 그런 게 굉장히 아쉽더라고요."

- 조인철 선수가 96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동메달 따고 미안하다거나 그런 말 안 하던가요?
"저한테 와서 미안하다고 얘기 한 번 하더라고요. 잘 했다고 그랬지요. 2000시드니 올림픽 때는 유성연 선수한테서 시드니 현지에서 전화가 왔어요. '죄송하다'고. 뭐라고 얘기를 해요. 그래도 대표선발전 때 선의의 경쟁을 펼쳤어요. 제가 전략적인 부분을 약간 잘못 세웠던 게 패인이었던 거 같고요.

크게 보면 96년이나 2000년에는 대회 준비를 잘 못했어요. 모든 정성을 거기에 다 쏟아야 되는데 그렇게 못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많은 정성을 쏟아 붓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근데 한편으로는 마음 편하게 갖고 있어요. 안 되면 코치하면 되니까.(웃음)"

- 2003세계선수권 때 81kg급 선수들 경기하는 모습 많이 보셨을텐데요. 보니까 어떠세요?
"제가 81kg급으로 내리기로 결심한 이유 중에 하나가 세계적으로 순위권 안에 있는 선수들이 다들 오른쪽 잡기를 하고 있거든요. 오른쪽 잡기를 하는 유럽선수들은 변칙기술을 많이 쓰는데, 같은 오른쪽 선수들하고 싸울 땐 변칙기술이 잘 먹히지만 왼쪽 선수들이랑 했을 때는 그런 기술을 성급하게 못해요. 근데 저는 왼쪽이거든요. 그래서 얘네들이랑 하게 되면 손쉽게 경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오히려 국내대회 보다 올림픽이 훨씬 쉬울 거 같아요."

- 국내 선수 중에 라이벌로는 누가 있나요?
"압축시키면 두 명 정도 되는데, 2003세계선수권에 출전했던 최선호 선수가 있고, 대구-U대회에서 개인전, 단체전 우승했던 권영우 선수가 있는데, 대진표는 나왔어요. 권영우 선수랑 준결승, 최선호 선수랑 결승. 어차피 넘어야 될 산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체력만 된다면 해볼 만한 거 같아요."

-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 대한 각오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가장 걱정되는 게 있어요. 1차 선발전에서 우승하면 더할 나위 없겠죠. 2차전, 3차전이 남아 있지만 심적으로 안정이 돼서 탄력 받고 더 열심히 할 거 같아요. 근데 만약에 3등, 4등, 5등 이렇게 되면 하긴 하겠지만 의욕도 떨어지고 맥이 빠질 거 같아요. 아예 1회전에서 탈락하면 딱 씻고 그만 할텐데, 3등, 4등, 5등 이렇게 돼버리면 어느 정도 점수는 받겠지만 1등한 선수랑 점수차이가 많이 나니까 따라가기 벅찰 거 같아요.
질 거면 아예 초반 탈락, 올라갈 거면 아예 1등, 이게 나을 거 같아요. 근데 제가 보기엔 저의 이런 비운의 스토리가 올림픽에서 대박을 터뜨리기 위한 스토리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가끔 들어요.(웃음)"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올림픽 때만 반짝해서 호응해주시지 말고, 평소 때도 유도를 많이 사랑해주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요즘 보니까 유도선수 팬 까페도 많이 생겼더라구요. 까페에 응원글도 많이 남겨줬으면 좋겠고요. 유도팀이 지금보다 많이 창단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아무래도 경쟁팀이 있으면 선수 복지 수준도 높아지지 않겠어요?

정말 유도만큼 땀 흘리면서 운동한다면 프로 선수의 반 정도 대우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연봉 1억 이상 대우받는 선수 나와봐요. 학생들도 서로 배우려고 하고, 학부모들도 자녀들한테 많이 시킬거예요. 유도하려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거라고 봐요."

그가 남몰래 흘렸던 눈물을 이제는 보상받을 때가 왔다. '오뚝이 스타' 윤동식의 마지막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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