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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늘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을 쓰는 황석영 작가가 이번에는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를 작품에 담았다. 노동운동, 공산주의 관련 내용은 조금 무거울 수 있지만 가족 삼대의 이야기가 아주 구수하게 옛날 이야기 들려주듯 서술되어 있어 술술 읽힌다. 황석영 특유의 입담이 잘 느껴지는 책이다.
이 책 '철도원삼대'는 예스24에 '마터 2-10'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마터 2-10은 산악형 기관차의 제작 번호로 일제시기부터 해방무렵까지 북한에서 운행하던 대부분의 기차였다고 한다. 같은 번호를 붙인 기관차는 전쟁 중 폭파되어 녹슨채로 비무장지대에서 화석이 되었단다.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오늘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백만의 증손이자 공장 노동자인 이진오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이 작품을 읽으며 작가의 전작 '손님'이 떠올랐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그렇고, 산자와 죽은자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도 그렇다. 이진오가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하며 페트병에 진오의 어릴적 동무나 노동운동 동지, 할머니 등의 이름을 적고 그들을 불러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특히 생각이 났다. '손님'에서도 주인공이 죽은 형과 이야기 나누며 과거를 같이 돌아보고 산자와 죽은자들이 서로 화해하는 내용이 나온다. '손님'도, 이번 '철도원삼대'도 황석영의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노동운동이라고 생각하면 '전태일'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즈음이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일제시대부터 노동운동이 있었다니 몰랐던 사실이었다. 일제시대 노동운동은 사용자, 관리자들이 일본인이다보니 노동운동이지만 독립운동과도 연결된다는 점이 지금 노동운동과 다른 점인 것 같다.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이 남자이긴 하지만 여성 캐릭터들이 그들에게 묻히지 않고 오히려 더 돋보이고 강렬하다는 점이다. 앞을 미리 내다볼 줄 아는 진오의 할머니 신금이, 여장부였고 집안의 대소사마다 나타나 도와주는 증조할머니 주안댁, 씩씩하게 가족들을 챙기는 막음이 고모, 그리고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여러 여성노동자들 캐릭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제시대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투옥당하고 고문받는 내용은 너무 담담하게 서술되어 오히려 더 가슴아팠다. 그 사람들을 현장에서 잡아들이고 고문하던 사람들도 결국 친일 조선인이라는 것은 더욱 더. 지금도 고문까지는 아니지만 그만큼 가슴 아픈 현실은 그대로다. 높은 굴뚝에 올라가서 농성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그래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지쳐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역시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아픈 현실이다. 우리 노동운동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 살피며 지금 내 주변 노동자들을 많이 돌아보고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공농성 며칠째 라는 기사를 보고도 그렇구나 하고 넘겼었는데 실제 고공농성을 하는 이진오의 모습을 책으로 보며 그냥 넘길 수 없게 되었다.
조선사람의 피와 땀으로 철도가 건설되고, 그 길로 기차가 다니기 시작하던 기차의 첫 역사도 아프지만 북한땅을 지나 만주지역까지 다니던 기차가 이제는 다닐 수 없다는 것도 아픈 역사다. 언젠가 경의선 기차가 다시 운행할 수 있기를.. 통일의 소망도 품게 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