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보슬비 > James Tissot - Young Woman in a Boat

졸리면 자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그림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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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Quint Buchholz - The Collector of Moments

이 작품도 Quint Buchholz 의 처음 보는 작품이라 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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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The Sound of Silence - Paul Simon & Art Garfunkel

The Sound of Silence - Paul Simon & Art Garfunkel

지난 2000년도에 개봉된 영화 <왓처 The Watcher>라는 작품이 있다. <매트릭스>로 한참 주가를 올린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였는데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LA의 FBI수사관 조엘 캠벨(제임스 스페이더)은 수년동안 연쇄 살인마를 쫓다가 연쇄 살인범이 도리어 자신을 친구로 여기게 되고, 연쇄살인범 데이비드 알렌 그리핀(키아누 리브스)에게 자신의 가까운 친구를 잃는다. 실의에 빠진 조엘은 FBI를 사직하고, 시카고로 떠나 정신상담치료를 받으료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려고 한다. 그러나 조엘이 시카고로 떠난 것을 알게 된 데이비드는 그를 따라 시카고에 와서 다시 연쇄살인을 시작한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조엘을 끌어들이기 위해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살해할 대상의 사진을 공개하고, 조엘로 하여금 자신을 추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12시간 안에 온 시카고를 뒤져야 한다. 그리핀의 표적은 오로지 혼자 사는 여자, TV도 안 보는 여자, 친구도 가족도 없는 여자들이었다. 결코 증거를 남기지 않는 살인, 도시 전체를 불안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그리핀의 완전범죄는 정해진 시간을 향해 쉬지 않고 다가가고... 방법은 오직 하나. 단 한 장의 사진으로 그녀들을 찾아야만 한다. FBI와 경찰, 매스컴의 총동원 속에 시카고는 12시간 동안 사진 속의 여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고, 언제 희생양이 될지도 모르는 여자의 사진은 온통 거리를 뒤덮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관심하여 바로 그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살해 대상임에도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사실 영화 <왓처>는 그다지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내게 이 영화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세상의 익명성(匿名性)'이다. 도시를 만든 인간의 삶이란 우리가 걷다가 무심결에 밟아 죽이게 되는 개미들과 얼마나 비슷한가. 매일 거리에서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이들은 단지 몇 줄의 기사, 몇 초의 뉴스로 소모되고 만다. 오늘 소개하려는 <다시 듣는 이 한 곡의 노래>는 위의 이야기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노래이다. 폴 사이몬과 아트 가펑클에 의해 만들어진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는 50년대 후반 뉴욕 고교 시절에 Tom & Jerry 라는 듀엣으로 음악을 시작한 사이먼&가펑클이 지난 1965년 말 발표하면서 자신들을 일약 대 스타의 반열에 올린 곡이다. 이들이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를 발표한 1965년 무렵의 세계는 흐루시초프 실각하고, 브레즈네프가 등장하고, 미국이 도미니카의 인민봉기를 무력으로 직접 진압하는 등 냉전이 격화되고, 미국의 북폭으로 베트남전이 확대될 무렵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 서방 경제는 호황을 맞이해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도시화는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으로 사람들을 내몰았고, 도시에서 사람들은 누구도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던 1964년의 어느 날 대도시 뉴욕에서 '키티 Kitty 사건'이 일어났다.(정확한 이름과 사건 개요는 자료가 불충분하여 명확치 않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키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여성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에서 강도들에게 장시간 폭행 당하는 끝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뉴욕이라는 도심 한 복판에서 벌건 대낮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목격한 인근 주민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서서 '키티'를 구해주려 하지 않았고 창틈이나 커튼 사이로 밖을 내다보기만 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 바로 밖에서 죽어 가면서 도와 달라는 비명을 수없이 질렀지만 이웃에 살던 수십 명의 사람 중 아무도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옆에서 범죄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병적으로 사람들의 감정이 무디어진 경우를 가리켜 '키티 제노비즈 신드롬'이라 한다.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Paul simon & Art garfunkel)의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는 이런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노래한다. 이 노래는 크게 5개의 단락으로 구분되고 있는데 첫 번째 단락에서는 자신의 오랜 친구인 '어둠darkness'를 찾아 자신에게 나타난 환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 번째 단락에는 의미심장한 구절들이 나오는 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 형식적인 대화, 무심함, 서로의 감동을 나누지 못하는 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 단락으로 돌아가면 현실 세계로 돌아와 결국 자신의 유일한 친구는 '어둠darkness'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매우 우울한 노래이다.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Left its seeds while I was sleeping And the vision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still remains within the sound of silence
잘 있었니, 내 오랜 친구인 어둠아 너와 다시 얘기하려고 왔어 내가 잠든 사이에 어떤 환영이 살며시 다가와 씨를 뿌리고 갔거든 내 머리 속에 심어진 그 환영은 침묵의 소리 속에 아직도 남아 있어

In restless dreams I walked alone Narrow streets of cobblestone Beneath the halo of a street lamp I turned my collar to the cold and damp when my eyes were stabbed by the flash of a neon light that split the night and touched the sound of silence
불안한 꿈속에서 난 홀로 걸었어 자갈이 깔린 좁은 골목길을 말이야 가로등 불빛의 원광(圓光) 아래서 추위와 안개를 막으려 옷깃을 올려 세웠지 그 때 내 눈은 밤을 가르는 네온 불빛에 찌르는 듯 했고 그 불빛은 침묵의 소리를 깨뜨렸어

And in the naked light I saw ten thousand people maybe more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People writing songs that voices never share No one dare disturb the sound of silence
적나라한 불빛 속에서 난 보았어 만 명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을 말이야 그 사람들은 대화가 아닌 말을 지껄이고 귀기울이지 않은 채 흘려듣고 목소리로는 표현할 수 없는 노래를 지어내고 있었어 그리고 아무도 감히 그 침묵의 소리를 깨뜨리지 못했지

"Fools" said I, "You do not know silence like a cancer grows. Hear my words that I might teach you. Take my arms that I might reach you." But my words like silent raindrops fell and echoed in the wells of silence
내가 이렇게 말했어 "바보들, 당신들은 암처럼 퍼져 나가는 침묵이 뭔지 몰라요, 내 말을 들어봐요. 내가 알려줄께요. 내 손을 잡아 봐요. 내가 다가갈께요." 하지만 내 말은 소리없이 내리는 비처럼 침묵의 샘 안에 떨어져 메아리 쳤어

And the people bowed and prayed to the neon god they made And the sign flashed out its warning in the words that it was forming And the sign said "The words of the prophets are written on the subway walls and tenement halls" And whispered in the sounds of silence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네온 신에게 절하고 기도하지 그리고 그 네온이 만들어 낸 문구에 경고의 메시지가 빛났어 이렇게 쓰여 있었지 "예언자의 말씀은 지하철 벽에, 빈민가의 홀에 적혀 있다"고 말이야 그리고 침묵의 소리로 속삭였어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영화 <졸업>에는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를 비롯해서 여러 곡의 사이몬 & 가펑클의 노래들이 쓰였다. 특히, 영화의 첫 부분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혼자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과 끝 부분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방황 끝에 찾게 된 연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가 쓰이고 있다.

<2002/07/10>

 


Simon & Garfun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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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황병기

저는 가끔 근무하는 직장으로부터 차를 몰고 나가 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헌 책방에 들르곤 합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책들은 특별한 경우(출판사가 망했거나, 재고 처분을 위해  새 책을 그냥 출고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가 누군가의 손때 묻은 것들입니다. 가령 얼마 전에 제가 구입한 책은 문화평론가 김창남 선생의 것이었는데 그 책 속지에는 이런 낙서가 있더군요. "김창남과 나는 동갑이다. 그런데 나는 대관절 뭘 하고 있는 거지." 문화와 예술을 주로 다루고 있는 망명지의 성격 탓이 크겠지만, 이곳에는 현재 예술을 배우는 예술학도와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도 몇 분 있습니다. 그러나 연극배우부터 유학생까지 그리고 저처럼 예술에 대한 문외한으로 이제 막 입문과정의 사람들까지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또한 문화와 예술이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 소개하는 글은 우리나라 국악계의 존경받는 스승이자 훌륭한 가야금 연주자인 황병기 선생의 것입니다. 두 달쯤 전에 헌 책방에 갔다가 발견한 책인데 황병기 선생이 그간 써왔던 짤막한 글들을 편집해 출판한 것입니다. 가끔 글과 문장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이 책에 수록된 황병기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현학적이거나 조금도 멋을 부리지 않은 문장이지만 글에서 풍기는 고졸(古拙)한 멋에 취하게 됩니다. 이런 순간은 정말 글이 곧 사람이라는 말이 맞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일전 게시판에 '열 명창에 고수 한 명'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명창(名唱) 열 명 나오긴 쉬워도 훌륭한 고수(鼓手) 한 명 나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어째서 그런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꼭 국악을 전공하는 이가 아니더라도 그 길이 어찌 여러 갈래이겠습니까. 전공자분들은 전공자들대로 감상자들은 감상자들대로 나름의 여운이 남으리라 생각하며 군말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더불어 취해보시길 바랍니다.


고법(鼓法)의 7단계

황병기

얼마전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날에, 학기말 시험 감독을 하고 연구실로 돌아오니, 전주에서 송영주 선생이 곶감 한 접을 갖고 와 기다리고 계셨다. 몇 해 동안이나 뵙지 못했기 때문에 참으로 반가웠다.
점심 대접을 해야 할 텐데….
"선생님, 점심에 설렁탕 어떻겠습니까?"
"그 참 좋지요, 설렁탕!"

신촌역 근처의 '연세 설렁탕집'에 가서 수육 한 접시와 설렁탕을 맛있게 먹고 일어서는데 송선생이 벌써 돈을 꺼내 들고 카운터로 다가간다.
나는 여하한 일이 있어도(송선생이 나보다 먼저 돈을 냈더라도 이를 다시 물려서라도) 내가 꼭 점심 값을 치르겠다는 각오로 송선생 뒤를 바짝 쫓아가면서 허겁지겁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지갑을 집에 두고 나와서 무일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송선생한테 지갑이 없어서 돈을 못 내겠다고 밝히면 변명은커녕 오히려 우스운 꼴만 될 것 같아서, "다음 번엔 꼭 제가 사겠습니다."라고 어설픈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모시고 와 다과를 들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데, 화제는 거개가 판소리와 북에 대한 것이었다.
올해 71세인 송선생은 현재 판소리 북의 대가이지만, 지금까지 무대 출연을 하지 않고 북을 치고 돈을 받지도 않는 순수한 한량이다. 음악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지만 음악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는 철저한 조선조의 선비 정신을 지닌 분이다.
그는 음악을 한다는 것, 특히 북을 치는 것이 그의 인생의 도를 닦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지난 60여 년간 북을 치고 또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북에 정진하는 길에 일곱 가지 단계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첫째 입문, 둘째 초보, 셋째 수련, 넷째 화합, 다섯째 지휘, 여섯째 예술, 일곱째 무아의 단계라는 것이다.
입문에서 수련까지는 북연주자로서 필요한 온갖 기교를 갖추기 위한 단계이며, 화합은 찾아(唱者)와 조화를 이루는 단계, 지휘는 창자를 이끌고 북돋아 주는 단계, 예술은 예술적으로 완성시키는 단계라고 한다. 그런데 연주자로서 최고의 단계를 예술의 단계를 넘어선 '무아의 단계'로 생각하는 점이 재미있다. 송선생의 설명에 의하면, 자기도 무아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이따금 그러한 경지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북을 치고 있노라면 때로 자신이 북을 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무아의 경지에 달할 때가 없지 않은데, 아마도 그것이 연주가로서 최고의 단계가 아니겠느냐고 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절실하게 해야 될 때가 많다. 그러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인생이 살맛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잊고 전신투구를 해야 되기 때문에, 고도의 흥분 상태에서 가장 주관적으로 되어야 할 것 같으면서도 실은 가장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 참 묘한 일이다.
며칠 전에 WBC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 경기의 실황을 TV로 보았다.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이구동성으로 우리나라의 장정구 선수가 잘 싸우기는 하지만 멕시코의 움베르토 곤살레스 선수가 너무나 잘하기 때문에 역부족이라고 하면서, 곤살레스를 칭찬할 때마다 "참으로 냉정하군요"를 연발했다.
4각의 링에서 싸우는 권투 선수처럼 죽음까지 각오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도 드물겠지만,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냉정을 잃지 않고 가장 객관적으로 되어야 한다.
음악은 작곡, 연주, 감상의 세 가지 행위로 이루어지는데, 이중에서 유독 연주는 스포츠와 흡사한 성질을 갖고 있다. 사전에 고도의 육체적인 훈련을 쌓아야 하고, 현장에서 일순도 우물거리거나 뒤로 미루지 못하고 모든 행위를 일회적으로 끝내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이 져야 하는 등.
야사 하이페츠가 연주자는 곡예사와 같은 기교, 투우사와 같은 신경, 그러면서도 술집 마담과 같은 배짱을 지녀야 한다고 한 말은 뼈 있는 농담이라 하겠다.
흔히 좋은 연주를 하려면 가슴에서 우러나는 연주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음악은 결코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형식주의 미학의 교조였던 한슬릭조차도 연주자는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는 격렬한 흥분, 열정적인 열렬함, 활력과 기쁨을 연주에서 발산해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연주자가 진정으로 감정있는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사력을 다해서 싸우는 권투 선수의 경우처럼 냉정해져야 함은 물론이다.
서양의 고전음악에서처럼 작곡과 연주가 엄격히 나누어진 경우에는 연주자에게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임무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작품을 냉정하게 재현하는 것이다. 특히 스트라빈스키 같은 작곡가는 자기의 작품을 완성된 종에 비유하면서, 연주자는 일체의 주관을 버리고 흡사 종지기가 종을 치듯이 자기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연주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서양음악에서 아무리 즉물주의적인 연주법을 강조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참다운 연주가 악보를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즉 연주자는 필연적으로 작품을 자신의 연주 행위에 의하여 재창조함으로써 객관적인 진실과 주관적 진실을 통합시켜야만 한다.
스트라빈스키가 말로는 연주를 종 치듯이 객관적으로 해야 된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실제로 지휘할 때는 오히려 누구보다도 주관적으로 했음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우리의 민속음악은 작품이 악보로 전해 온 것이 아니라 연주자들의 귀에 의하여 전해져 왔다. 즉 작품은 연주자의 귀 속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연주자들은 서양음악에서보다 훨씬 주관적인 연주를 하게 된다.
게다가 판소리의 북 반주처럼 완전히 즉흥 연주를 할 경우에는 더욱 주관적인 연주를 하게 된다. 그러나 연주자의 주관이 극치에 달하여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자신을 벗어나서 새로운 객관성을 얻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음악의 객관성이 철저한 주관성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공자가 인생의 최고 단계라고 설파한"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대로 하여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경지와 상통한다고 하겠다.
완전히 즉흥적이면서 주관적으로 뜨겁게 연주하는 듯이 보이는 판소리의 북 반주는 사실은 철저하게 법도에 맞게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연주라는 무아의 단계에까지 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판소리 북을 유달리 '판소리 고법(鼓法)'이라고 부르면서 법(法)자를 강조하는 것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1990. 1.
<출전/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황병기 지음/ 풀빛/ 1994년 초판 1쇄>

* 저처럼 헌책을 구입해서 읽어 본 경험들은 다들 있을 겁니다. 이웃한 일본만 하더라도 이런 도서 유통 시스템이 매우 효율적으로 구축되어서 책의 수명이 매우 길지만 우리나라 도서 유통 시스템의 난맥상이란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대개의 출판사들이 초판 3~5,000여부를 제작해 대형 서점들이나 대학천이라고 불리는 도서 도매상들을 통해 전국으로 유통됩니다. 제 직업도 직업이려니와 그간 책과 함께 보내며 지켜본 바에 의하면 신간 도서들 중 미디어를 통해 주목받지 못한 대개의 도서들은 서점에서 독자들과 변변히 대면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은 우리나라의 독서 시장 규모가 작은 데다가(한 마디로 책 읽는 독자가 적다는 뜻이죠.), 그 질 자체도 일부 베스트셀러나 가벼운 위안서(慰安書) 중심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한 해 출판되는 도서의 양을 감당할만한 서점 규모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고, 그나마 동네 서점은 참고서 위주의 문방구를 함께 판매하는 소규모 영세업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가까이 할 수 없도록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헌 책방은커녕 서점조차 귀해지고 있습니다. 올 가을엔 책 한 권 구입해 읽어보시길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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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full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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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7-07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건 합성이겠지요? (아닌가?)
근데 가끔이지만 정말 달이 신기할 정도로 크게 보이는 날이 있어요. 내가 진짜 달을 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요.. 공기가 맑은 어딘가에 가면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달님을 볼 수 있다던데 그 곳에 가고 싶네요. 마치 다른 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