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녀를 보지 않았고 그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프로이센 장교에게 그녀를 희생양으로 바친 뒤 불결하고 쓸모없는 물건처럼대하는 이 파렴치한 사람들의 경멸 속에 내던져져 있었다. 그녀는 이 사람들이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던, 자신의 커다란 바구니에 들어 있던 음식이 생각났다. 젤리로 반지르르한 닭 두 마리, 맛있게 구운 파이, 싱싱한 배, 보르도 포도주 네 병. 그러자 너무 팽팽해져 끊어져 버린 끈처럼 갑자기 분노가 가라앉더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P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기는 추억을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매질인 것 같습니다.

오늘 당신의 밤과 음악 사연에 대한 코멘트 남겨놓음

신청한 스트라빈스키 곡이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른바 금융선택법(Financial CHOICE Act)의 하원 통과를 이끌었다. 여기서 "CHOICE"는 "선택"이라는 뜻도 있고 또 "투자자와소비자, 기업가를 위한 희망과 기회 창출(Creating Hope and Opportunity forInvestors, Consumers and Entrepreneurs)"의 줄임말도 되었다. 이 법안은 도드-프랭크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계획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순수한 자유주의 그 자체를 표방하고 있었다. 금융선택법은 자기자본거래를 금지하는 볼커룰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고 또 스트레스 테스트를 매년이 아닌 2년마다 진행하는 행사로 바꾸려고 했다. 또한 파산한 은행은 그냥 파산 법정에 내세우면 된다는 주장과 함께 도드-프랭크법의 주요 내용 중 하나인 강제청산법안도 폐지해버린다.  놀랍게도 선택의 자유를 내세운 이 금융선택법은 심지어 엘리자베스 워런의 소비자금융보호국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 P815

금융선택법이제시한 건 이른바 테일러 준칙(Taylor rule)으로, 이 준칙을 만든 건 벤 버냉키의 오랜 학문적 경쟁자이자 우파가 선호하는 스탠퍼드대학교의 존 B. 테일러(John B. Taylor) 교수였다. 테일러 준칙에 따른 기준금리 결정은 다음의 4개 요소의 합으로 결정된다.

- 이전 4분기 이상 기간 동안의 인플레이션율
- 실질 GDP와 추정 잠재 GDP 간 차이의 1/2
- 이전 4분기 이상 기간 동안의 인플레이션율과 2퍼센트 간 차이의 1/2
- 추정 실질금리 2퍼센트

인플레이션율이 높고 실업률이 낮으면 금리를 올리고 그 반대면 금리를내리는 것이 일반적인 공식이다. 
 테일러 교수와 그의 제자들은 앨런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으로 있던 2000년대 초에 금리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만일 테일러 준칙을 적용했다면 금리는크게 떨어졌어야 했다. 2008년 가을에 테일러 준칙을 엄격하게 적용했다면 특히 저축성 예금에 대한 세금을 포함해 금리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벤 버냉키는 양적완화 조치를 시작했던 것이다.  - P817

2007년 이후 벌어진 금융위기의 규모는 민주적 정치와 자본주의식 통치에 대한 요구 사이의 관계를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긴장된 관계로 몰아넣는다. 



무엇보다도 이런 긴장상태는 일반 대중의 정치참여나 혹은 선출된 지도자들의 절대적인 정책 통제 안에서 일어나는 위기가 아니라 역사적으로그런 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해온 정당들의 위기 안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긴장상태는 정당들의 계획과 일관성,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역량을 시험하며 동시에 정말로 필요한 존재들인가도 확인해준다. 여러 국가들, 특히 그리스와 프랑스에서는 온건한 성향의 좌파 정당들이 이런 시험을 통해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P850

우리가 탈민주주의 혹은 심지어 탈정치 시대라고까지 부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한때 유행한 관점으로 살펴보면 이렇게 정치적발전에 대해 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자못 놀라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 P851

정치적 선택과 이념, 매개체 등은 대단히 결정적인 결과들과함께 이런 설명 전반에 자리하고 있다. 단지 복잡한 요소로서가 아니라 금,
응공학이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작동장치", 그리고 기구의 오작동으로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변수와 우발적 사태들에 대한 실질적인 반응으로서말이다. 성공과 실패, 안정과 위기 등은 실제로 모두 다 어떤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의해 좌우된다.  - P851

우리가 1914년에 대해 갖는 의문과 2008년에 대해 갖는 의문 사이에는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이 있다.24 대안정기는 어쩌다 막을 내렸을까? 이해도 통제도 되지 않는 엄청난 위험들은 어떻게 축적되었을까? 갑작스러운혼란을 통해 세계질서의 대변동이 일어나게 된 과정은? 거대한 기술 시스템이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들은 어떻게 서로 결합하여 재앙을 불러왔는가?  - P8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행감독업무는 영란은행이 통합해서 맡았다. 새롭게 등장한 거시건전성이라는 개념은 규제와 경제정책의 기능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해주지 못했다. 2013년 은행개혁법(Banking Reform Act 2013)은 투자은행과 소매은행업 사이 업무 영역을명확히 분리했고 투자은행들이 소매은행업을 하지 못하도록 링펜싱 (ring-fencing)*을 단행했다. 금융서비스는 더 이상 영국의 놀라운 성장의 밑바탕이 되지 못했다. - P749

한 전문가는 이렇게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 세상을 맨해튼의 부동산 시장이 더 넓게 확대된 것과 비슷하게 보고 있다. 바로 굶주린야수가 나약한 희생자를 잡아먹는 비정한 승부의 세계 말이다. " - P8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으로 2009년 초 연준은 긴급 유동성 공급에서 훗날 QE1으로 알려지는 방식으로 지원형태를 바꾸게 된다. 

QE1은 제1차 양적완화(QuantitativeEasing)라고도 부르며 연준이 대차대조표상에서 직접 대량의 MBS를 사들여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법이다. 중앙은행이 이렇게 정부 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통화신용정책의 전통적인 메커니즘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규모로 다양한 자산을 매입한 것이다. 연준은 장기 자산을 사들이는 대신 그 즉시 유동성 자금을 시장에 공급한 것이다.
양적완화 혹은 QE는 일반적으로 미국식 위기 대응 정책의 전형이며 연준의 과감성을 상징한다.  - P309

연준의 조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주역들, 즉 각국 중앙은행과 다국적 대형 은행 모두에 민간 부문의 자금조달이 예상치 못하게 어려워져도 달러를 무제한으로 공급함으로써 각 은행의 대차대조표상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최후의 해결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안심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글로벌 최종대부자의 역할이었다. - P315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만 유별나게 동유럽이나 러시아처럼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 건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전 세계와하나로 엮여 있었기 때문이다.  - P370

아시아의 그 어떤 지역이나 국가도 2008년의 한국처럼 수출 불황과 환율 폭락, 그리고 유동성 위기가 종합적으로 덮친 곳은 없었다. 그렇지만아시아 지역 전체로 봤을 때 그 영향은 대단히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 P371

스트레스 테스트는 미국 금융의 전망에 대한 해석을 민간인이나 시장이 아닌 정부가 선택한 감독관들이 강제로 실시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또한 스트레스 테스트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사업의 영역에 대해 정부의공식적 승인이 필요하도록 만들었다.  - P428

적절한 대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어쨌든 스트레스 테스트와 도드-프랭크법, 자본재구성 계획과 TARP로 이어지는 미국 정부의 정책들을 통해 미국의 은행시스템은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으며 더 과격하고 급진적인 방식들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은행들은 여전히 대마불사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 P449

반면에 치명상을 입은 유럽 은행시스템은 포괄적 자본재구성이 부족해금융위기에서 근본적 전환점 중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 P450

다시 말해 미연준은 "세계 경제의 불안"을 키운 적이 전혀 없으며 실제로는 글로벌 현금공급원 역할을 했다. 유로존이 점차 위기에 빠져들면서 유럽 은행들은 2010년 5월에 맺은 현상유지 협정을 파기하고 말았다. 은행들은 유럽 밖으로 돈을 옮기고 미국 사업을 축소하고 대차대조표에서 차입을줄여 건전성을 강화하고 막대한 액수의 현금을 축적했다. 제2차 양적완화조치 덕분에 유럽 은행들은 유럽중앙은행이 아닌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최후의 보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연준과 함께 유동성을 확보한 것이다. 경기확장을 위한 처방은 아니었지만 유로존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전무한 상황에서 최소한 안정을 위한 보완책 마련되었다. - P520

유럽의 신뢰도가 점점 추락하면서 "재설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IMF 내부에서는 이제 "만기연장이 곧 경기회복"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는 일 같은건 그만두자는 새로운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 P535

2011년 5월 IMF는 더 이상 "만기연장이 곧 경기회복" 전략이 아닌 유로존의 진짜 해결책에 대한 기본 원칙을 분명하게 정했고 도미니크 스트로스칸도 실제로 실행에 옮기려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 IMF가 유로존을 경제위기에서 구해줄 것이라는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IMF 총재 없이 남겨졌다.  - P536

그렇지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신용등급 평가기관들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었다. 평가기관들이 수천억 달러 규모의 서브프라임 MBS에 내린 AAA등급은 2008년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요인 중 하나였다. 유로존 위기의 속도를 좌우한 것도 이들의 연속적인 등급조정이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 예산안에 대해서조차 올바른 결론을 내릴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 P550

돌이켜보면 마리오 드라기가 "어떤 노력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을 때가 유로존 위기의 전환점이었다. 그의 발언 이후 시장은 급속도로안정되었고 취약한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 대부분은 시장금리가 정상적인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로존 붕괴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 P611

그렇지만 메르켈 총리와 쇼이블레 장관이 마리오 드라기를 지지하고 나서면서 결국 주사위는 던져졌다. 유럽중앙은행은 단기국채매입프로그램(Outright Monetary Transactions, OMT)라는 이름으로 최종대부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그렇지만 대단히 엄격한 조건부 합의였다.  - P615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고 12개월이 지난 2013년 11월 IMF 행사에 참석한 래리 서머스는 이렇게 경고했다. "이번 위기를 통해 내가 배운 교훈과 내가 생각할 때 전 세계가 그만 잊어버렸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중요한 교훈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확실히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하는 래리 서머스도 훗날 자신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게 들어맞을지 당시로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 P622

 불평등은 "총체적"인 문제이며 "시스템"이 보통의 미국 노동자 계층에 불리하게 조작되어 있다는 가정은 피해망상이 아닌 현실적 결론이라는 사실 또한 알았다.

 2011년 월스트리트 점령 사태 때 "시스템은 고장 난 것이 아니라조작된 것이다"라는 구호가 나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 P639

"연준이라는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을 키워나간다"라는 처방은 해외의 중앙은행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었다. 제3차 양적완화 조치를 중단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신흥시장국가들에 대한 압력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 P6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