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강을 처음 본 것은 아주 어릴 때 철교를 건너는 전철 안에서였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면접을 보러다니면서 한강을 에워싸고 있는 아파트와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내가 들어가 돈 벌 수 있는 회사가 하나도 없다니라고 생각하며 한탄하던 시기였을 것이다.한강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니면, 강이라고 하기에 너무 넓고 깊어보이는 한강 속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결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한강˝으로 모인 앤솔러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상상과 흥미를 자극하는 화려한 애니메이션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유쾌한 시작을 알린 장강명 작가의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 , 그리고 정해연 작가와 차무진 작가, 박산호 작가님, 조영주 작가님은 각각 전혀 다른 접근의 스릴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판타지로의 시작과 함께 끝은 역시 정명섭 작가님의 ˝해모수의 의뢰˝의 SF로 마무리 되면서 한강의 소재는 무궁무진함을 알렸다.도시를 관통하며 무심히 흐르는 한강의 넓은 강폭과 깊은 강바닥 만큼이나 인간의 욕망과 억눌린 충동이 사건으로 시작된다. 나는 일곱편의 소설중 임지형 작가의 ˝한강을 달리는 여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유일하게 장르물이 아니면서도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고 애써 달리며 살아가는 그녀의 외로움은 한강의 고요함이 대비되었다. 가해자이기 때문에 드러낼 수 없는 상처난 내면 위에 고요한 물과 헐떡이는 숨이 들려올만큼 긴박하고 숨을 죄여올 정도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앤솔로지의 장점이자 단점인 다양하지만, 약간 아쉽고 더 깊은 이야기를 궁금해지지만 해소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한강과 함께 살아가는 서울 인구 천만의 이야기는 얼마나 다양할까 계속되는 시즌으로 다양한 작가님들의 참여 속에 발간되기를 기대하며, 이번 앤솔로지의 후속 연작도 집필하기를 응원한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 P392
인생이 길다고들 하지만, 실은 장미 꽃잎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시간보다 짧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영원‘과 ‘찰나‘라는 두 가지 힘은 불행한 우리 멍청이들을 번갈아, 그리고(더욱 혼란스럽게도) 동시에지배한다. 올랜도는 때로는 코끼리 발을 가진 신에게서, 그런다음에는 각다귀 날개를 가진 파리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 인생은 굉장히 긴 듯하면서도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 P113
"명성이란 사지를 구속하는 금줄 장식 외투, 심장을 억누르는 은으로 만든 상의, 허수아비에게 입히는 현란한 옷 같은 것이다" - P117
무명은 비밀스럽고, 넉넉하고, 자유로우며, 마음이 방해받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무명인, 즉 명성이 없는 사람은 자비로운 어둠의 은혜를넘치도록 받는다. 그가 어디를 오고 가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며, 그는 진리를 탐구하고 말할 수 있다. 오직 그만이 자유롭고 그만이 정직하며, 그만이 평화롭다. 그래서 올랜도는 참나무 아래에서 고요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땅 위로 드러난 단단한 뿌리마저 다른 때보다 편안하게 느껴졌다. - P118
"아니. 그래도 명색이 건축사 일을 하면서....."아니까. 아니까 말리는 거지. 내가 여기서 일하면서 너 같은사람 처음 보는 줄 알아? 레퍼토리도 똑같아. 집을 직접 짓는 게꿈입니다! 꿈이 현실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집 짓는다고 십년은 폭삭 늙어서 오 년도 못 살고 팔고서 아파트 전세 들어가 대출만 잔뜩 껴안고서." - P141
점심의 다른 말은 뭘까? 중식, 런치, 주찬, 진지, 끼니, 요기 등등다양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사료‘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런치플레이션이 불러일으킨 비극일까, 자본주의의 본성일까. 나는 런치, 때로는 진지를 먹고 싶지만 회사는 나의 밥상에 사료를 올려주고 싶은 눈치다. 저는 사료가 아니라 런치가 먹고 싶습니다. 제가 식물이면 광합성 런치라도 할 수 있지만, 이건 뭐 사료를 보고도 런치인 척해야합니까? - P126
남동풍이 불어오며 안개가 걷혔다. 내 손에는 아직 군무원 선배의 온기가 남아 있다. 그의 따뜻했던 손은 아마도 섭씨 36.5도. 혁명의 온도였다. - P100
인류가 걸은 기술 진보의 궤적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첫째, 기계근육의 시대: 대량생산체계가 만든 산업혁명 시대둘째, 기계지능의 시대: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의 보급셋째, 자율형 AI의 시대: 기계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 - P19
AI는 사람을 대체하지 않는다. AI를 잘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체한다. - P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