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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케이크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27
패트리샤 폴라코 지음, 임봉경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천둥과 케이크 제목만으로는 아무런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무서워할 천둥과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 부드럽고 달콤한 케이크의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라니 다음이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어른도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콰르릉거리면 괜히 움찔하게 되는데 하물며 아이들이야 어디에 숨고싶을 만도 하다.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책 속의 아이처럼. 아이가 더 어릴 때는 천둥번개만 치면 무서워해서 꼬옥 안아주기도 했었고 말이다. 제목을 읽어주니 '천둥? 케잌? 천둥케잌?'하고 눈을 크게 뜨며 바짝 다가온다. 아이는 그림의 이곳 저곳을 살피기 시작한다. 러시아 민속풍의 그림이 독특한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들판 저 건너 먹구름이 낮게 깔리자 할머니는 폭풍이 몰아치리라 짐작한다. 방안의 손녀는 벌써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꽁무니만 내놓고 있다. 그런 손녀를 위해 할머니의 푸근한 다독거림이 이어지고 그 말에 아이도 용기를 내어 할머니와 천둥케이크를 만들기로 한다. 고작 아이를 안아 주거나 아무 것도 아니라며 괜찮다는 말만 할뿐인 나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젠 번개나 천둥소리는 신경 쓰이지 않고 오히려 재료를 구하는 데 실수나 하지 않을까 천둥케이크를 제 시간에 구울 수 있을까 모두가 긴장되는 순간이다. 그러니 독자에게도 손녀에게도 더 이상 천둥소리가 문제되지 않는다. 오직 케잌이 완성될 수 있을지에 온 관심이 쏠려있을 뿐. 책을 읽어주며 과정 하나하나 뒤를 따라 다니는 것 같은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재료를 다 구하고 부엌으로 돌아온 할머니 옷이 달라졌다고 아이가 손가락으로 짚고 나서야 다시 보니 어느새 하얀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와 손녀의 바쁜 손놀림이 보인다. 그 준비과정이 두 페이지에 걸쳐 여러 컷으로 그려져 있다. 이 모두가 천둥소리를 들으며 해낸 일이라 손녀가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오븐에 들어간 천둥케이크를 기다리며 할머니의 칭찬이 이어진다.
'오호, 우리 꼬마가 천둥을 무서워하지 않네. 아주아주 용감해요!'
'네가 한 일들은 아주 용감한 사람들만이 해낼 수 있는 거란다!'
폭풍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으르렁대어도 예전처럼 소리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게 된 아이가 '할머니 말이 맞았습니다. 나는 용감했습니다!'하고 말할 수 있게 된 자신을 깨닫는다. 식탁에 천둥케이크 먹을 준비를 끝내고 오븐에서 꺼낸 케잌에 마지막 장식을 하는 바로 그 순간 폭풍이 도착한다. 번갯불이 온 하늘을 번쩍번쩍 비치고 우르릉 콰앙 쾅 콰르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져도 손녀는 여유 있게 웃고 있다.
과연 천둥케이크가 완성 될 수 있을지 손녀보다 더 궁금할 때쯤 '완벽해, 아주 완벽해!' 할머니가 가만가만 속삭인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옆에서 아이가 작은 어깨를 내려놓으며 활짝 웃는다. 마침내 천둥케이크가 완성되어 세모난 케이크를 접시에 담아 손녀에게 내미는 할머니 어깨너머로 빗방울이 쏟아진다. 손녀가 먹어본 케잌 중에 가장 맛있는 케잌이 아니었을까.
아이와 수를 세어보려 이젠 천둥번개가 기다려지는데 기다리니 오히려 소식이 없다. 그러다 얼마 전 아이가 잠든 자정이 넘어 번개가 번쩍하기에 어찌나 반갑던지. 천둥번개를 반가워하게 될 줄이야. 가만히 누워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 둘 세기 시작했다. 처음엔 열까지, 아홉, 다시 여덟을 세고 그 다음엔 여섯 그리고는 잠잠해지더니 빗소리만 이어진다. 아마 이 같은 날에는 완벽한 천둥케이크를 먹을 수 없겠지. 자다가 별 생각을 다한다 싶다. 남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이게 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엄마들만이 느끼는 행복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