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했던 첫 만남 이후
아이가 그와 다시 마주치게 된 것은
그 때로부터 딱 일주일 후였다.
아이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시설로 향하던 중에
또 다시 공원에서 그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아이는 어딘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희한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가 왠지 모르게 두렵게 느껴져 일부러 걸음을 재촉했다.
그 때, 공원 벤치에 앉아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남자가
아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거기 너, 잠깐 이리로 좀 와보련?”
그의 말에 깜짝 놀란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약간 겁먹은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 마주쳤을 때와는 달리 곧바로 도망가지는 않았다.
아마도 남자의 말투와 눈빛에서 아주 약간의 악의조차도 없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탓인 듯 했다.
그래도 아직 아이가 자신을 경계하며 다가오지 않자,
남자는 미소 지으며 이리 오라고 계속해서 손짓했다.
“왜요?”
아이가 퉁명스레 물었다.
“너한테 할 말이 있단다.”
겉보기와는 다른, 상냥하면서도 어딘지 위엄이 느껴지는,
맑고 우렁찬 목소리였다.
순간 아이는 흠칫 놀라면서도,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마치 그의 목소리가 가진 이상한 힘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할 말이 뭐에요? 저 바빠서 얼른 가 봐야 해요.”
아이의 그 말에, 남자는 허허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허허허, 그러니. 그럼 짧게 말하마. 그 전에, 네 이름은 뭐니?”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인수......,박인수에요.”
“그래, 인수라...... 이름 좋구나. 내가 널 부른 이유는-,”
남자가 잠시 뜸을 들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너는 나와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란다.”
너무도 황당한, 뜻밖의 말에 아이는 당황했다.
“같은 기운이라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이의 물음에, 남자는 차분히 대답했다.
“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끔, 아니 거의 매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다고 느껴본 적 없니? 아니면
아예 그러기 싫거나.”
남자의 말에, 아이는 정곡을 찔린 듯 화들짝 놀랐다.
“예? 그걸 아저씨가 어떻게 알았어요?”
“말했잖니. 너와 나는 같은 기운을 갖고 있다고.
즉, 우리는 동류라는 거지.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다.”
남자의 그 말에, 아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듯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무슨 헛소리에요. 그런 얘기는 나 같은 어린애도 안 믿어요.”
아이의 말에, 남자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빙긋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허허,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눈으로 판단해 보건대, 네 부모님 중 한 쪽은
이 세상 사람이지만, 다른 한 쪽은 아니란다.”
아이가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지자,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말을 바꾸었다.
“으음, 으음......, 으음, 아니, 아니야. 네 부모님은 두 분 다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거야.
암, 그렇고말고. 그 분들은 내가 살던 세상의 존재들 이란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틀림없어.”
남자의 해괴한 말에, 아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일었다.
약간 정신 나간 것 같은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어딘지 제법 그럴싸하게 느껴져서.
“아저씨가 살던 세상이요? 그럼 아저씨 대체 어디서 온 거에요?”
아이는 머리로는 남자의 말을 의심스럽게 여겼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마음에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끌림을 느꼈다.
“나는 말이지, 지구로부터 108만 광년 떨어진 ‘이라엔쿠스’ 별로부터 왔단다.
이곳은 아주 멋진 별이란다. 지구 사람들 눈으로 본다면 극락, 천국, 낙원 같은 곳이지.
지구처럼 가난한자, 굶주리는 자, 남을 괴롭히는 자들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전쟁도,
슬픔도, 고통도 없고, 돈 같은 것도 없단다. 모두 다 자연과 함께 어울려서 살고,
그러니 더 가진 자, 더 못 가진 자 같은 것도 없지.”
남자는 꼭 무슨 삼류 SF소설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를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청산유수처럼
쏟아내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듣기에도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라엔쿠스라는
이상한 이름의 별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아이를 바라보며,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여 말했다.
“아마 네 부모님께서도 나와 같은 별 출신일 거야. 너 아기 때 보육시설 앞에 버려져있었지?
그건 네 부모님께서 널 버린 게 아니라, 일부러 그러신 거야. 네가 장차 자라서 지구인들을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하게 성장하도록 이끌라는 뜻에서. 하지만, 이것은 네가 원해서
이렇게 된 일이기도 해. 사실 우리별은 지구와 같은 우주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상위차원의 우주에 속한 별이란다. 그러니, 이곳 사람들은
여기 지구사람들처럼 물리적인 몸,
아니 물질적 육체, 아니아니, 이렇게 말하면 네가 어렵게 느끼겠구나. 아, 이걸 어떻게
말해야하지......아, 그래. 이렇게 손에 잡히는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단다.
일종의 몸다라카이나 상태지. 아니, 이런, 나도 모르게 우리 고향 말이 튀어나왔네.
지구 말로 하면 ‘영혼’개념과 비슷하단다. 너도 그건 알겠지? 그래서, 정리하자면
우리 별 사람들은 영혼상태로 살다가 계속되는 평화로운 삶에 질리면
자신의 영적 성숙을 위해 다른 세계, 다른 우주로 여행을 떠난단다.
물론, 이 여행은 강제되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의해 하는 것이란다.
즉, 자신이 원하기에 시작하는 것이지.
이 여행은 좀 특별한 의미로, 지구 사람들의 여행과는 좀 다르단다. 우리 별 사람들이
여행이라 부르는 이것은-, 물질계에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한참동안을 가만히 남자가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가 남자의 말이 잘
이해되지가 않는 듯, 따분하다는 듯 하품을 했다.
“죄송해요, 아저씨. 그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외계인이라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요.
물질계는 또 뭐구요. 호기심이 일긴 하지만 무슨 말인지 하-나두 모르겠어요.
난 이제 가볼래요. 늦게 들어가면 선생님들이 화내요.”
아이의 짜증스런 말투에 남자는 약간 당황한 듯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허허, 이런, 아직 네겐 좀 어려운 이야길 했나 보구나. 그럼 가 보거라. 하지만,
내 말은 전부 사실이란다. 그러니 네가 어디서 왔는지, 네가 이리로 여행 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해 보거라. 당장은 아니더라도 네가 살아가다 보면 그 이유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게 될 거다.”
남자는 뜻 모를 말을 하고는,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했다.
“네 스스로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손등 위로, 어디선가 날아온 참새가 앉았다.
남자는 자신의 손등에 앉은 참새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는, 잠시 참새와 무슨 교류라도
하는 듯 가만히 눈을 감고 참새를 쓰다듬다가 잠시 뒤 녀석을 날려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뒤에 서 있던 나무를 쓰다듬으며 무어라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런 그의 모습에 잠시 벙 찐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대로 공원을 지나 시설로 걸어갔다.
‘정말, 이상한 아저씨야.’
아이가 생각하기에 그 남자는 정신이 약간 맛이 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희한하게 그다지 싫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겉보기와 달리 목소리가 좋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럴싸하게 동화 같은 이야기를 잘 지어내서 그런 걸까.
아이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시설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담당 선생님께 잔소리를 들었다.
정해진 귀가 시간 보다 1시간이나 늦게 들어왔다며.
아이는 무성의하게 죄송합니다, 한 마디를 내뱉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자마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방 안의 아이들은 숨죽인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방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또, 시설 상급생들이 하급생들을 갈구는 것 같았다.
그들은 늦게 들어온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이에게 단 한 마디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늘 그랬듯이 무자비한 구타를 가했다.
아이의 작은 몸 위로 쏟아지는 무수한 발길질과 주먹질,
그리고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들.
하지만 아이의 몸과 정신은 이런 일에 이미
신물 날 만큼 적응되어 있었다.
아프면 아픈 거고, 기분이 나쁘면 나쁜 것.
그게 전부였다.
어차피 조금만 참으면 때리다 지쳐서
그만두겠지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까 전에 공원에서 만났던 그 이상한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원래 이 세상보다 더 좋은 곳에서 살던
자신이 대체 무엇이 아쉬워서, 아니면 무엇을 하기 위해
이런 세상으로 온 걸까 싶은.
아이는 그 남자의 말이 전부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대강의 큰 줄거리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은 어린 아이가 듣기에도
전부 정신 나간 헛소리처럼 들렸지만,
정말로 그의 말이 맞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다 스스로가 원해서 이리 된 것이니,
너무 괴롭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차례의 구타가 끝난 후, 상급생들은 방을 나가며 하급생들을 을러대었다.
“너네 앞으로 똑바로 해라. 1시간이나 저 혼자 늦게 들어오는 놈이 있는데
니들끼리만 슥 들어오고 말야, 아무리 X같은 놈이라도 다 같은 집에서 사는 한 식구야.
앞으로 서로 잘 챙겨라, 알았냐?”
상급생들이 나가자, 방에 있던 아이들은 곧바로 굳어있던 행동과 표정이 풀어졌다.
“아, X발 XX들, 또 XX이야. 지들은 우리만할 때 몇 시간이나 맨날 늦게 오고선.”
“그러게, 누가 들으면 지들만 X나 의리판줄 알겠네.”
“아 몰라, 다 그게 저XX 때문 아냐, 박인수 저 병XXX.”
“야, 박인수 너 하나 땜에 우리가 다 단체로 욕먹어야겠냐? 좀 잘하자, 좀.”
“야, 아 진짜. 오늘 나 저 XX 한번 손봐줘야겠어. 더 맞아야 앞으로 정신차리지.”
“야아, 아 진짜 너 왜 그러냐, 이미 형들이 XX하고 나갔잖아, 참아라, 참아 인수 저 새X
원래 이상한 애잖아.”
“아, 놔보라고 이 XXXX야.”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는, 한숨을 쉬며 말없이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자마자 때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시설의 선생님 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아이를 보자마자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
“너, C생활관 인수구나. 조금 있음 저녁식사 시간인데, 어딜 가니? 그것도
너 혼자서.”
아이는 그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지금 오줌이 좀 급해서요.”
“아, 그래서 혼자 급하게 나왔구나. 그럼 나랑 같이 가자. 너 일 보는 동안
내가 밖에서 기다릴게.”
“고맙습니다.”
아이는 화장실로 급하게 후다닥 달려갔다.
하지만 시간이 꽤나 흘렀음에도,
아이는 좀체 화장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선생님이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화장실로 달려 들어갔다.
소변기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대변기 칸막이 안에도 아무도 없었다.
다만, 화장실 창문이 열려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1층이라 아이가 그리 어렵지 않게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것 같았다.
보육원생의 돌발행동으로, 시설엔 비상이 걸렸고,
보육교사는 당직 몇 명만 시설에 남아 아이들을 관리하고,
나머지 교사 등 직원들은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
시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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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렸다.
아이는 달렸다.
싸늘한 공기로 가득 찬
세상 속을.
어느새 해는 저물고
어둠이 짙게 깔렸다.
아이는 자신이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지도 모르는 채,
그저 달리기만 했다.
이제는 다 짜증이 났다.
이제는 다 꼴 보기 싫었다.
이제는 다 지겨웠다.
규칙을 들먹이며 구타를 일삼는 상급생도,
아이를 따돌리는 동기 아이들도,
아이를 요주의 인물로 정해놓고 매번 감시만 하는
선생님들도.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등에 날개라도 갑자기 생겨나서
저 높은 하늘로 날아올라
이 세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이는 한참을 달리다가, 숨이 차서 공원 언저리에서 달리기를 멈추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비단 그것은 숨이 차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숨을 헐떡헐떡 몰아쉬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 동안 감정을 죽이고 지냈는데,
이번 일로 그동안 쌓여왔던 서러움이 폭발한 듯 했다.
아이는 한참을 울다가, 갑자기 자신의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검은 형체에
소스라치게 놀라,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어찌나 놀랐는지, 소리가 공원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자 검은 형체는 적잖이 당황한 듯 ‘쉬잇’ 하며
입가에 손가락을 올려 아이를 진정시켰다.
다시 아이가 놀란 마음을 추스린 후에,
자세히 보니 아까 하교할 때 만났던 그 이상한 남자였다.
“이봐, 이 오밤중에 너, 왜 예까지 와서 우는 거니 ?
음......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구나. 잠깐 휴식이 좀 필요하겠어.
날 따라와라.”
그 남자는 내 손목을 끌어당겨 어딘가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마치 축지법을 쓰는 것 같았다.
아이는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그에게 거의 끌려 다니다 시피 하다가,
그가 걸음을
멈추자 그제야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맙소사.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깊은 산 중턱에 올라와 있었다.
아이는 동네에 이런 큰 산이 있었나 싶어 매우 놀란 얼굴을 하곤,
남자에게 물었다.
“아, 아저씨, 여긴 , 여긴 어디에요?”
남자는 다소 당황한 듯한 아이를 보며 크게 허허허 웃더니,
“어디긴 어디야, 공원 뒷산이지.”
하고 대답했다.
“네에? 공원 뒷산이라뇨? 여기 공원에는 산은커녕 주변에 작은 언덕도 없는데.”
아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따지듯 묻자, 남자는 가만히 수염을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허허허허, 그렇지. 그러고 보니 공원 주변엔 이런 곳이 없었지.
하지만, 그건 지구인들이 사는 공간에서의 이야기고-”
남자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야, 하늘을 한번 바라보렴.”
아이는 남자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의 빛깔은 아이가 익히 알던 새카만 색이 아니었다.
수십, 아니 수백, 수천가지의 아름다운 색깔들이 눈부시게 빛나며,
마치 유동하는 액체처럼 흘러내리고, 그 아름다운 빛의 물결들이
바로 눈앞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지만, 너무도 아름다웠다.
“저, 저기 아저씨...... 하늘이......색이......!”
남자는 예의 그 푸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놀란 아이의 어깨에 손을 툭 얹어 그를 진정시키곤,
이렇게 말했다.
“어때, 아름답지? 이 멋진 풍경을 본 사람은 지구에서 너밖에 없을 거야. 아마도.”
남자는 잠시 눈을 감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놀라지 마라. 이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던 공원 한가운데란다.
작은 분수대가 중앙에 서있고, 주변엔 소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는 곳.
너도 잘 알거다.”
아이가 놀라서 무어라고 말하려는 찰나, 남자는 조용히 손가락으로 쉬잇 하며
아이의 입을 막았다.
“여기는, 바로 그 공원 한가운데의 다른 모습이란다.
다시 말해, 이곳은
지구에 무수히 중첩되어
존재하는 다차원들의 공간들 중 하나란다. 그래서 산이 없는 곳에 산이 있고, 밤하늘이
저렇게 화려하게 빛나는게지.”
하지만 아이는 남자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죄송한데요, 아저씨. 그......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치만, 멋지긴 하네요.”
그 말에, 남자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허, 그래 뭐, 이해 못하더라도 괜찮다. 어차피 네가 좀더 크면
내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 올 테니. 자, 그럼 이제 우리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볼까.”
남자가 아이의 손목을 꽉 붙잡더니, 발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강한 바람 같은 것이 아이의 얼굴을 때리고 지나가는 가 싶더니,
다음 순간 강렬한 빛이 확 눈으로 들어오면서,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어지러운 눈을 비비며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카만 빛이었다.
그리고 주변 풍경도 원래 아이가 익히 알던 공원의 한가운데였다.
“어허, 이런. 괜찮니?”
남자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아이에게 손을 불쑥 내밀었다.
아이는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네. 괜찮아요.”
남자는 아이의 몸에 묻은 흙을 털어준 뒤, 자신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었다. 낡은 종이쪽지 같은 것이었는데,
종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감촉 또한 희한했다.
“언제든, 네가 어디서 왔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질 때, 이것을 펼쳐보렴.”
아이가 잠시 망설이다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게......, 뭔데요?”
그 때였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떼거지로 우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아이를 찾으러 헤매던 시설의 선생님들과 직원들이었다.
“인수야! 박인수 !”
“너 거기서 뭐하니? ”
“어서 일로 와 ! 너 찾느라 진짜......!”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어느새 인수를 에워쌌다.
그러다가, 그들과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씩 웃어 보이더니, 뒤돌아서 성큼성큼 걷는가 싶더니,
어느새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장면을 목격한 그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그들은 하나같이 인수에게 연달아
‘괜찮니?’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던 중, 직원들 중 하나가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선생님들. 방금 그 남자...... 누군지 생각났어요.”
그의 말에, 선생님들과 다른 직원들이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대체 저 수상한 사람, 누구에요?”
“아는 사람이에요?”
그들의 물음에, 직원은 안경을 벗더니 이마의 땀을 훔치고는,
입을 열었다.
“ 저 남자, 이 동네 주변에서 꽤나 유명한 노숙자에요.
언젠가부터 갑자기 여기 나타나서는, 하루 종일 공원 벤치에 앉아
나무랑 이야기하질 않나, 새들을 자기 몸 위에 앉히곤 노래를 부르지 않나,
한 번은 그냥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는데 나비며, 새들이며, 길고양이들이
그의 주변을 에워싼 적도 있었어요. 물론 이건 부풀려진 소문이 아니라-,”
직원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여 말했다.
“제가 직접 그걸 봤어요. 그리고, 이 동네에서 그를 사람들은 이렇게 불러요.”
“ ‘나무 아저씨’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