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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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라의책파_1월 ] - 2

<비행운>

김애란 소설집 | 문학과 지성사

김애란 작가님 책은 십여년 전에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두근두근 내 인생> 세 권을 (아마도) 연달아 읽고 그 흡입력에 흠뻑 빠지면서도 가슴 깊숙이 너무 아프고 아렸었다. 삶의 어두움 부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가님의 그 세계가 나에게는 좀 어렵기도해서 그 뒤로는 수상 작품집이나 다른 앤솔러지 작품집에서만 드문드문 접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비행운>은 왠지 읽고 싶었고 자꾸 눈이 갔던 소설집이다. 읽고 싶다면서 오랫동안 손에는 (전자책이니까 이북리더기가) 쥐고 있지만 막상 펼치려고 하기보다는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 김애란 작가님의 늪같은 그곳에 빠져서 허우적 댈 내가 두려워서.

<비행운>에는 8편의 소설이 담겨있고, 역시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 읽고 나니, 맞아, 역시 김애란 작가님은 이랬었지, 삶의 다른 면을 알려주곤 했어,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또한 하게 되었다. 생생한 장면 묘사들도 김애란 작가님의 글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 주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곧이어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그렇게 쉬운 생각을 그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별안간 뺨 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빨리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나왔다. 결국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크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_p.57_


[벌레들]
폭염이, 장마가 지속됐다. 큰 비는 세계를 집어삼킬 듯 열흘이나 계속됐다. 어쨌든 견뎌내야 했다.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까. 모두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으니까. _p.83_


[물속 골리앗]
누구도 우리를 찾아올 수 없다면, 우리 역시 이곳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전기가 끊기자 티브이와 전화가 먹통이 됐다.인터넷을 쓰거나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우리가 바깥소식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장마가 끝나기를. 혹은 나쁜일이 생기기 전에 구조대가 오기를. 세상의 적어도 한두 명만은 이곳 철거 아파트에 사람이 산다는 걸 기억하리라 믿었다. 나가라고 그렇게 난리를 피웠는데 잊었을 리가 없었다. _p.121_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어디. 언제나 '어디'가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있다고. 그녀는 '짜이날'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라 했다. 그 말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고. 그다음, 그곳에 어떻게 갈지는 당신이 정하면 된다고.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 잃은 나그네에게 친절하다고. 그러니 외지에 나가선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할 줄 아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_p.179_


[하루의 축]
기옥 씨가 알기로 공항 안에 제일 많은 단어는 '출발'이란 말과 '도착'이란 말이었다. 그런데 기옥 씨는 이 순간 수천 개의 표지판 아래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고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_p.269_


[큐티클]
세계는 생각보다 썩기 쉬운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_p.281_

그렇게 오래 여행 가방 옆에 있자니 우리가 떠나온 사람 떠나갈 사람이 아니라 멀리 쫒겨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꽤 오래전부터 그렇게 커다란 가방을 이고 다녔던 것 같은 기분도. _p.331_


[호텔 나약 따]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어둑한 술집에 죽치고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지적이고 허세 어린 농담을 주고받다 본 세상이 조금 만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느 날 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시시한 인간이 돼 있던 거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이상이 될 수 없을 거란 불안을 안고. 아울러 은지와 서윤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가진 거 중 가장 빛나는 것을 이제 막 잃어버리게 될 참이라는 것을. _p.339_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_p.373_


[서른]
그런데 언니,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_p.401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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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지 않고 그냥 막연히 구름이겠거니 했는데, 해설을 읽고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구나.

[해설]
비행운의 꿈을 꾸면 꿀수록, 그러니까 비행운에 대한 동경이 핍절할수록, 비행운(非幸運)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비행운(飛行雲)과 비행운(非幸運) 사이의 속절없는 거리에서, 작가 김애란은 우리 시대의 의미심장한 서사 단층을 마련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그물을 짠다. 비행운(飛行雲) 구름 그림자에 가려진 비행운(非幸運)의 속사연을 웅숭깊게 펼친다. _p.437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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