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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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소설 | 문학동네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을 작년에 은근히 여러 권 읽었는데 이번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이전 수많은 작품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전에는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작품들이, 특히 단편이, 이해가 안 되기도 했고 어렵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빠져들어서 읽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어렵지만 끝까지 읽어냈을 때 결국에는 모든것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도 여러 번 받았다.

이번 소설들은 처음에 읽을 때 '오, 이해가 잘 되네?' 했는데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앞을 찾아보게 되었고, 다시 읽어본 앞의 그 부분은 처음 느꼈던 그 감각과 또 느낌이 다르다고 하면서 곱씹게 되었다. 하지만 또다시 결국에는 '역시 김연수 작가님!'이라며 탄복.

바로 재독들어갈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몇몇 소설은 벌써 두 세번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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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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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라의책파_1월 ] - 2

<비행운>

김애란 소설집 | 문학과 지성사

김애란 작가님 책은 십여년 전에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두근두근 내 인생> 세 권을 (아마도) 연달아 읽고 그 흡입력에 흠뻑 빠지면서도 가슴 깊숙이 너무 아프고 아렸었다. 삶의 어두움 부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가님의 그 세계가 나에게는 좀 어렵기도해서 그 뒤로는 수상 작품집이나 다른 앤솔러지 작품집에서만 드문드문 접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비행운>은 왠지 읽고 싶었고 자꾸 눈이 갔던 소설집이다. 읽고 싶다면서 오랫동안 손에는 (전자책이니까 이북리더기가) 쥐고 있지만 막상 펼치려고 하기보다는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 김애란 작가님의 늪같은 그곳에 빠져서 허우적 댈 내가 두려워서.

<비행운>에는 8편의 소설이 담겨있고, 역시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 읽고 나니, 맞아, 역시 김애란 작가님은 이랬었지, 삶의 다른 면을 알려주곤 했어,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또한 하게 되었다. 생생한 장면 묘사들도 김애란 작가님의 글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 주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곧이어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그렇게 쉬운 생각을 그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별안간 뺨 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빨리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나왔다. 결국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크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_p.57_


[벌레들]
폭염이, 장마가 지속됐다. 큰 비는 세계를 집어삼킬 듯 열흘이나 계속됐다. 어쨌든 견뎌내야 했다.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까. 모두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으니까. _p.83_


[물속 골리앗]
누구도 우리를 찾아올 수 없다면, 우리 역시 이곳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전기가 끊기자 티브이와 전화가 먹통이 됐다.인터넷을 쓰거나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우리가 바깥소식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장마가 끝나기를. 혹은 나쁜일이 생기기 전에 구조대가 오기를. 세상의 적어도 한두 명만은 이곳 철거 아파트에 사람이 산다는 걸 기억하리라 믿었다. 나가라고 그렇게 난리를 피웠는데 잊었을 리가 없었다. _p.121_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어디. 언제나 '어디'가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있다고. 그녀는 '짜이날'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라 했다. 그 말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고. 그다음, 그곳에 어떻게 갈지는 당신이 정하면 된다고.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 잃은 나그네에게 친절하다고. 그러니 외지에 나가선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할 줄 아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_p.179_


[하루의 축]
기옥 씨가 알기로 공항 안에 제일 많은 단어는 '출발'이란 말과 '도착'이란 말이었다. 그런데 기옥 씨는 이 순간 수천 개의 표지판 아래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고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_p.269_


[큐티클]
세계는 생각보다 썩기 쉬운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_p.281_

그렇게 오래 여행 가방 옆에 있자니 우리가 떠나온 사람 떠나갈 사람이 아니라 멀리 쫒겨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꽤 오래전부터 그렇게 커다란 가방을 이고 다녔던 것 같은 기분도. _p.331_


[호텔 나약 따]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어둑한 술집에 죽치고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지적이고 허세 어린 농담을 주고받다 본 세상이 조금 만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느 날 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시시한 인간이 돼 있던 거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이상이 될 수 없을 거란 불안을 안고. 아울러 은지와 서윤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가진 거 중 가장 빛나는 것을 이제 막 잃어버리게 될 참이라는 것을. _p.339_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_p.373_


[서른]
그런데 언니,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_p.401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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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지 않고 그냥 막연히 구름이겠거니 했는데, 해설을 읽고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구나.

[해설]
비행운의 꿈을 꾸면 꿀수록, 그러니까 비행운에 대한 동경이 핍절할수록, 비행운(非幸運)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비행운(飛行雲)과 비행운(非幸運) 사이의 속절없는 거리에서, 작가 김애란은 우리 시대의 의미심장한 서사 단층을 마련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그물을 짠다. 비행운(飛行雲) 구름 그림자에 가려진 비행운(非幸運)의 속사연을 웅숭깊게 펼친다. _p.437_


#라라의오늘책파
#라라의책장파먹기 #비행운 #김애란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1월_완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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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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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라의책파_1월 ] - 1

<겨울방학>

최진영 소설 | 민음사

처음에 최진영 작가님 소설을 읽고 그 빛이 흐림이라고 해야할까, 어둠은 아닌데 회색빛이면서 약간 비껴가는 아주 미세하지만 선명한 빛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결. 그것과 비슷했고 가슴 깊이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겨울에 읽어야지 했던 책, 최진영 작가님의 소설집 <겨울방학>을 읽었다. 겨울방학은 보통 2월까지지만 개인적으로 1월은 겨울에 가깝고 2월은 봄에 가깝다고 느껴져서 1월 안에 읽고 싶었다. 그래서 서둘러 책을 펼쳤다.

성인이 되고부터 '내가' 쉬는 '방학'이라는 개념이 없어졌을지는 몰라도, 어느 면에서든 나는 아이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방학도 나의 일부로 살아온지 오래다. 봄방학, 여름방학, 겨울방학. 가을방학만 없다. 가을은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는 계절이기에. 요즘에는 겨울방학의 시작이 조금 느리고 봄방학 없이 쭈욱, 새 학기 시작까지 방학을 하는 학교가 늘었다. 그로인해 안타깝게도 주 양육자의 부담이 커지기도 했다.

여름방학도 길고 겨울방학도 길지만 소설집 제목이 <겨울방학>인건 한 단편의 제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 느낌상, 여름방학은 뭔가 더 활발한 기분이라 겨울방학이 내 맘을 더 차분하게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냥, 그 제목도 소설도 마음에 든다는 얘기다.

최진영 작가님의 소설에는 아이들이 자주 나온다. 아이들의 시선일 때도 있고, 아이들의 이야기일 때도 있고, 아이들이 주인공이거나 주변인일 때도 있다. 우리가 자라온 그 시절, 그때의 모습들이 비춰진다. 잘 모르지만 그러기에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아이들.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더 손을 놓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최진영 작가님의 글에 담긴 그 진득한 무게. 삶.

열 편의 소설이 담겨있다. 하나하나. 꾸욱꾸욱.

[돌담]
그때 내가 무엇을 피하려고 했는지 이제는 안다. 내가 어떨 때 거짓말하는 인간인지,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에서 도망치는 인간인지 생각하기 싫었다. 그런 나를 내게서 빼고 싶었다. 그래서 잊고 살았다. 비슷한 일이 반복될수록 더 잊으려고 했다. 결국 나는 나쁜 것을 나누며 먹고사는 어른이 되었다. 괜찮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아직은 괜찮겠지, 기만하는 수법에 익숙해져 버린 형편없는 어른. _p.42_


[겨울방학]
고모는 비로소 깨달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고모는 고모 집이 좋은데.
거짓말. 고모도 싫으면서.
거짓말 아니야. 난 정말 여기가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대꾸하면서 고모는 조금 웃었다. _p.73_

(...) 고모는 아이처럼 질문하고 웃고 어지럽혔다. 어른처럼 침묵하고 치우고 늦게 잤다. 고모가 자기와 놀기를 선택한 순간부터 이나는 고모의 가난을 생각하지 않았다. 신발도 신경 쓰지 않았다. _p.74_


[첫사랑]
- 혜지, 그림 그리는 이우현 그리고 방송반 우미 언니. 이우현의 누나라니!!!


[가족]
멀리서도 사랑한다고 말할게.
밤의 고속도로는 검고 위험하고 아름다웠다. 따뜻하게 빛나는 가로등이 가까워지고 멀어졌다. 일정한 속도로 달리면서, 서로의 손을 매만지면서 두 사람은 자기들의 말을 믿고 싶었다. _p.138_


[의자]
이때가 제일 좋지 않냐.
소진이 말했다. 무슨 뜻인가 생각했다. 좋다니까, 좋은 뜻이겠지. 내가 아무 말도 않고 있으니 소진이 말을 이었다.
이맘때 말이야. 바람이랑 날씨랑 온도랑 향기랑. 좋은데 너무 짧아. 짧아서 더 좋은 건가. 근데 꼭 좋을 때 시험이 겹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었다. 계절이 좋다는 생각 같은 거. 이맘때라는 말도 글자로만 본 것 같은데, 글자로만 볼 때는 몰랐는데 소리로 들으니 예쁜 말이었다. _p.151_

임종을 지켰고 모두가 울 때 같이 울었고 영정 사진 앞에서 절까지 했는데도 현실 같지 않았다. 이제부터 진짜 연습이 시작된 것 같았다. _p.153-154_

뭘 만들었어? 소진이 물었다. 의자를 만들고 있다고 대답했다. 편하지는 않지만 잠시 앉아 쉬기에는 좋은 의자를. _p.165_


[四]
나는 나의 행복과 안락을 원한다. 그것을 얻으려면 사람답게 살아야 하나?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사람답게 살 때 나는 평안이나 위로를 얻을 수 없었다.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살았다. 사람다운 사람이란 걱정과 불안에 잠식된 삶인가? 모르겠다. 나갈 수 없고 나가고 싶지 않다. 아직은 아니다. 가만히 앉아 골똘히 쳐다본다. 그곳의 어둠을. 더 어두워질 것인가. 차차 밝아질 것인가. 다음을 기다린다. _p.196_


[막차]
버스는 비상활주로를 달릴 것이다. 그 길을 지나며 승지는 다시 떠올릴 것이다. 아주 크고 무거운 발자국을. 누런 논까지 날아가 잘 자란 벼 사이에 꽁꽁 숨어버린 우리 영지를. 때로 조금 울 것이다. 까만 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견딜 수 없어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많은 밤, 승지는 죄책감 다음에 오는 단어를 찾아 헤맬 것이다. 그런 밤을 살고 또 살 것이다. 막차를 탈 것이다. _p.212_


[어느 날 (feat.돌멩이)]
...... 엄마는 우리가 어떻게 되면 좋겠어?
글쎄. 이제 와서는 사는 건 모르겠고 ...... 그래도 우리가 가까운 곳에서 죽으면 좋겠다. 네가 오든가 내가 가든가 최대한 가까운 데서. _p.230_


[오늘의 커피]
손님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 그렇게 혼자 와서 다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더라고요. 기다리다 포기하고 카페를 나가고. 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와 기다리고. _p.260_

[0]
나란 인간 자체는 너무 거칠고 날것으로 볼품없으니 그것을 말이나 글로 가공해야 했는데, 나는 말이 서툴렀다. 말은 피곤했고 가벼웠다. 일단 뱉으면 고칠 수도 없었다. 하여 나는 기록으로 나를 꾸몄고, 꾸며진 나를 기억했다. 본래의 나보다 훨씬 그럴듯한 나를. _p.277_

#겨울방학 #최진영 #소설집 #민음사 #1월_완독리뷰 #최진영소설 #민음사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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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다 - 이길여 회고록
이길여 지음, 김충식 인터뷰어 / 샘터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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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 <길을 묻다>


이길여 회고록


김충식 대담 | 샘터





나는 마음이 좀 비뚤배뚤한 사람이라 타인의 성공스토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배배꼬임의 일종으로 평전이나 회고록이나 자서전 같은 글도 즐겨 읽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타이틀이 붙어 있으면 일부러 피해가기도 한다. 그런데 <길을 묻다>를 읽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됐다. 자서전이나 회고록 같은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무언가 새로운 것과 나에게 울림이 없는 그런 글이 나의 흥미를 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샘터 2023 봄여름 물방울 서평단 활동을 하게 되었다. 물방울 서평단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랜덤으로 책을 배정받는다. 그 첫번째 책이 <길을 묻다>와 <초콜릿>인데, 나는 <길을 묻다>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었다. 처음에는 이길여 총장 회고록이라고 해서 웅?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새해를 맞아 동기부여가 필요하신 분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랍니다."라는 샘물이의 소개를 읽고 이 책이 지금 나에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이어 들었다. 그런 상태로 읽기 시작.


결론부터 말하겠다.


대.만.족.


'이길여 총장 회고록'이라는 타이틀만을 보면 초기의 나처럼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도 있을 것 같아서 말한다. 이 책에는 한 여성의 성공적인 삶 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우리나라의 의료 발전사가 이곳에 다 들어있다. 어떻게 들어있을까? 궁금하겠지만, 그건 읽어보면 알겠고. 그래도 힌트를 주자면...


아, 그 전에, 이 회고록은 다년간의 준비와 다년간의 기간을 거쳐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그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참고로 대담자는 김충식님(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원저자이자 다양한 이력을 가지신 분. 어떻게 칭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님으로.) 이다. (인터뷰어가 열과 성을 가지고 인터뷰를 준비하면 인터뷰이는 자연스럽게 집중하고 그 인터뷰는 잘 될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짝짝짝. 멋지다.)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야하는, 자료조사가 또다시 필요한시점인데요."(p.299) 이런 말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런식으로 그 사건이 있었던 시대의 배경과 우리나라 및 세계의 동향 등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우리나라의 의료 발전사를 세세하게 알 수 있어서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나라를 알아가고 역사를 알아간다. 시대와 우리 민족의 삶이 한 여성의 서사를 통해서 드러나고, 그를 통해서 내가 또 우리가 나라와 역사를 시대와 우리 민족을 알 수 있다는게 너무 신기하기도 했고 여성이기에 더 좋기도 했고 심지어 재미있기도 했다.


저는 그래서 시대상이나 당대의 분위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총장님의 성공 스토리도 그렇습니다. 총장님이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하면서 '보증금 없는 병원'을 써 붙였지만, 시대상을 모르면 그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담은 시대상을 조명하고 세대 간의 공감을 넓히는 작업일 수도 있습니다. _p.153_


그 시기 우리나라의 의료 보험 수혜율은 총 인구의 0.2퍼센트였습니다. 이건 1975년 7월 30일자 통계인데요. 1979년 7월 1일 통계는 30퍼센트로 올라 4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하긴 했지만 전 국민 의료 보험 혜택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989년 7월 1일에야 이뤄집니다. _p.245_


이 대담집 발간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총장님의 삶과 길병원의 역사를 두 축으로 한국 의료의 발전사를 조명하는 것입니다. 두 축을 당대의 맥락과 교차 비교해야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한국의 의료 발전사는 대한민국 발전사의 한 축이니까요. _p.256_





가천대학교 이길여 총장.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분. 이렇게 총장이라는 타이틀만 보면 잘 모르는 이들도 있겠지만 여성 의사로 한국 의료계와 많은 환자들에게 특히 여성 환자들에게 엄청난 공헌을 하신 분이시다. 사실 나는 총장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지만 그분의 삶을 한걸음 한걸음 따라가면서 역시 예사 사람이 아니셨다는 걸 알 수있었다. "실력, 담력, 매력, 3대 요소를 두루 갖춘 특이한 분이다!"라는 평도 들으셨는데 (첫째, 실력은 길병원과 가천대학교를 일으킨 걸출한 업적을 말한다. 둘째, 담력은 웅대한 비전을 갖고, 반신반의하는 아래 사람과 인적 자원을 동원해 성과를 도출하는 리더십이다. 셋째, 매력은 스스로를 헌신하고 희생해, 벌들이 날아오게 하는 꽃 같은 매력이다. _p.508_) 이에 딱 걸맞는 분인 것 같다. 여성으로 본 받고 싶다.


총장님에게 '가천'이라는 아호를 지어 주신 류승국 박사를 만난 게 이 무렵이었지요? (...)

제 이름에 '길할 길'자가 있잖습니까. '길'자가 스무 번 더해진 글자가 '아름다울 가'라는 겁니다. (...) '가회합례 수세인천'이라는 글을 친필로 써 주셨지요. (...) 거기서 '가천' 두 글자를 따온 것이라고 하셨고요. '아름다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샘'이라는 뜻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_p.295-297_

책 제목 <길을 묻다>에는 다양한 의미가 들어있을 것 같다. 길병원의 길,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을 때 선택했던 길, 앞으로의 길, 그리고 이길여의 길. 그 길이 나의 길에도 조금이라도 놓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벽돌책이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던데, 연초에 내 눈을 반짝이게 만들어준 좋은 책을 만났다. 샘터!! 고맙습니다 :)


* 샘터 물방울 서평단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흥미진진하게 읽고 작성한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여담 :


- 엄마, 길병원 알아?

- 그럼, 인천에 있는거 말하는거지? 대단하지 그 병원.


나만 몰랐나보다. 부끄러워라. 이제라도 알았으니 그게 어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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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꿈들 - 장소, 풍경,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양미래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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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미티 국립공원 + ]



<야만의 꿈들 : 장소, 풍경,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양미래 옮김 : 반비




[2부 물, 과거를 망각하다 : 요세미티 국립공원]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혹독한 시련을 겪은 장소이자 미국 풍경의 시금석인 장소다. 나는 내가 요세미티 국립공원 안에 있는 테나야 호수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유럽계 미국인들이 풍경을 경험한 방식을 구성하는 여러 특성과 무지와 황홀감과 문제점을 간파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_p.298_


1부에서 네바다 핵실험장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이야기가 2부에서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까지 확장되었다. 풍경, 그 풍경을 찍은 사진들, 원주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은 삭제된 자연만 담은 그런 사진으로 인식되고 있는 공간, (이 지구상에서 풍경 사진 및 풍경 보호와 관련해 요세미티보다 더 핵심적인 장소는 없으리라고 말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요세미티 사진에서 누락된 요소들은 우리가 풍경을 이해하는 방식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_p.300_), 역사와 상충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박물관....


리베카 솔닛은 깊이 들어갔다. 네바다 핵실험실과 마찬가지로 그곳에 있었고, 그곳을 파해쳤고, 그 장소가 가지는 역사와 진실을 집요하게 따라갔다. 서부 개척과 원주민 학살, 멸종, 오염, 문화, 노골적인 배재, 그리고 '스스로 유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p.368)'


"저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이 땅이 제 땅이라고 말해요. 사람들이 저에게서 앗아갈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바로 제가 느끼는 감정이에요." _p.386_ 아와니치족의 후손, 존슨_


이름은 곳곳으로 퍼지면서 본래의 의미를 잃는다. _p.412_


이름을 바꾸는 행위에는 원주민을 소탕해버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특정 지역, 특히 요세미티에 새로운 사람들의 언어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전멸과 원주민이라는 단어를 통해 여실히 들어난다. 전멸은 끝낸다는 의미의 종결하다라는 표현에서 왔고 원주민은 시초를 가리키므로 이 단어들은 '시초를 종결하다', '시작을 끝내다', '중간에서 다시 시작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_p.417_


리베카 솔닛이 말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로 연결되지만 각각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 확장에는 길이 있고 장소가 있고 자연과 풍경이 있다.


어떤 장소를 알아간다는 것은 친구나 연인을 알아가듯 그 장소와 친밀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장소를 더 잘 알아간다는 것은 그 장소가 다시 낯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낯설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방식으로 참신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사그라들지 않는 심오하고도 심란한 방식으로 낯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_p.447_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속으로, 또 다른 책 속의 세세한 부분들 속으로까지 들어가고 그곳에서 나와 또 다시 아주 광활하게 확장해서 서술하는 그런 솔닛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나서 자란 나로서는 미국의 그 광활한 자연이 잘 그려지지 않았고 역사도 너무 어렵기만 했다. 2부를 읽으면서 1부를 읽을 때 처럼 무언가를 얻으려고 했고,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알아야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어서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깜냥이 안 되면서 그것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많이 얻어가려던 욕심 때문이었다. 마지막 챕터인 [원점으로]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리베카 솔닛의 글은 세세하게 하나하나에 담긴 모든 의미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그냥 물 흐르듯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길을 걷듯이 자연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읽으면서 크게 그림을 그리고 마음으로 느끼면 되는 것이었다. 또 다시 리베카 솔닛의 책 <걷기의 인문학>으로 시선이 흘렀다.

'이 세상은 완벽이라는 기준을 놓고 보면 늘 부족하다.' _p.428_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은, '우리는 왜 넌픽션 혹은 인문 에세이를 읽어야 하는가?' 였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새겼던 말은,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역사와 한국의 사건을 이렇게 세세하게 파고들고 알아야할 것 같다. 누군가의 증언을 들어야할 것 같다.' 였다. 그러면서 두렵기도 했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아닌지를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하니까. 또 '우리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에 집중해서 읽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가 없다. 

- 이건 내가 풀어야 할 문제이다!!


좋은 책을 읽었다.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핵실험, 국립공원, 자연, 사진, 배제, 문화, 원주민....)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리베카 솔닛의 생각을 나의 쟁각으로 어떠한 말이나 글 하나로 풀어내기는 어렵겠지만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 솔닛_북클럽 멤버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흥미롭고 진지하게 읽고 작성한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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