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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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라의책파_1월 ] - 1

<겨울방학>

최진영 소설 | 민음사

처음에 최진영 작가님 소설을 읽고 그 빛이 흐림이라고 해야할까, 어둠은 아닌데 회색빛이면서 약간 비껴가는 아주 미세하지만 선명한 빛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결. 그것과 비슷했고 가슴 깊이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겨울에 읽어야지 했던 책, 최진영 작가님의 소설집 <겨울방학>을 읽었다. 겨울방학은 보통 2월까지지만 개인적으로 1월은 겨울에 가깝고 2월은 봄에 가깝다고 느껴져서 1월 안에 읽고 싶었다. 그래서 서둘러 책을 펼쳤다.

성인이 되고부터 '내가' 쉬는 '방학'이라는 개념이 없어졌을지는 몰라도, 어느 면에서든 나는 아이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방학도 나의 일부로 살아온지 오래다. 봄방학, 여름방학, 겨울방학. 가을방학만 없다. 가을은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는 계절이기에. 요즘에는 겨울방학의 시작이 조금 느리고 봄방학 없이 쭈욱, 새 학기 시작까지 방학을 하는 학교가 늘었다. 그로인해 안타깝게도 주 양육자의 부담이 커지기도 했다.

여름방학도 길고 겨울방학도 길지만 소설집 제목이 <겨울방학>인건 한 단편의 제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 느낌상, 여름방학은 뭔가 더 활발한 기분이라 겨울방학이 내 맘을 더 차분하게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냥, 그 제목도 소설도 마음에 든다는 얘기다.

최진영 작가님의 소설에는 아이들이 자주 나온다. 아이들의 시선일 때도 있고, 아이들의 이야기일 때도 있고, 아이들이 주인공이거나 주변인일 때도 있다. 우리가 자라온 그 시절, 그때의 모습들이 비춰진다. 잘 모르지만 그러기에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아이들.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더 손을 놓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최진영 작가님의 글에 담긴 그 진득한 무게. 삶.

열 편의 소설이 담겨있다. 하나하나. 꾸욱꾸욱.

[돌담]
그때 내가 무엇을 피하려고 했는지 이제는 안다. 내가 어떨 때 거짓말하는 인간인지,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에서 도망치는 인간인지 생각하기 싫었다. 그런 나를 내게서 빼고 싶었다. 그래서 잊고 살았다. 비슷한 일이 반복될수록 더 잊으려고 했다. 결국 나는 나쁜 것을 나누며 먹고사는 어른이 되었다. 괜찮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아직은 괜찮겠지, 기만하는 수법에 익숙해져 버린 형편없는 어른. _p.42_


[겨울방학]
고모는 비로소 깨달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고모는 고모 집이 좋은데.
거짓말. 고모도 싫으면서.
거짓말 아니야. 난 정말 여기가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대꾸하면서 고모는 조금 웃었다. _p.73_

(...) 고모는 아이처럼 질문하고 웃고 어지럽혔다. 어른처럼 침묵하고 치우고 늦게 잤다. 고모가 자기와 놀기를 선택한 순간부터 이나는 고모의 가난을 생각하지 않았다. 신발도 신경 쓰지 않았다. _p.74_


[첫사랑]
- 혜지, 그림 그리는 이우현 그리고 방송반 우미 언니. 이우현의 누나라니!!!


[가족]
멀리서도 사랑한다고 말할게.
밤의 고속도로는 검고 위험하고 아름다웠다. 따뜻하게 빛나는 가로등이 가까워지고 멀어졌다. 일정한 속도로 달리면서, 서로의 손을 매만지면서 두 사람은 자기들의 말을 믿고 싶었다. _p.138_


[의자]
이때가 제일 좋지 않냐.
소진이 말했다. 무슨 뜻인가 생각했다. 좋다니까, 좋은 뜻이겠지. 내가 아무 말도 않고 있으니 소진이 말을 이었다.
이맘때 말이야. 바람이랑 날씨랑 온도랑 향기랑. 좋은데 너무 짧아. 짧아서 더 좋은 건가. 근데 꼭 좋을 때 시험이 겹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었다. 계절이 좋다는 생각 같은 거. 이맘때라는 말도 글자로만 본 것 같은데, 글자로만 볼 때는 몰랐는데 소리로 들으니 예쁜 말이었다. _p.151_

임종을 지켰고 모두가 울 때 같이 울었고 영정 사진 앞에서 절까지 했는데도 현실 같지 않았다. 이제부터 진짜 연습이 시작된 것 같았다. _p.153-154_

뭘 만들었어? 소진이 물었다. 의자를 만들고 있다고 대답했다. 편하지는 않지만 잠시 앉아 쉬기에는 좋은 의자를. _p.165_


[四]
나는 나의 행복과 안락을 원한다. 그것을 얻으려면 사람답게 살아야 하나?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사람답게 살 때 나는 평안이나 위로를 얻을 수 없었다.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살았다. 사람다운 사람이란 걱정과 불안에 잠식된 삶인가? 모르겠다. 나갈 수 없고 나가고 싶지 않다. 아직은 아니다. 가만히 앉아 골똘히 쳐다본다. 그곳의 어둠을. 더 어두워질 것인가. 차차 밝아질 것인가. 다음을 기다린다. _p.196_


[막차]
버스는 비상활주로를 달릴 것이다. 그 길을 지나며 승지는 다시 떠올릴 것이다. 아주 크고 무거운 발자국을. 누런 논까지 날아가 잘 자란 벼 사이에 꽁꽁 숨어버린 우리 영지를. 때로 조금 울 것이다. 까만 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견딜 수 없어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많은 밤, 승지는 죄책감 다음에 오는 단어를 찾아 헤맬 것이다. 그런 밤을 살고 또 살 것이다. 막차를 탈 것이다. _p.212_


[어느 날 (feat.돌멩이)]
...... 엄마는 우리가 어떻게 되면 좋겠어?
글쎄. 이제 와서는 사는 건 모르겠고 ...... 그래도 우리가 가까운 곳에서 죽으면 좋겠다. 네가 오든가 내가 가든가 최대한 가까운 데서. _p.230_


[오늘의 커피]
손님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 그렇게 혼자 와서 다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더라고요. 기다리다 포기하고 카페를 나가고. 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와 기다리고. _p.260_

[0]
나란 인간 자체는 너무 거칠고 날것으로 볼품없으니 그것을 말이나 글로 가공해야 했는데, 나는 말이 서툴렀다. 말은 피곤했고 가벼웠다. 일단 뱉으면 고칠 수도 없었다. 하여 나는 기록으로 나를 꾸몄고, 꾸며진 나를 기억했다. 본래의 나보다 훨씬 그럴듯한 나를. _p.277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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