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그거 아니? 본디 사람이란 존재는 말이지-.

 

이 세상 만물과 소통할 수 있단다.”

 

어딘지 수상쩍어 보이는, 남루한 옷차림의 사내가 아이를 보며 씩 웃어보였다,

 

바보 같지만, 왠지 모르게 그 모습에서 티 없이 맑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아저씨, 만물이 뭐에요?”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아무래도 아직 어려서 그 말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만물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란다. 사람, 짐승, 풀과 꽃, 나무들 그리고-”

 

남자가 잠시 뜸을 들이다 덧붙여 말했다.

 

, , , 바람 등등도 포함해서 말이지.”

 

그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의 그 천진난만한 미소를 띤 채로.

 

아이는 그런 남자의 말에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에이, 아저씨도 참, 그게 무슨 헛소리에요. 그럼 저기 강아지랑 고양이, 새들하고도

 

말이 통하게요?”

 

아이의 말에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허허 웃으며 답했다.

 

그으럼. 동물은 물론이고 저기 저 나무와 꽃들, 바람과 하늘, 그리고 저기 저 산 속에 흐르는

 

시냇물하고도 얘기할 수 있단다.”

 

다소 초현실적으로 들리는 그의 말에, 아이는 샐쭉한 표정을 하곤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아저씨, 지금 내가 어린애라고 놀리시는 거죠? 그죠?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자신을 빤히 노려보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남자는 크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아니란다. 이 아저씨는 네게 거짓말 같은 거 안 한단다.

 

, 굳이 그럴 마음도 없고. 그래, 어디 보자......내 말을 못 믿겠다 이거지?

 

그럼 내가 시범을 보여줄게. 자아......일단 저기 저 나무 위에 앉아있는 참새에게

 

이리 오라고 신호를 보내볼게.

 

자아, 잘 봐라......”

 

-----------------------------------------------------------------------------

 

빠빠빠빠빰 !

 

빠빠빠빠빠빰 !

 

빠빠빠빠빠바밤!

 

빠빠빠빠, 굿모닝 !

 

 

아침 6.

 

 

휴대폰 알람이 시끄럽게 울렸다.

 

, 그 꿈이었다.

 

어린 시절에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그 수상한 아저씨가 나오는.

 

그는 지나가는 눈길로 한번 슥 훑어봐도

 

범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별로 좋지 않은 의미로.

 

그는 마치 노숙자처럼 보이는 남루한 차림새에,

 

최소 10년이 넘게 한 번도 자른 적 없는 듯한

 

긴 머리칼에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긴 수염까지 달고 있었다.

 

만약 사람들이 그를 길거리에서 보게 된다면,

 

저 사람은 아마도 광인(狂人)아니면 기인(奇人)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노숙자일 거라고,

 

저마다 한 마디씩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수군거리기 딱 좋은 그런 타입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자신을 보고 뭐라고 떠들건 개의치 않았다.

 

아니,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동물들과, 식물들을 포함한, 자연 그 자체였다.

 

물론,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고 하기는 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는 사람보다는 동물을 좋아했고, 동물보다는 식물을 좋아했다.

 

그는 항상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이 세상 만물이 다 좋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식물이 좋더라.”

 

나는 지금도 그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 되지만, 그의 표현을 빌려서

 

써보자면- 식물은 배고프다고 칭얼대지도 않고, 털도 안 날리고,

 

똥오줌도 안 싸기 때문이라나. 또한,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식물들은

 

그 하나하나가 지구 그 자체와도 같다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그 시절로부터 25년이나 지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는 쭉 외톨이였던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 그렇다고는 해도 그는 정신이 약간 맛이 간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매일 외톨이로

 

심심하게 지내는 것 보다는

 

그와 함께 있는 편이 훨씬 더 나았다.

 

그만큼 나는 외로웠고,

 

이 세상에 기댈 곳이, 기댈 사람이 마땅히 없었기에

 

그의 이상한 매력에 빠져 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돌이켜보면, 또래 아이들이 내게 다가오지 않고 나를 슬슬 피했던 이유는

 

내가 보육시설에 사는 고아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무언가 자신들과는 다른, 아니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로 보여서 그랬을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하지만, 그는 나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는 나와 같다며 내게 먼저 다가와 주었었다.

 

만약 그 때, 내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면, 과연 또래 아이들은 내게 다가와서

 

친구가 되어주었을까?

 

글쎄, 그것도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나는  한 동안 아직 잠이 덜 깨어 흐릿한 눈을 비비다가

 

졸음을 쫓기 위해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대강 이를 닦은 뒤, 샤워를 했다.

 

현재 시간은 640분이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이리도 시간이

 

빨리 갈 줄이야.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나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왜냐하면, 현재 내 직업은 소설가였으므로.

 

나에게 천직과도 같은 이 직업을 갖기 위해

 

지난 세월 동안 꽤나 고생을 많이 했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부모 얼굴조차도 모르는 고아로 태어나

 

보육시설에서 자라왔고, 상황이 그렇다보니 제대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보육시설에서는 같이 지내는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급우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따돌림 당하는 이유는, 소름끼칠 만큼이나 간단했다.

 

넌 다른 애들과 다르다

 

이 짧은 한 마디가 바로 그 이유였다.

 

어이없게도.

 

그래서 따돌림에 질릴 대로 질린 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대체 뭐가 내가 너희와 다르냐고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잘 모르겠지만, 그냥 넌 좀 느낌이 다른 애들하고 달라.

 

그래서 기분 나빠.’

 

 

그 말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리고 더욱 억울했던 것은, 남들이 내게서 보는 그 기분 나쁜 느낌이

 

대관절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스스로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한 채 철저한 아웃사이더로 지내다가

 

초등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즈음,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바로 그 수상한 남자를.

 

믿기 어렵겠지만,

 

그는 하루 종일 벤치에 앉아 나무와 대화를 하거나, 참새나 비둘기 따위의 새들을 곁에 두고

 

그들을 쓰다듬었으며, 때때로 길고양이나 버려진 개들과도 어울렸다.

 

그리고 아주 가끔 곤충들도 무슨 이유에선지 그의 곁에 머물렀다.

 

정말 신기했던 사실은, 그가 따로 먹이 같은 걸로 동물이나 곤충들을 유혹하는 게 아니라,

 

그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어느새 그것들이 슬금슬금 곁에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그는 꼭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우리 동네에서 목격되기 시작했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우리 동네에 나타나기 이전에

 

그를 본 적이 있다고 얘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약간 몽롱한 상태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 보다 보니,

 

문득 이 이야기를 소설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펜을 들고 노트에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어린 시절의 내가 만났던 그 때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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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항상 외톨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늘 혼자였다.

 

자신을 낳은, 아니 이 세상에 던져놓은

 

부모의 얼굴조차도 몰랐다.

 

아이가 어느 정도 분별력이 생길 때 즈음에

 

보육 시설의 원장에게 들은 바로는,

 

누군가가 아이를 이 시설 문 앞에 놓아두고 갔다고 한다.

 

아이는 처음에 자신에게 부모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만, 시설에 딸려있던 사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로 입학했을 때,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왜냐면, 학교 입학식에 자신과 같은 시설 출신 아이들만 빼놓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부모가 함께 나와 같이 사진을 찍고, 같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식이 끝난 뒤에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외식을 하러 갔기 때문에.

 

이 일이 있기 전에는 그냥 내게는 부모가 없으니까 없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이 일을 겪고부터는 그렇지가 않게 되었다.

 

이제 아이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아니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감정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달콤한 맛은 아니었다.

 

쓰디쓴, 아리디 아린, 왠지 모를 슬픔과 그리움이

 

한데 뒤섞여 엉킨 듯한,

 

그런 아픈 맛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감정을 느낀 것은 비단 아이 뿐 만이 아니라,

 

같은 시설에서 지내는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입학식 이후로 생애 처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그들은

 

학교에서도 자기들끼리만 뭉쳐 다녔고, 그런 이들을

 

같은 반 급우들이나 선생들이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환경에서 사는, 급우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을 지도

 

모르나, 그렇게 하기엔 자신들과 급우들은 너무도 달랐다는 걸 진즉 알아차렸기

 

때문이리라. 아마 그들은 양친이 다 있는 급우들을 보며, 저들을 자신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존재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설 아이들과 보통의 아이들 사이엔 늘 어떤 긴장감이 흘렀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듯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된 원인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나 증오라기 보단

 

오히려 서로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으리라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설 아이들 중에선 보통 아이들과도 위화감 없이 잘 어울려 지내는

 

녀석들이 몇 명 있었으나, 이들을 고깝게 여기던

 

 시설 아이들의 집단에게 그 녀석들이 린치를 당한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시설 아이들과 보통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터진 후부터 학교에선 시설아이들을 특별관리 대상으로 삼고

 

감시하기 시작했으며, 학교 교직원들의 회의에서는 시설 아이들만을 따로 모아 반을 만들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어른들의 생각에는 모든 아이들을 보호하고 쓸 데 없는 충돌을 막기 위해

 

나름 머리를 굴린 것이겠지만, 그런 소문이 퍼지고 나서 서로간의 분위기는

 

더욱 더 악화되었다.

 

그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아이는 매우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는 그 어떤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아이는 시설 아이들에게나 보통 아이들에게나

 

따돌림을 당했다.

 

네가 뭐 그리 잘났기에 아무하고도 어울려 놀지 않는 거냐면서.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따돌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냈다.

 

굳이 저런 모자란 녀석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의 생각이 이렇다 보니

 

괴롭힘 당하는 것도 어느새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느껴졌고,

 

무뎌진 감각은 아픔, 미움, 분노, 슬픔조차도 다 잊게 만들었다.

 

다만, 그런 것들이 이젠 다 귀찮고 지겨웠다.

 

신물이 날 정도로.

 

그래서 아이는 한 번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대체 내게 왜 이러냐고, 난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괴롭히냐고.

 

아이의 그런 질문에, 되돌아온 그들의 답은 이랬다.

 

 

'잘 모르겠지만, 그냥 넌 좀 느낌이 다른 애들하고 달라.

 

그래서 기분 나빠.’ 

 

 

맞아, 넌 정말 우리들과 너무 달라.'

 

 

그리고 넌 그 어느 편에도 속해 있지 않잖아.’

 

 

 

 

 

 

 

 

그 말을 듣자, 아이는 억울했다.

 

그렇다고 왜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렇게 괴롭고 따분하게 지내던 어느 날,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시설로 돌아가던 중에

 

공원을 지나가다가 아주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이는 처음엔 자신의 눈을 의심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절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기이한 광경의 주인공은 바로, 웬 거지처럼 허름한 옷차림을 한 채로

 

 나무를 쓰다듬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반쯤 정신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그저 공원 화단에 심어놓은 나무를 쓰다듬다가,

 

잠시 멈추고 나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가를 반복했다.

 

그것은 아직 어린 아이가 보아도 충분히 이상하게 보일 만한 장면이었다.

 

그 수상한 남자는 한참 동안이나 그러고 있다가, 아이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하던 일을 멈추고 뒤를 슥 돌아보았다.

 

그러자, 아이와 그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순간 깜짝 놀라 그대로 후다닥 도망쳤다.

 

저 남자가 자신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점점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남자는,

 

이내 뜻 모를 미소를 지은 채로, 다시 나무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봐, 드디어 나와 같은 친구를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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