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cm
김은주 지음, 김재연 그림 / 생각의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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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의 거리는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될까?

쉽게 내딛을 수 있는 발걸음 하나도 1cm는 족히 넘는다. 하루 세 번씩 손에 쥐는 젓가락도 1cm는 훨씬 넘는 길이이다. 그런데도 책 제목이 1cm로 지은 데는 대체 어떤 이유가 있을까.

처음 이 책을 보고 든 생각은 이것이다. 그리고는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책을 보기 전 표지만으로 그 책의 내용을 추측하는 일은 정말이지 기대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가 있다('~사'와 같이 제목만 보고도 금방 알 수 있는 것들은 긴장감 제로지만서도). 오목조목 예쁜 표지에 펼치면 등장하는 귀여운 그림과 재치에 덜컹거리는 버스 뒷자석에서 큰 소리로 웃은 부분도 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집중할 공간이 필요한 책도 아니고,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필요한 책도 아니다. 그냥 좁은 내 무릎 하나와 책을 펼칠 수 있는 손바닥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충분한 책이다. 부담감 없이 읽어갈 수 있는 내용이지만 톡톡 튀는 작가의 재치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할 뿐더러,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 표지는 요 근래 본 책 중 단연 손가락에 꼽을 만큼 위트넘친다.

생기발랄, 오목조목, 새콤달콤한 이야기.

우울한 날이나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무기력한 날에는 1cm만 더 멀리 보고, 1cm만 더 어깨를 펴고, 1cm만큼만 더 행복해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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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1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2
금난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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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라기 보다는 관심이 없다.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의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클래식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가끔 드라마에서 반전이 나오는 장면이나 두 주인공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 장면(요즈음에는 드라마 O.S.T가 대부분이지만)에서 가끔 나오는 노래.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곡. 지겹도록 외워야했던 학창시절의 음악시간에 배운 이름. 그것이 내가 가진 클래식에 관한 지식이다.

잘 알려진 노래 몇 곡을 듣노라면 '아... 들었던 곳인데-'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 드라마였지?'라는 고민만 하게되는 것이 클래식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보게 된 이유는 그래도 왠지 품위있게 느껴지는 책 표지와는 다르게 편안한 말투가 거부감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재미는 그다지 없다. 여러 사람들의 리뷰에서처럼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읽을 수 있다면(나는 집에 있는 클래식 시디를 이용했지만) 훨씬 더 관심을 가지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그 이름만으로도 부담스러운 '클래식'은 함께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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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이해인 수녀의 사모곡
이해인 지음 / 샘터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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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어가 있다. 말하는 순간 목이 메이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마다 경험이 달라 살아온 삶이 차이가 있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생(生)의 사실 하나가 있다. '엄마'가 있다는 것. 그것이 혹여나 거부하고 싶은 사실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임에 분명하다.

누구나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고개를 흔들며 부정의 의미를 내뱉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여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엄마 딸로 태어나기 싫었어'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엄마는'이라고 차가운 말을 내뱉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함과 뭉클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이가 들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가 아니라 이제 같은 '여자'로서 엄마를 느끼게 되는 순간 엄마의 삶이 참으로 고달프로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 고달프고 힘든 삶의 이유 중 하나가 '나'임을 발견하는 순간의 미안함과 죄책감도 함께 말이다.

이해인 수녀(절대로 험한 말은 하지 않을 것 같은)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뜨거움이 나의 그것보다 강한 이유는 아마 이미 놓쳐버린 엄마의 손길 때문이 아닐까. 죽음이라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더이상 엄마의 손길을 느낄 수 없고 엄마의 가슴에서 울 수 없다는 사실이 시집을 읽는 내내 더 절절히 다가왔다.

슬프다. 가슴이 뜨거워져 몇 번이고 차가운 물을 마셔야 했다.

아프다. 알면서도 상처주고 있는 내 지금의 모습에 스스로 아프다.

뜨겁다. 엄마에 대한 이해인 수녀의 짧은 시 한 편이 주는 따뜻함이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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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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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영화같은 일'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 혹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의미한다. 평생을 살면서 일어날 확률이 10%도 되지 않는 특별하고 특이한 일들을 우리는 '영화같다'라고 말한다.

요즈음 영화가 리얼리티를 강조해서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말 하고 있다고는 해도 확실히 영화의 주인공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저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 혹은 저런 삶은 최악이다, 등의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어날 확률이 10%도 되지 않는 특별한 일이 10%의 확률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꿈을 꾼다.

이 책에서는 영화와 묘하게 연관성을 지닌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영화같은 삶을 살아가고, 영화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고, 영화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읽으면서 '말도 안돼'라고 말하기 보다는 '흠... 그럴까...'라고 생각할 여지를 주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글쎄, 믿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나에게도 그런 영화가 삶으로 펼쳐질 순간이 올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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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재구성 - 현대 일본이 부끄러워하는 진짜 일본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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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한국'은 분명 다르다.

국가로서의 '한국'과 그 구성원인 '한국인'은 개인과 집단이라는 사회적 개념을 제쳐두고서라도 그 성질이 아주 다르다. 외국의 눈으로 본 '한국'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것이 모든 한국인 개개인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일본'과 '일본인'도 다르지 않을까?

나도 한국인인지라(이것이 정확한 이유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본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야구나 축구경기에서 일본에게는 꼭 이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독도와 같은 미묘한 문제로 계속 마찰을 일으키는 정치적인 문제도 슬슬 짜증이 난다. 하지만 내게는 일본친구가 있다. 하지만 그 친구와 나는 일본인 - 한국인 이전에 '친구'의 관계이다. 자주 만날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 친구.

우리가 가진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 일제 식민지로 부터 기인한 것이라 해석한다면, 과연 서양인들이 본 일본과 일본인은 어떨까.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식민지 문제로 전혀 얽히지 않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본 일본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일본인'에 관한 이야기다. '일본'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일본인'에 관한 이야기.

이 책에서 보이는 일본인의 모습은 뭐랄까. 약간은 신랄하게 비판된 모습이다. 작가는 그래서 작가의 말에서 이미 밝히고 있다. 자신이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다, 라고. 또한 너그럽게 봐 줄 이유도 없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내내 조금은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국인이 바라본 일본보다는 그래도 객관성을 유지했다는 반증일테니.

내가 느끼고 있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말 그대로 감정적인 것인지, 아니면 객관적인 것인지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지 않은가? 여전히 국사책을 읽는 듯한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충분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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