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최후 기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문재상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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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이 시작되었다. 

성탄을 기다리며 잔뜩 설레는 대림 시기와는 다르게 

부활을 향한 사순 시기는 약간은 무겁고 어둡기까지 하다. 

부활을 맞이하기 전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지나야하기 때문이다.

대림 시기에는 매주 불을 밝히며, 희망을 품지만 

사순 시기에는 희망 이전에 깊은 절망을 마주하게 된다. 

날은 점점 따뜻해지며 겨우내 얼었던 물과 땅도 녹고 있지만 

요즘 내 마음 상태는 오히려 더 움츠러들고 있었다. 


움츠러든 마음을 보듬는 듯한 책 <예수의 최후 기도>를 만났다! 

얇은 소책자여서 부담스럽지 않게 책장을 펼쳤지만, 책의 메시지는 그 어떤 책보다 깊고 두터웠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은 교회를 형성하고 있으며, 교회의 '오늘'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가상칠언과 칠성사를 엮어 풀어내는 작가,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의 능력이 참으로 놀랍다. 


1장_"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 고해성사

2장_"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병자성사

3장_"여인시이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혼인성사 

4장_"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 성품성사

5장_ "목마르다" : 성체성사 

6장_ "이제 다 이루었다." : 성체성사

7장_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 견진성사

 

이 얇은 책자의 모든 문장 하나하나를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어려운 말이어서 아니라, 

모든 문장을 연필이 아닌 삶으로 밑줄 그으며 받아들이고,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P.78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곁에서 고독의 비밀에 참여하게 하신다.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신다. ... 십자가 위에서의 그분의 목마름은 언제나, 모든 세대에 걸쳐, 모든 개인과 우리 가운데 모든 이에게 유효하다. 


사도들에게 하신 요구의 말씀, 당신 뒤를 따르라는 초대는 거기에서부터 엄격한 특성을 얻게 된다. 

'나를 따라라!'라는 말씀의 뒤에 이렇게 이어진다.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 고독에 이르기까지, 저 마지막 목마름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사순 시기 내내 이 책을 더 가까이 해야겠다. 이 책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을 

더 깊고, 더 뜨겁고, 더 자주 만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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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단 하나, 사랑 발타사르 신학 시리즈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김혁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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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캐스리더스 7기 활동 시작 

새 옷을 입듯, 새해를 맞이하고자 한껏 들 뜬 마음으로 2024년을 준비하던 23년 12월에 가톨릭출판사 캐스리더스에 응모했다. 매월 한 권의 신앙서적을 읽고, 나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며, 사람들과 글을 통한 복음화에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찼다. 주어지는 숙제라는 생각보다 매월 책이라는 한 통의 편지를 받고, 답장 같은 글을 남기는 펜팔처럼 느껴졌다. 성탄절이 지나고, 캐스리더스 7기 합격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다. 이 활동 덕분에 더 기대되는 2024년을 맞이하였다. 


2. 1월 도서 <남겨진 단 하나, 사랑>를 선택 대신 선물처럼

1월의 도서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의 <남겨진 단 하나, 사랑>이다. 가톨릭출판사에서는 매월 두 권의 책을 제시하고, 한 권을 선택해서 서평을 요청한다. 1월에는 선택하는 시기를 놓쳐서, 고를 수가 없었다. 선택 대신 선물처럼 이 책을 받고 보니, 오히려 좋았다. 이 책으로 자연스럽게 초대받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3. 찬찬히, 한 걸음씩 읽어나가는 책

빨간 표지에, 제목에도 사랑이 있으니 어렵지 않을 책이라고 기대했다. 옮긴이는 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 김혁태 신부님이다. 이 책은 20세기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인 발타사르의 3부작 <영광>, <하느님 드라마>, <하느님 논리> 중 <영광>을 읽기 전에 볼 수 있는 입문서라고 한다. 역자는 독자들을 위해 원문에 없는 요약 글을 실었다. 우주론적 환원, 인간론적 환원 등 책장이 넘어갈수록 요약 글이 역자의 큰 배려처럼 느껴졌다. 신학자도 아닌 보통의 신자인 나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책장까지 넘길 수 있던 것은 ‘겸손한 마음’ 덕분이다. ‘위대한 신학자의 글을 한 번에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발타사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공부와 기도를 했을까?’ 쉽지 않고, 100% 이해할 수 없더라도 찬찬히, 지금 당장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한 걸음씩 걷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걸음이 시간과 노력으로 쌓이다보면, 더 깊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4.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코린 13,2) 

발타사르의 신학적 기획의 목표는 모든 것을 사랑 위에, 정확히는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 위에 세우는 것이다, (P.15) 


그리스도가 천 번이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 해도 네 안에서가 아니라면, 

너는 영원히 잃어버린 채로 남으리니...

골고타 십자가가 너를 악에서 구할 수 없으리라, 

네 안에서 그 십자가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P.68) 


이 부분부터 책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지난 성탄절을 지냈고, 곧 보름 후면 사순 시기가 시작되지만 정작 내 마음은 무미건조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지 않고 있고, 내 안에 십자가가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다. 더 이상은 코로나 19를 핑계 삼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생활의 문제 이전에 내 내면의 문제였다. 나에게 선사되는 사랑(P.84)에 나는 응답하고 있었는가? 어긋난 다이얼처럼 잘못된 방향과 조작에 제대로 된 작동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인간은 “이 걸림돌에 걸려 흔들림으로써” “대체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워야”하고, 하느님 사랑의 찬란함에 눈을 돌려야 한다.(P.100)고 하니, 이 책이 새로운 표지판 같았다. 바쁜 일상 속에 치우쳐, 순간을 매우 피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바쁜 나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내(인간) 앞에 사랑으로 드러내신다. (P.124) 주어진 일들 속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기 바쁜 삶을 살아가지만 이룰 수 있는 것의 의미는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쏟아 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P.129)은 나의 어떤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처럼 ‘예’라는 응답과 수용 안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순종 안에서 사명과 자신을 일치시키셨다. 그분은 의인화된 사명 자체가 되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의 종’으로서 자신을 지워 없애는 가운데, 세상에 대한 당신의 영원한 사랑을 보여 주신다. (P.144) 그리하여 그분은 오히려 지워지지 않았다. 이 순종을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한다. 새로운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이미 보여주셨고, 우리는 따르면 된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였듯, 그분의 부활을 통해 우리 역시 구원받았다. 최종적 하느님 상실로부터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P.154)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만,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믿고 희망한다. (P.158) 하느님의 마음을 조율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기에, 하느님께서 이미 늘 그 안에서, 사랑하지 않는 죄인 안에서 사랑받는 자녀를 보셨고, 그 사랑으로 바라보셨고, 귀하게 여기셨다. (P.173) 하느님께서 귀하게 여긴다는데, 과연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까? 세상은 사람을 수많은 숫자(재력 등)로 평가하지만, 사실 우리는 사랑하시는 이로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그대로가 우리가 존재하는 그대로다. (P.174) 우리는 질투하는 사랑이자 충실한 사랑 안에 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심판하고 모든 것을 똑바로 세울 것이다. (P.192) 그렇기에 우리가 마주한 사랑 안에 취해 지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는 우리가 받은 사랑을 바로 이웃에게 전해야 한다. 우리가 베푼 사랑으로 우리도 측정될 것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 새 계약이요, 영원한 계약의 사랑이다. ‘마음 속 깊은 동정으로서의 사랑’이자, ‘겸손의 마음가짐’ ‘반항하지 않는 부드러움’,‘인내하는 끈기로서의 사랑’이다. (P.218) 또한 하느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사랑은 죽기를 바란다. 죽음 너머로, 죽음 안에서, 하느님의 형태 안에서 부활하기 위해 죽으려 한다. (P.237) 


5. 믿을 만한 건 사랑뿐이다.(P.171)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인간 앞에 사랑으로 드러내신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이 발산하고, 인간의 마음에 사랑의 빛을 새겨 넣는다. 이 빛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사랑을, 이 절대적 사랑을 볼 수 있게 한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2코린 4,6) 주시기 때문이다. (P.124) 


곧,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당신 사랑과 그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셨기 때문이다. 사랑은 가장 취약한 상태이다. 언제고 받을 수 있는 상처를 감내한다는 의지이다. 모든 사랑(상처)은 하느님께서 감내하신다. 상처받은 사랑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한 분께서 ‘영원’을 약속하신다니. 놀랍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비허로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다니, 놀랍다. 메마른 내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이 촉촉한 시냇물처럼 다가온다. 그 사랑에서 나는 어떤 열매를 맺어나갈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2024년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6. 추천! 

그렇기에 <남겨진 단 하나, 사랑>을 바짝 시들어 부서지는 잎처럼 사랑에 메마른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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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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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품격은 죽은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 드러난다. 

사자에 대한 태도는 결국 그 사회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탈리아 영화감독 우베르토 파솔리니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이 일 년 전에 벌어졌다. 159명의 시민들이 한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다리가 무너진 것도 아니고, 미사일 공격이 있던 것도 아니고, 건물이 무너지거나 기차가 탈선한 것이 아니라 

서울 시내 한복판 길 위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라 초반에는 관심을 갖고 애도를 하다 어느새 정치공방으로 이어져 이 사건에 

마음을 닫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유가족들이 이태원 참사를 알리며, 특별법 제정을 위해 무더운 여름

국회까지 행진했었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무겁게만 느껴지던 이 참사에 마음과 눈을 모두 닫은 채 살아가다 겨우 이 책을 통해 그 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13명의 참사 기록단이 14명의 생존자, 유가족을 만났다. 재난 만큼 위험한 고립에서 벗어나 기록단을 통해 세상을 향해 이태원 참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책임의 외면, 권리의 침해, 정의의 공백 속에서 오늘도 유가족들은 진실을 알고 싶은 참담한 마음을 시청 앞 광장에 내걸었습니다. (5쪽) 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자신들이 더 열심히 활동하지 않아서 자신들만 겪어도 충분했을 고통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까지도 겪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는데 왜 슬픔을 겪은 고통당한 이들이 또 다른 고통 당한 이들을 위로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 재난의 피해자는 누구이고, 당사자는 누구일까? 책장을 넘기며 수많은 물음표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과 글에 담긴 힘과 그 안에 담긴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으며, 기록단이 그랬듯 나 역시 그들의 진심을 진심으로 응답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는 다는게 그 응답은 한 몸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가 연대가 되고 우리가 모두 따뜻한 온기를 품은 사람이기에,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귀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유나씨의 언니 유진씨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길 위해 매일 만나러 온다고 했다. (209쪽) 

이제 그들에게 제자리는 어디인 것일까? 159명이 없는 세상에서 그들에게 제자리는 어디일까? 

유가족 협의회의 이상적인 마무리는 책임자의 처벌과 제대로 된 추모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책임과 기억, 불가능한 일이 아닐텐데 벌써 1년 넘게 두 가지 모두 미루어지고만 있다. 


이태원은 오래전부터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이었고, 이태원에 오면 누구든 간에 소수자화되는 듯해요. 죽음이 소외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씀드린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이태원이라는 장소성 때문에 이 참사가 더 갈 곳 없는 사고가 되는 것 같아요. (306쪽) 

'거길 왜 갔어?'가 아니라 '왜 그들이 돌아오지 못했는가?'의 질문을 던지며, 책임과 기억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어떻게 정치적인 얘기일 수 있을까? 심한 말들은 사람들의 삶에 스미는데, 이미 가족을 잃은 큰 고통에 빠진 이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들과 무관심으로 상처를 더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 이것은 시스템(구조)의 문제이다. 우리의 분노는 어떤 대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 변화 안에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덮어질 수도 없었던 일이 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참사를 막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그저 이 참사 자체만을 두고 충분히 애도하고, 진실을 규명하며, 책임을 물어야 하는 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에 사는 것은 참 불행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가족을 잃었는데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던지는 이들이 존재한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하지 않는 사회는 어떤 이의 고통도 품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과 참사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자세는 곧 

지금 살아있는 국민 전체를 대하는 자세와 일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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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로큰롤
오쿠다 히데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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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라는 이름 앞에 망설임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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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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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공중그네의 오쿠다 히데오를 잊을 수 없어 책을 구입하니다 :) 믿고사는 오쿠다 히데오의 책. 기대되는 당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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