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인 구제 조치를 넘어서는 금융시스템 전반에 걸친 전면적 지원은 정말로 실물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6 대출을 할 수 없어서 투자가 중단되고 따라서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것일까? 아니면 주택시장의 붕괴와가계경제의 어려움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투자를 해도 아무 이득이 없기 때문에 대출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일까?
어쩌면 이런 질문은 경제학의 영역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 P247

그건 금융위기와 맞선 미국측 해결사들이 오직 금융시스템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내린 결정들이 이후 벌어진 모든 상황들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놀랍고도 씁쓸할 정도로 얄궂은 본말전도(本末顚倒)의 무대가 만들어졌다. 1970년대 이후로 금융업계 대변인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자유시장경제와 규제 완화였지만 이제 와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시스템 붕괴라는 위협으로부터 이 사회의 금융 인프라 구조를 구해달라는것이 아닌가. 그것도 마치 전쟁이라는 비상사태가 닥친 것 같은 표현을 쓰면서 말이다. - P248

국가와 정부가 개입한 주요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1) 은행에 대출 형태로 자금 지원 (2) 자본재구성(recapitalization) (3) 자산매입 (4) 은행예금, 채무 혹은 심지어 은행의 대차대조표 전체에 대한 정부의 보증, 위기가 발생한 모든 곳에 대해 각국 정부는 이 네 가지 방식을 몇 가지로 결합해 적용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관계된 기관은 중앙은행과 재무부, 그리고 금융규제 감독청 등이었다.  - P250

팀 가이트너는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머뭇거리다 보면 더 큰위험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팀 가이트너와 측근들이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로 커다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유럽 경제의 갈팡질팡하는 행보와 비교해보면 미국은 그야말로 빠른 속도로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5 미국 금융계를 이끄는 지도력은 스스로 새로운모습을 갖췄다. 심지어 수치상으로만 좁혀서 보더라도 미국 재무부와 연준이 실시한 많은 지원계획들은 미국의 납세자들에게는 큰 이익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제2의 대공황을 막아낸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 P253

9월 17일이 되자 민주당 의원인 바니프랭크(Barney Frank)는 재무부 관료들과 가진 청문회에서 9월 15일 있었던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자유시장경제의 승리의 날"로 오래도록 기억될것이라고 선언했다. 33 프랭크 의원의 발언은 물론 농담이었지만 진심으로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헨리 폴슨의 한 보좌관은 9월 15일이
"재무부로서는 기쁜 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P264

1.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의 파산이 더는 없을 것이다.
2. 자본재구성을 지원할 조치들이 있을 것이다.
3. 은행간 자금시장의 유동성을 풀어주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4. 적절한 수준의 예금 보험을 해줄 것이다.
5. 증권화된 자산을 거래하는 시장을 새롭게 개편할 것이다. - P286

리먼브라더스에서 시작해서 TARP까지이어진 과정은 주권 국가가 앞장서서 위기를 극복한 과정이라기보다는 워팅턴과 월스트리트, 그리고 유럽의 금융시스템까지 엮인 사회정치적 네트티크 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권력들이 서로 충돌한 것에 더 가깝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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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러시아 경제의 반등은 이미 1999년부터 시작되었고그 반등을 이끈 사람은 푸틴의 정치적 스승이자 엄격한 공산주의자 예브게니 프리마코프(Yevgeny Primakov)였다. 해외에서 루블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러시아의 수출산업은 갑자기 살아나기 시작했고 수입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경제회복의 핵심 주역은 원유를 비롯한 각종 원자재에 대한 전 세계적인 소비 증가였다. 그리고 이런 증가는 마침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몇 개월이 지난 2000년 후반기부터 시작되었다. - P197

2008년9월11일 푸틴은서방측 전문가들을 만나 우크라이나를 NATO 회원국으로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결국 끔찍한 보복을 불러올 뿐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는 사이 러시아에서는 250억 달러에달하는 해외 자본이 빠져나갔지만 러시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지금은 1998년이 아니었던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 정도 시장 변동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정작 경제가파열음을 낸 건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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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야망은 완전 고용을 최우선시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완성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거기에 "사회적 배제와 차별"에 대항해싸우는 만큼이나 "사회정의"와 "세대간 연대를 추구하며 동시에 "경쟁력높은" 사회가 될 것을 약속하고 있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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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준과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수년간의 지지부진한 협상 끝에 마침내 1986년 9월 합의점에 이르렀으며 최종적으로 1988년 7월 바젤위원회에서 자본협정(Capital Accord) 혹은 바젤 I(Basel I)으로 알려지는 합의문을 발표한다. 그 이후부터는 대규모 국제 은행이 정상적인 사업 대출에 대해 보유하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자기자본비율이 8퍼센트로 정해진다.  - P138

바젤 II도 이론적으로는8퍼센트의 자기자본비율 유지를 요구했지만 일단 거대 은행들은 자체적인위험가중치 모형을 적용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규모의 대차대조표를유지할 수 있었다. 

바젤 I이 적용될 경우 모기지 자산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되었으며 필요 자본 계산을 위한 위험가중치는 오직 50퍼센트가적용되었다. 

바젤 II는 부동산 호황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런 규제들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기지 자산의 "자본가중치(capital weight)"를 35퍼센트로 줄여서 고수익의 MBS 보유를 훨씬 더 매력적인 사업으로 만들었다.  민간 발행 증권화의 호황이 가속화될수록 확실히 각종 규제는 더 완화되었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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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내 문제가 어떻게 글로벌금융시스템을 뒤흔들고 전 세계적인 위기를 불러올 수 있었을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부동산은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이며 중산층을 위한 일반 주택들은 그다지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의 시장성 높은 재산 중에서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부동산이 전 세계 부의 20퍼센트 이상을차지한다고 한다.  - P81

1980년대부터 GSE(gevernment sponsored enterprise)는 투자은행과손잡고 이체 방식의 모기지담보부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 MBS)은물론 혼합형 모기지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mortgage obligations, CMO)도발행하는데, CMO는 MBS 풀을 분할해서 각각의 위험 등급에 따라 발행이가능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소위 구조화금융(structured finance)이 시작되었다.  - P90

따라서 부동산이라는 자산이 뒤를 받쳐주는 수많은 자산담보부증권(asset-backed securities,
ABS)은 가장 안전하다는 AAA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 P91

그렇지만 부동산 시장이 일종의 균형 상태에서 호황으로 돌아섰을 때는 모든 사람이 싫든 좋든다함께 투기세력이되었다. 가치 상승으로 인한 이익이 기대되면 주택 소유의 개념도 따라서바뀐다.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투기하는 입장에 선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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