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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 잘하는 11년 차 광고 디자이너 사라는 어느 날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아침, 창문을 두드리며 말하는 고양이를 만난다. 쉴 새 없이 일을 하다 자신이 미쳐버린 건가. 그런 의심을 하며 고양이를 외면했다. 그러나 그 외면이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아슬아슬했는가 여지없이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일은 제 마음대로 안 되고, 10년째 함께 해 온 남자친구랑은 뭔가 삐긋거리지, 고국 스페인에 살고 있는 가족들은 갑자기 파산을 해버린단다! 이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고양이는 끊임없이 말을 한다. "나 좀 들여보내줄래?"
케세라세라. 사라가 고양이를 받아든 데는 사실 별 이유가 없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여러 골치로부터 하나는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고양이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거라 믿은 건 아니니까. 그러나 망할 남자친구 자식이 장장 2년이나 바람을 피웠고, 이제 그녀는 그 저질스러운 놈의 집에서 나와야 하는데 모아놓은 돈이 없어 며칠 얹혀 살아야 한다는 끔찍한 사실이 그녀의 의지를 와르르 무너지게 했다. 그녀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시기에 동거남의 배신까지 듣게 되다니.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더니 사라의 인생에서 행복은 영원히 지워진 것만 같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에게는 강제로 동거하게 된 고양이 시빌이 있었다. 고양이 시빌이 들려주는 행복은 지금까지의 인생에 비추어보았을 때 무척 쓸데없어 보였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깡그리 쓸모없게 만들어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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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넌 그렇게 많은 공간과 물건이 필요없어.
네가 말한 '괜찮은' 지역에서 살 필요도 없다고.
너한테 필요한 건 행복을 볼 수 있는 집이야."
<본문 발췌 1>
별거 아닌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이 세상에 내가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주는 일이었다. 나와 함께 있는 고양이. 나와 여기까지, 내 세상의 끝까지 함께해준 고양이. 내게 와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을 준 고양이. 지금 여기에, 고양이만이 어떤지 아는 장소와 시간에 그냥 나와 함께 있어준 고양이.
강물은 발 아래로 흘러갔고, 나는 시빌을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난 고양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본문 발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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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는 시빌의 위로와 조언에 자기 자신의 행복이 뭔지 알아가게 된다. 그녀가 우울했던 것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던 과거들이 사실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딴 나라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행복하다고 느낀 때가 언제였을까. 행복은 우주에 있는 것처럼 아득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일까. 시빌은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내 귀에도 들리는 듯 했다. 너는 정말 용기있게 행복했느냐고. 비단 사라만이 비겁했던 것일까. 나는 내 삶 속에서 무수한 타협으로 행복을 멀리해 본 적이 없는 것일까?
에두아르도가 하필이면 왜, 행복을 전해주는 동물로 고양이를 등장시켰는지 고민해보았다. 고양이는 원래 외로운 동물이다. 식물 하나 살기 힘든 적막한 사막 출신에 성격도 독립적이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길냥이들의 이미지에는 불쌍하다는 감정이 스며들어 있지만, 사실 어느 면에서는 그보다 강인한 동물은 없을 것 같다는 감탄도 숨어있다. 사막보다 더 춥고 사나운 아스팔트의 세계에서도 꿋꿋하게 혼자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유일한 생명체 아닌가. 지구를 차지한 많은 현대인들이 혼자는 아무것도 못해 스러져갈때, 스스로 행복을 찾아간 동물이 바로 고양이인 것이다.
실제로 스페인 고양이들은 느긋하다. 스페인에 갔던 내 언니도, 나도 고양이 팔자를 부러워해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갇혀 사는 우리나라 고양이들은 진정 행복한 것이 아니다. 스페인의 따스한 햇살을 맞기 위해 오래된 유적지의 벽돌에 앉아 몸을 늘어뜨리는 자유로운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반성할 집사들이 많을 것이다. 스페인의 태양처럼, 스페인의 고양이처럼, 스페인의 소설은 이토록 따스하고 포근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삶이 연이어 나를 배신할 때, 한 줄기 희망처럼 다가왔던 고양이와의 더불어 사는 힐링 라이프.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가 조용히 말해준다. 고양이하고 사는 삶? 행복하지 않을 수 없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