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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믿음의 여인을 묵상하다 - 예수님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10가지 시선
베른하르트 벨테 지음, 조규홍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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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성모성월이다. 교회는 매년 5월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기억하고 다른 어느때보다도 열심히 자주 성모를 공경하고 성모의 모범에 따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와 은총의 삶을 살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한 권고에 맞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책을 찾았다! 


이 책은 종교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베른하르트 벨테는 성모님을 묵상하고, 그 묵상을 성경해석학적이며 교의신학적으로 바로 세운 글이다.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님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인의 삶과 실존을 바로 세우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하느님을 향한 준비된 마음, 곧 순종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악의 세력에 심판받고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분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순간을 지나 하늘로 들어올려지신 영광의 시간까지 총 10번에 나누어 성모님을 깊이 묵상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알았기에 믿으셨던 것이 아니라 묵묵히 받아들이셨고, 기다리셨던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며 지은이는 대변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인내심을 길러 마음을 단단히 여미어라! 때때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서도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묵묵히 신뢰하는 가운데 당장 난해하게 여겨지는 것들도 너희의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라! 신앙의 사태에는 결코 완전무결하게 해소되는 경우가 없음을 알아듣도록 힘써라! 나아가 너희가 이러한 깨달음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즈음에 때때로 또다시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무너져 버리는 날이 올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하라! 그러나 그럼에도 너희 마음을 다잡아 충실하게 머물러라!" - 12쪽 


또한 수많은 고통 중에 자신의 아들을 잃어야 하는 고통까지 겪어야 했던 성모님의 모습을 새롭게 되새기게 된다. "고통받는 중에도 그리고 행복한 상태에도 이기주의적인 행동으로 삶을 그르치지 마라! ... 만일 그대가 고통스럽다면,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고 힘써라! " 14쪽


성모님이 "자신의 삶을 통해 모범적인 신앙의 표징이 되셨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 그분을 증언하는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 17쪽


* 이 책의 10가지 시선(구성) 

하느님을 향한 준비된 마음, 예수님의 어머니, 우리 믿음의 자매, 고통의 칼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여인, 큰 뱀(용)을 짓밝고 서 계신 여인, 은총이 가득하신 분, 하와와 성모 마리아, 성모 마리아와 교회, 성모 마리아의 승천


여인이자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여 [우리를 위해] 은총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자세를 몸소 보여주신 모범이다. 그렇게 성모님을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전모가, 곧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분의 부활이 곧 은총이다. 따라서 성모님의 모습을 우리가 항상 반복해서 기억하면서 성모님이 몸소 취하시는 행동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27쪽


성모 마리아가 동정이자 여인으로서 모성적인 삶을 완성하셨다는 점도 생각하면 좋겠다. 달리 말해, 이러한 여성성이 어머니와 같은 교회 안에서 인내와 사랑을 통해 결실을 맺도록 장려되어 활기 넘치는 공동체적인 삶의 구현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156쪽 


육신을 지니며 생명의 기운을 발휘하는 인간으로서 성모 마리아는 자신의 아드님을 품었으며, 그 아드님의 십자가 아래서도 육신을 지니신 채 생명의 기운을 놓지 않으셨고 마침내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그와 같은 모습을 보이셨다. 166쪽 




* 엄마와 갈등이 심한 때가 있었다. 엄마에게 나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깊은 패배감에 빠졌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찾은 성당에서 성모상을 바라보았다. 성모님은 승진해야 할 남편도 없고, 입시를 준비하는 자식도 없는데 무언가 저렇게 간절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시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성모님의 기도 안에 내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모님 안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와 나는 한 몸이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나는 분명 가장 소중한 존재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다 알지 못해도 온 몸과 마음으로 예수님을 품으셨던 성모님처럼 나의 엄마도 나를 온전히 품어냈다는 생각이 감격스러웠다. 한참 전의 일이지만 5월 성모성월마다 떠올린다. 나는 이미 생명을 통해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려 애쓴다. 다시 마음을 단단히 여며야겠다. 나도 삶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증거자가 되기 위해,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야겠다. "예, 주님. 당신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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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윤주현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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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 알렐루야!

겨울이 지나 당연히 맞이하는 봄처럼 부활을 맞이하던 평소와는 달리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와 함께 특별한 사순 시기를
보내고 맞이한 이번 부활은 좀 더 특별하다.
성삼일 내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며, 부활을 기다렸다.

p. 53 예수님께서 성부와 인류에게 사랑으로 봉사하기 위해 제정하신
성체성사는 그 안에 우리의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이러한 죽음을 통해 그분의 사랑의 봉사에 협력하도록 초대한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인해, 더 나아가 우리를 위해, 우리를 통해 흘려진 그분의 피를 마신다.

p.55 만일 우리가 죽음에 직면해서 두려워 떤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지닌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 앞서 죽음의 의미를 바꾸기 위해 친히 죽음을 끌어안으신 주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한 개인으로서 우리와 함게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이미 당신 자신 안에 우리의 죽음을 간직한 채 수난하고 돌아가셨다.

p.90 인류의 죄로 인한 상처로 관통된 예수님과 그분의 신부이자 '몸'인 교회 사이에는 세상의 모든 시대를 위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깊은 일치가 존재한다. 이러한 일치에서 시작하여 성령을 통해 '구원의 보편화' 현상이 일어난다.

존엄사를 주장하며,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위한 법개정을 요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존엄한 죽음이란 대체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겪으신 십자가 수난은 존엄한 죽음일까?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에게 존엄하지 않은 죽음이 있을까? 이미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이상 죽음이 끝이 아니다.

p. 55 예수님께서는 일생에 걸쳐 성부께 당신을 온전히 내어드렸다, 무엇보다도 그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 존재가 간직한 고뇌와 무능함 그리고 당신을 향한 열망이 부족한 우리의 내면을 제대 삼아 당신 자신을 성부께 온전히 봉헌하셨다.

2024년 올해의 부활이 나에게 더 특별한 것은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라는 인사가 인사치레같은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참 기쁨의 표현이기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전례에 닫힌 이야기가 아니라 내 삶에 건네진 참된 생명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다. 죽음을 깊이 묵상할 때, 부활의 기쁨은 더욱 더 풍성해진다!

온전히 내어주신 성자의 사랑과 그 봉헌을 끌어안으신 성부의 사랑 안에서 성령의 인도와 보호하심아래 생명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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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3호 - 2024.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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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이 시작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구나. 

얼마나 정신이 없는 시간을 보냈던지, 

2024년이 여전히 낯설다. 


2023년에는 창비 스위치 모임을 통해 모임원들과 

창작과 비평을 함께 읽으며, 모임이 끝나고 나니 

혼자 찾아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시간을 내서 한 꼭지씩 글을 읽어가며 

작가를 만나고, 세상을 만나고, 그 세상 속에 살아가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짧은 영상을 보다보면, 1-2시간의 시간은 

호다닥 지나 있었고, 생각은 멈추어 있었다. 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마비시키고 있던 것일까? 


오랜만에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집중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느꼈지만

그 어려움만큼 힘겹게 읽으면서 마비되어있던 나를 일깨울 수 있었다. 


이제 4월이 시작된다. 총선을 앞두고 있고,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도 있다.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은 전쟁 중이다. 


<4.16운동 10년, 무엇을 바꾸었는가?> 박래군 활동가의 글을 읽으며, 

이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나는 어떤지 

돌아보았다.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우리는 존중받으면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국가의 

책무에 대해 새롭게 자각했습니다. 시장과 권력은 바뀌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어제의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기억은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지속적인 만남, 소통, 연대를 통해 다져왔기에 힘이 셉니다."

- 1월 10일 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 기자회견 중에서 


희망은 먼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 이미 와 있되 

손을 놓고 있어도 

어느 순간 눈앞에 나타나는 계절 같은 것을 수는 없다.

희망은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머리에-지금 여기의 '중립'은 가짜다> p.9 강경석 


2024년 새로운 봄에 내가 품는 희망은 무엇일까? 

또 품어야 할 희망은 무엇일가? 


순간순간을 깨어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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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최후 기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문재상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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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이 시작되었다. 

성탄을 기다리며 잔뜩 설레는 대림 시기와는 다르게 

부활을 향한 사순 시기는 약간은 무겁고 어둡기까지 하다. 

부활을 맞이하기 전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지나야하기 때문이다.

대림 시기에는 매주 불을 밝히며, 희망을 품지만 

사순 시기에는 희망 이전에 깊은 절망을 마주하게 된다. 

날은 점점 따뜻해지며 겨우내 얼었던 물과 땅도 녹고 있지만 

요즘 내 마음 상태는 오히려 더 움츠러들고 있었다. 


움츠러든 마음을 보듬는 듯한 책 <예수의 최후 기도>를 만났다! 

얇은 소책자여서 부담스럽지 않게 책장을 펼쳤지만, 책의 메시지는 그 어떤 책보다 깊고 두터웠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은 교회를 형성하고 있으며, 교회의 '오늘'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가상칠언과 칠성사를 엮어 풀어내는 작가,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의 능력이 참으로 놀랍다. 


1장_"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 고해성사

2장_"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병자성사

3장_"여인시이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혼인성사 

4장_"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 성품성사

5장_ "목마르다" : 성체성사 

6장_ "이제 다 이루었다." : 성체성사

7장_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 견진성사

 

이 얇은 책자의 모든 문장 하나하나를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어려운 말이어서 아니라, 

모든 문장을 연필이 아닌 삶으로 밑줄 그으며 받아들이고,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P.78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곁에서 고독의 비밀에 참여하게 하신다.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신다. ... 십자가 위에서의 그분의 목마름은 언제나, 모든 세대에 걸쳐, 모든 개인과 우리 가운데 모든 이에게 유효하다. 


사도들에게 하신 요구의 말씀, 당신 뒤를 따르라는 초대는 거기에서부터 엄격한 특성을 얻게 된다. 

'나를 따라라!'라는 말씀의 뒤에 이렇게 이어진다.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 고독에 이르기까지, 저 마지막 목마름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사순 시기 내내 이 책을 더 가까이 해야겠다. 이 책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을 

더 깊고, 더 뜨겁고, 더 자주 만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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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단 하나, 사랑 발타사르 신학 시리즈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김혁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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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캐스리더스 7기 활동 시작 

새 옷을 입듯, 새해를 맞이하고자 한껏 들 뜬 마음으로 2024년을 준비하던 23년 12월에 가톨릭출판사 캐스리더스에 응모했다. 매월 한 권의 신앙서적을 읽고, 나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며, 사람들과 글을 통한 복음화에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찼다. 주어지는 숙제라는 생각보다 매월 책이라는 한 통의 편지를 받고, 답장 같은 글을 남기는 펜팔처럼 느껴졌다. 성탄절이 지나고, 캐스리더스 7기 합격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다. 이 활동 덕분에 더 기대되는 2024년을 맞이하였다. 


2. 1월 도서 <남겨진 단 하나, 사랑>를 선택 대신 선물처럼

1월의 도서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의 <남겨진 단 하나, 사랑>이다. 가톨릭출판사에서는 매월 두 권의 책을 제시하고, 한 권을 선택해서 서평을 요청한다. 1월에는 선택하는 시기를 놓쳐서, 고를 수가 없었다. 선택 대신 선물처럼 이 책을 받고 보니, 오히려 좋았다. 이 책으로 자연스럽게 초대받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3. 찬찬히, 한 걸음씩 읽어나가는 책

빨간 표지에, 제목에도 사랑이 있으니 어렵지 않을 책이라고 기대했다. 옮긴이는 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 김혁태 신부님이다. 이 책은 20세기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인 발타사르의 3부작 <영광>, <하느님 드라마>, <하느님 논리> 중 <영광>을 읽기 전에 볼 수 있는 입문서라고 한다. 역자는 독자들을 위해 원문에 없는 요약 글을 실었다. 우주론적 환원, 인간론적 환원 등 책장이 넘어갈수록 요약 글이 역자의 큰 배려처럼 느껴졌다. 신학자도 아닌 보통의 신자인 나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책장까지 넘길 수 있던 것은 ‘겸손한 마음’ 덕분이다. ‘위대한 신학자의 글을 한 번에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발타사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공부와 기도를 했을까?’ 쉽지 않고, 100% 이해할 수 없더라도 찬찬히, 지금 당장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한 걸음씩 걷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걸음이 시간과 노력으로 쌓이다보면, 더 깊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4.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코린 13,2) 

발타사르의 신학적 기획의 목표는 모든 것을 사랑 위에, 정확히는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 위에 세우는 것이다, (P.15) 


그리스도가 천 번이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 해도 네 안에서가 아니라면, 

너는 영원히 잃어버린 채로 남으리니...

골고타 십자가가 너를 악에서 구할 수 없으리라, 

네 안에서 그 십자가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P.68) 


이 부분부터 책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지난 성탄절을 지냈고, 곧 보름 후면 사순 시기가 시작되지만 정작 내 마음은 무미건조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지 않고 있고, 내 안에 십자가가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다. 더 이상은 코로나 19를 핑계 삼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생활의 문제 이전에 내 내면의 문제였다. 나에게 선사되는 사랑(P.84)에 나는 응답하고 있었는가? 어긋난 다이얼처럼 잘못된 방향과 조작에 제대로 된 작동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인간은 “이 걸림돌에 걸려 흔들림으로써” “대체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워야”하고, 하느님 사랑의 찬란함에 눈을 돌려야 한다.(P.100)고 하니, 이 책이 새로운 표지판 같았다. 바쁜 일상 속에 치우쳐, 순간을 매우 피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바쁜 나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내(인간) 앞에 사랑으로 드러내신다. (P.124) 주어진 일들 속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기 바쁜 삶을 살아가지만 이룰 수 있는 것의 의미는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쏟아 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P.129)은 나의 어떤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처럼 ‘예’라는 응답과 수용 안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순종 안에서 사명과 자신을 일치시키셨다. 그분은 의인화된 사명 자체가 되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의 종’으로서 자신을 지워 없애는 가운데, 세상에 대한 당신의 영원한 사랑을 보여 주신다. (P.144) 그리하여 그분은 오히려 지워지지 않았다. 이 순종을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한다. 새로운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이미 보여주셨고, 우리는 따르면 된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였듯, 그분의 부활을 통해 우리 역시 구원받았다. 최종적 하느님 상실로부터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P.154)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만,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믿고 희망한다. (P.158) 하느님의 마음을 조율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기에, 하느님께서 이미 늘 그 안에서, 사랑하지 않는 죄인 안에서 사랑받는 자녀를 보셨고, 그 사랑으로 바라보셨고, 귀하게 여기셨다. (P.173) 하느님께서 귀하게 여긴다는데, 과연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까? 세상은 사람을 수많은 숫자(재력 등)로 평가하지만, 사실 우리는 사랑하시는 이로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그대로가 우리가 존재하는 그대로다. (P.174) 우리는 질투하는 사랑이자 충실한 사랑 안에 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심판하고 모든 것을 똑바로 세울 것이다. (P.192) 그렇기에 우리가 마주한 사랑 안에 취해 지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는 우리가 받은 사랑을 바로 이웃에게 전해야 한다. 우리가 베푼 사랑으로 우리도 측정될 것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 새 계약이요, 영원한 계약의 사랑이다. ‘마음 속 깊은 동정으로서의 사랑’이자, ‘겸손의 마음가짐’ ‘반항하지 않는 부드러움’,‘인내하는 끈기로서의 사랑’이다. (P.218) 또한 하느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사랑은 죽기를 바란다. 죽음 너머로, 죽음 안에서, 하느님의 형태 안에서 부활하기 위해 죽으려 한다. (P.237) 


5. 믿을 만한 건 사랑뿐이다.(P.171)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인간 앞에 사랑으로 드러내신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이 발산하고, 인간의 마음에 사랑의 빛을 새겨 넣는다. 이 빛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사랑을, 이 절대적 사랑을 볼 수 있게 한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2코린 4,6) 주시기 때문이다. (P.124) 


곧,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당신 사랑과 그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셨기 때문이다. 사랑은 가장 취약한 상태이다. 언제고 받을 수 있는 상처를 감내한다는 의지이다. 모든 사랑(상처)은 하느님께서 감내하신다. 상처받은 사랑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한 분께서 ‘영원’을 약속하신다니. 놀랍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비허로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다니, 놀랍다. 메마른 내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이 촉촉한 시냇물처럼 다가온다. 그 사랑에서 나는 어떤 열매를 맺어나갈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2024년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6. 추천! 

그렇기에 <남겨진 단 하나, 사랑>을 바짝 시들어 부서지는 잎처럼 사랑에 메마른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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