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서양철학사 (개정증보판) - 서양의 대표 철학자 40인과 시작하는 철학의 첫걸음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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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고등 교육기관인 대학에서 가장 기초 학문을 꼽으라면 당연 철학이 튀어나올 것이다. 중등 교육시절에는 도덕, 윤리라고 불리었던 학문이 확장되어 철학이라는 언어로 둔갑하는 순간 어려움이 몇 배로 휘몰아쳐온다. 원래 대학기관에 오면 그 동안 '쉽게' 배웠던 것들의 진실한 영역을 마주하게 된다고 한다. 철학은 그 중에서도 가장 생소하게 느껴지는 학문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가 왜 철학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하면서도 어떻게 철학을 쉽게 배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목소리가 작았던 이 시점,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가 그 질문에 답을 하는 첫 책이 아닌가 싶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같은 서양철학자들의 이름은 몇 년동안 줄기차게 듣고 공부하는데도 여전히 이름만 익숙해질 뿐, 그들이 무엇을 주장했는가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늘 막연한 단어들만 입 안에서 맴돌곤 했다. 동양철학보다 더 많이 배우고 익숙한 서양철학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여전히 그들의 이름'만' 알고 있다. 그들이 해왔던 논쟁거리, 시대상황, 배경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고 했지만 이미 그들의 이름과 어려운 용어를 아는 데서도 버겁고 힘들었던 탓이다.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는 필자와 같이 철학용어에 생소한 독자들에게 어떻게 서양철학을 쉽게 배울 수있는가를 고민하다 나온 책이 분명하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최대한 용어를 배제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데 힘을 보탰다고 하더니 그게 책 안에서 느껴졌다. 특히 독자들이 알지 못했던 부분을 역사적 서사와 연결짓는 부분은 매끄럽게 이해가 되었다. 일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산층이 다스리는 중산 정치를 주장했지만 그의 제자였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철저한 황제 집권적 권력으로 정치에 임했다. 이에 대해 저자 안광복씨는 이렇게 말한다.



장차 세계를 손아귀에 넣을 성격이 급하고 성취욕이 강한 소년에게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저는 권력이나 영토를 넓히는 일보다는 선을 아는 데서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단다.

하지만 이는 인사치레의 말 정도였던 듯 하다. 절절한 고백이 무색하게도 알렉산드로스는 나중에 권력과 영토 확대에 더 관심이 많은 대왕이 되었으니까. 어쨌든 3년 뒤, 알렉산드로스는 정치 현장에 뛰어들어야 했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도 자연스럽게 끝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는 어느 정도 재산과 상식을 가진 사람들, 즉 중산층이 다스리는 '중산 정치'라고 주장한다. 그의 중용은 정치 철학에도 통했다. 즉 지나친 부와 가난은 모두 극단적인 것으로, 정치를 할 때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한다. 따라서 그 중간의 형태가 현실에서는 가장 바람직하다.


언뜻 보기에도 그의 정치사상은 황제가 모든 권력을 틀어쥐는 제국의 통치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 어릴 때부터 군대에 바탕을 둔 강력한 대제국을 꿈꾸었던 알렉산드로스에게 그의 가르침이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본문 中 -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으로 자신의 정치 이념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물심양면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도운 것은 역사에도 드러나있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스승의 이념이나 생각을 자신의 프레임에 가두려고 하지 않는 것. 철학이란 것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닐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같지 않더라도 그것을 배타적으로 치부하지 않고 나름의 것으로 녹여내고 중히 쓰는 것도 중용의 철학이라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은 이 중용의 철학에 묻어났을 듯 하다.


<처음 읽는 서양사>는 서양철학의 소개 뿐만이 아니라 일화를 마치면서 생각할 논쟁거리를 던져준다. 서툴러도 시도해봄직한 논쟁거리를 통해 생각의 영역을 넓힐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 온전히 철학을 알았다고 단정짓기는 이를 것이다. 어려운 서양철학을 좀 더 쉽게 이해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어려운 책에도 도전할 수 있는 끈기와 호기심을 선사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철학을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로 시작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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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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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원을 획득하면 식물은 네 가지 중 하나의 임무, 즉 성장, 보수, 방어, 생식을 할 수 있다.

또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무한정 연기하고 수확한 것을 저장해서 나중에 사용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무엇이 특정 식물로 하여금 가능한 여러 시나리오들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결국 알고 보니 새로 획득한 자원을 어디에 쓸지 우리가 고민할 때 고려하는 요인들과 비슷한 요인들의 영향을 식물들도 받고 있었다.

우리의 가능성은 유전자로 제약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환경에 따라 특정 선택이 다른 선택보다 더 현명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 랩걸, 본문 中 -


가끔은 읽은 감성을 설명해내기 어려운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책이 너무 지루하거나, 책의 정체성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을때, 아니면 그 의미를 파악해도 읽은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사뭇 당황스럽다. 평생 펜만 쥔 사람을 납치해서 동굴 앞에 세워둔 다음 곡괭이 한자루를 던져 주면서 가서 다이아몬드를 캐오라는 명령을 받을 때의 느낌이랄까?


[랩걸]은 이 가당찮은 이유를 모두 비껴나가 새로운 방식으로 나를 당황하게 했다. 전혀 걸맞지 않을 것 같은 주제들을 현실감있게, 또 자기 식대로 재미있고 풀어나가는 걸 알려준 책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이 책 [랩걸]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방식의 책은 리뷰를 쓰는 독자의 입장에선 새로운 과제요, 해결책을 찾아 리뷰를 풀게 되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매력을 주곤 한다.


[랩걸]이 말하고 싶은 요지는 겉 표지의 식물과 그리고 속내의 여성이다. [랩걸]의 저자 호프 자런은 여성 과학자로서, 자신이 느껴 온 세계를 식물에 대변해 표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넣는 형식으로 이 책을 이어 간다. 식물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식물 이야기가 나와도 그녀가 떠오르고, 그녀를 떠올리면 덩달아 식물이 떠올려진다.


그녀는 매순간 연구소를 지키기 위해 지원금을 타내야 하고, 그 지원에 걸맞는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애쓰는 평범한 과학자다. 혼자 땅을 파는 걸 좋아했던 인생 친구 빌을 만나고 나서 연구를 위한 온갖 고생스러운 여정까지도 그녀는 해내었다. 연구소에서 쫓겨나지는 않을까,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는 나약한 면모조차도 과학자의 입장에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데 한 점 포장이 없을 정도다. 과학자로서 사는 삶도 치열한 판국에 신은 그녀에게 한 가지 더 약점을 부여한다. 과학자라는 명사에 '여성'이라는 성별을 붙여주는 고약한 짓을 한 것이다.


과학같이 합리적이고 전문성있고 객관적이어야 하는 학문에서조차 여자는 배타적인 규칙이다. 그녀는 늘 여자 과학자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편견에 휩싸인 시선과 싸워야했다.


"있잖아, 윌터가 오늘 내 사무실에 찾아왔었어.

...당신이 병가를 내서 쉬고 있는 동안에는 이 건물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 실험실인데. 내가 직접 만든 실험실인데..."

"알아, 알아... 나쁜 놈들이지."

 

남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왜? 왜 그런지는 이야기했어?"


내가 묻는다. 그리고 내가 그때까지 평생을 살면서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수없이 '왜'라는 질문을 해야 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가 납득할 만한 답을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원시인들이잖아. 그건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말도 안돼! 그 사람 중 절반은 술에서 깨지도 않은 채 사무실에 들어오고...

학생들한테 추파나 던지면서... 그러면서 사고 나면 책임 못 진다는 말을 나한테 해?"

"진정해. 이게 현실이야. 그냥 임산부를 보고 싶지 않은 거야.

그리고 임신한 채 이 건물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니까.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는 거야. 단순한 이유야."


- 랩걸, 본문 中 -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바치는 삶은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보람된 열매를 먹는 것조차도 제한된 구역의 일이다. 식물이 자라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식물은 자신의 힘으로는 설 수 없어 남의 줄기를 휘감으며 살아가는 방식을 택했고, 어떤 식물은 수십년의 세월동안 거의 죽은 것처럼 살다 부활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원하는 길로 나아가는 방향이 달콤하고 찬란하기만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태초의 식물이 그녀보다 더 먼저 검증을 해주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위로가 되어주고 그것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버팀목으로 남았다.


나이도, 성별도, 그저 사랑하고 부딪치는 치열한 삶으로만 이겨내었던 한 과학자의 기록이 나이테처럼 새겨진 작품이 바로 호프 자런의 [랩걸]이다. 호프 자런이 이 책을 써내어 여성 과학자의 현실이 1cm도 바뀌지 않았다해도 괜찮다. 이 책은 오늘날을 위한 책인 동시에 미래를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나은 삶, 평등... 우리는 오랫동안 끊임없이 말하며 조금씩 바꾸어오지 않았는가. 이 책은 그러한 미래를 위해 생각할 여지를 주는 책으로 내게 기억될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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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 - 나의 가치를 드러내는 글쓰기의 힘
이남훈 지음 / 지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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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작가 되기 편리해지고 있다고, 노력만 하면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이 왔다. 쏟아지는 작법책들의 기술력과 인문학 연구 소재의 발전을 생각하면 정보를 얻는데 있어서는 예수 탄생 이후 가장 편해졌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막상 펜을 들든, 의자에 앉든, 키보드 위에 피아노 건반 두드리듯 손을 올려놓아도 한 구절도 써지지 않는다. 잔뜩 사다 둔 작법서는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고 더불어 나 자신도 글쓰기에 능력없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이웃 모두 작가가 되어도 나만은 절대 작가가 못 될 것 같은 자괴감에 빠져산다면 당신은 때가 되었다. [필력]을 만날 때가 온 것이다.


"필력은 생각과 마음을 글로 전하는 능력입니다.

 생각한대로 쓰고 쓰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필력> 본문 中-


<필력>을 관통하는 가장 큰 매력은 '팩트폭행'이다. 너도 나도 알고 있는 '교과서식 조언'이 아니라 너도 나도 알고 있지만 제대로 못 알고 있어서 늘 실패하는 자들이 진정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약은 써서 먹기 싫다. 그런데 <필력>의 약은 쓰다는 걸 눈치챌 겨를이 없다.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는 문구들이 도처에 깔려있는데 어찌 먹지 않으랴.

 

 

목차가 너무 신박하고 매력적이다. 제목 만큼이나 부제들도 매섭다. '노력의 배신', '먹히는 글', '초등학생 글쓰기' 등등 작가를 꿈꿔 본 사람들이라면 귀에 딱지 않도록 들어온 모든 조언들을 차갑게 부정한다. 글쓰는 사람을 승부사로 표현하는 이 저자, 무섭고 두렵지만 왠지 끌린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필력을 상승시켜주겠다는 걸까. 화가 나는 한 편으로는 진짜 비법을 알려줄 도사로 보여 솔깃하다.


<필력>을 다 읽은 사람의 입장으로 결론부터 말해주자면 그가 알려주는 비법들도 사실 특별하거나 당장 효과를 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배신을 하든 결혼을 하든 여전히 노력은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때론 그 분야에서 오래 일한 경력도 어떤 글을 쓰냐에 따라 '따위'로 변할 수 있는 냉혹한 현실을 지적한다.

 

 

특히 <필력>에서 언급되는 저자의 경험과 사례는 실제로 주변에 있을 거 같은 진정성이 보였다. 아니, 이 글의 사례처럼 실패해 본 독자를 투영하게 만드는 사례들을 끌고 오는 재주가 있다고 보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정말로 있을 법 하고 정말로 글 못 쓰는 사례들만 골라 와서 왜 글을 쓰지 못하는지 설명하는데 읽는 사람 마음 아픈 건 온전히 독자의 몫인가 보다. 마지막 줄을 확인하라. '많이 쓰지만 여전히 못 쓴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는 작가의 질책은 안타까움과 별개로 끝이 없다.


<필력>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왜 당신이 글을 못 쓰는가'를 논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좋은 글을 쓰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봐줄 시선으로 하여금 글을 쓸 때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것들에 빠질 것을 염려해 준 것으로 느껴진다. <필력>은 생각을 멈추지 않고 눈에 보이는 형상을 허무는 연습을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쓰고 싶은 주제가 늘 원할 때 툭툭 튀어나오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늘 소재에 목말라야하고 그것을 써낼 글쓰기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 


글을 써 본 입장에서 저자의 조언 중 가장 와닿았던 것은 글을 쓰기 위한 여행이라면 절대 카메라를 들고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관광지를 가지 말 것. 최대한 많이 무엇이든 담아오겠다는 물량 승부를 피하고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새로운 방식으로 사색에 잠기는 것만을 해도 글쓰기 여행으로는 충분하다는 말은 지금껏 작가들의 소재 여행을 오해해 온 나의 편견을 깨주는 말이었다. 여러 곳을 둘러봐야 한다는 말이 아닌 한 자리에 앉아 있어도, 그 분위기만 즐겨도 충분하다라고 말해주는 조언자가 나타날 줄이야. 이 조언을 들은 것만으로도 나는 <필력>을 읽어 후회할 일이 없다고 자신한다.


고정관념을 깨고 생존할 수 있는 필력법을 제시하는 현실적인 쓰기 방법에 대해 궁금하다면, <필력>을 참고해보라고 권유해보고 싶다.

글쓰기는 능력이고, 이 능력을 어떻게 살리는가는 아주 중요한 노하우다. 그 노하우를 아낌없이 펼칠 수 있는 저자의 자신감은 덤으로 독자에게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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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돈 공부 - 평생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20대에 돈 공부를 시작하라!
김성진 지음 / 카시오페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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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인가. 굉장히 안타까우면서 불쾌한 뉴스 기사 하나를 접했다. 20대 청춘들이 등록금을 벌기 위해 모아놓은 등록금을 털어 주식 투자를 해서 망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가 나를 슬프고 화나게 했던 이유는 많았다. 주식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한탕주의에 빠진 20대를 지적하며 그릇된 사고를 버려야한다는 의식으로 끝났다는 것이 첫번째요, 그들의 사례를 접한 수많은 네티즌들이 '그러길래 주식은 하지 말라고 주변에서 누가 안 그러냐'라는 식의 댓글을 달았다는 사실이 두번째였다. 뉴스에 나온 20대나, 기사거릴 쓴 기자나, 기사 속 어리석인 행동을 비웃으며 난 주식은 전혀 안할건데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이들이나 다 똑같은 부류들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경제를 모르면서 경제를 아는 '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공부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주식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손사레를 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이가 들면 다들 한번씩은 주식에 발을 내디딘다. 이유는 간단하다. 월급으로는 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적금은 푼돈 이자도 안 나오니 갇혀있는 돈이라 생각된다. 로또를 사서 대박이 터지는 것은 인생 전부의 운을 다 털어도 될까말까한 벼락 행운인데 이런 거에 기대할까. 그럼 남는 건 펀드나 부동산을 본다. 부동산을 하기엔 그만큼의 기초자금은 없고. 주식으로 불려볼까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당신은 주식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다. 그런 마음으로는 절대 주식으로도 성공은 커녕 돈을 벌 수가 없다.



여기 고시원을 전전하던 20대 남자가 25살에 1억 원의 종잣돈을 만들고, 30살에 10억 자산가로 거듭난 이야기가 있다. [청춘의 돈공부] 저자의 실제 사례란다. 20대부터 경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나이가 들어 돈을 충분히 벌고나서 그 때부터 들어가겠다고 하면 늦는다. 돈이 있건 없건 먼저 부딪쳐서 배우는 길을 추천한다. 공부라는 건 끊임없이 지켜보고, 정보를 얻고, 노하우를 쌓아가는 모든 행위이지 반드시 자금 투자를 하란 의미가 아니다.



[청춘의 돈공부]에 나오는 모든 방법을 100% 따라하는 일도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남이 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저자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방법을 온전히 따라할 능력이 된다면 상관없겠지만, 필자가 귀찮은 사람인지, 부족한 사람인지. 따라할 수 있는 건 몇 개 안되었다. 하지만 그 방법만으로도 경제 생활이 나아지게 하는 데는 충분한 도움이 된다. 특히나 용돈을 30일로 나누어 일일 한도 용돈을 세우는 건 본받아야할 꿀팁이었다. 참고로 필자는 그 동안 일주일 단위로 용돈을 나누었다. 주단위보다 일단위가 좀 더 세세하게 돈을 관리하고 자신이 돈을 어디에 쓰는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위 사진은 본 책에 나오는 자산 상태표의 작성사례이다. 사회 초년생의 경우, 일반 직장인의 경우가 제시되고 현금 자산표도 따로 보여준다. 한가지 안타까운 건 현금 자산 3백까지는 어떻게 동의한다 쳐도 부동산 3천만원이 사회초년생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참으로 필자를 슬프게 하더라. 조금 더 현실적인 방안의 계획표가 나와있는 책은 아직 발견한 적이 없는데 아직 이 부분을 반영한 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건 좀 안타깝다. 어찌되었든 20대 경제 공부의 시작인 자산 상태표를 써보고 자신의 자산 상태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가져온 표이니 자신만의 양식으로 자산표를 만들어 보면 좋을 것이다.


주식을 하든 안 하든, 경제 관념이 있든 없든 한가지는 주의하자. 세상에 평온한 경제는 없다. 주식을 하지 않고 절약하는 것으로 평화로운 재정상태를 갖고 있을 거라 자신하는 사람에게도 위험은 닥친다. 절약하는 것만으로는 자산이 불기가 어렵다. 투자를 하는 것이 두려워 매번 피하면 돈이란 것과 친해질 수가 없다. 청춘들이여, 돈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투자를 해라. 배우겠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돈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워봐라. 필자도 주식을 어린 시절부터 배웠다. 돈을 많이 벌었냐고? 물론 아니다. 그럼 자산이 불었냐고? 아주 미미하게 불었다. 통장 이자보다는 낫지만 월급 만치도 안 되는 돈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청춘의 시간에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쌓아올린 지식과 경험은 월급보다 나를 더 배부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20대 청춘들이여. 투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긴 세월을 내다본다는 마음으로 돈 공부를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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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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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멘션에서 일가족이 감금되는 사건이 있었다. 천성 사기 기질이 다분한 용의자가 타겟 한 명을 잡아 그 가족까지 모두 감금하고 살해까지 저지른 천인공노할 사건이 벌어졌다. 그에게 지배당했던 피해자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학습된 무기력으로 버티기. 범죄자를 돕는 조력 행위. 범죄자를 신성시하고 닮아가기. 신체에 가해지는 폭행 뿐만 아니라 비이성적인 감금 생활까지. 한 남자는 멀쩡하고도 평범한 일가족을 불과 몇 달만에 완전히 지배해버렸다. 어째서 일가족은 고작 한 남자에게 이용당하고 감금당했던 것일까? 그 남자는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절대적 존재자가 될 수 있었을까. <짐승의 성>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법한 의문점을 가지고 유혹한다. 왠지 결말을 알 것 같은데도 궁금하다. 끌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은 진정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의 힘일 것이다.



<짐승의 성>은 마치다 가도에 있는 '유한회사 사카에 자동차'의 직원인 신고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그의 동거녀 세이코와 함께 있는 지저분한 영감을 마주하면서 시작된다. 세이코는 갑작스럽게 상경한 아버지라고 그를 소개한다. 갈 곳이 없어 당분간 함께 지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신고는 망설인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거녀와 마련한 이 작고 따뜻한 보금자리에 낯선 이가 들어온다는 건 생각만해도 꺼림칙하다. 그러나 어쩌겠나. 애인의 아버지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신고는 이 불편하고 낯선 침입자가 하루라도 빨리 나가기를 바라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신고는 오래 전에 세이코가 자신의 부모님이라며 보여준 사진을 떠올린다. 갸름한 얼굴을 한 백발의 신사와 사람 좋아 보이는 통통한 부인.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해도 갸름한 얼굴의 신사가 노숙자와 같은 지저분하고 뚱뚱한 남자로 변모할 리가 없다. 세이코는 그제야 전에 보여준 사진 속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라고 인정한다. 그녀는 어릴 적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키워진 아이란다.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동거녀 세이코의 과거 속에서 신고는 남자의 이름을 알게 된다. 나카모토 사부로. 또한 한 가지 더 불편한 사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하루가 아닌 당분간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것.


마치다 경찰서의 기와다 에이이치는 7월 8일 화요일 15시 12분. 한 소녀의 신변보호 요청 전화를 받고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그는 그 곳에서 온갖 상처를 둘러 맨 17세 소녀, 고다 마야를 만나게 된다. 마야는 우메키 요시오라는 남자와 아쓰코라는 여자에 의해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폭행이 일어난 곳은 썬코트마치다 403호. 경찰들은 그곳에서 홀로 남아 있는 아쓰코를 상해 혐의로 체포한다. 그러나 여전히 주 용의자로 주목받고 있는 우메키 요시오는 행방이 묘연하다.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와중에 썬코트마치다 403호의 감정결과가 나온다. 그 결과 자료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가와다, 엄청난 게 나왔어."


가와다가 입을 닦고 일어선다. 시마모토도 따라서 기와다와 나란히 선다.


"뭡니까. 엄청나다뇨."


"403호 욕실. 타일 줄눈부터 배수구, 샤워 호스, 욕조 마개까지 철저하게 잔류물을 채취해서 감정했더니-"


순간 나카지마 경부가 시마모토의 얼굴을 흘끔 본다. 하지만 알려져도 별 상관없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다시 시선을 돌린다.

"다섯 명이나 나왔어. DNA가. 더구나 그중 네 명은 혈연관계일 가능성이 높은가 봐."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짐승의 성>은 신고의 이야기와 고다 마야의 사건이 동시에 진행된다. 얼핏 서로 관계 없어 보이는 일련의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실마리를 제공한다. 두 인물의 이야기는 어느 한쪽도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는다. 찜찜하고 끈적거리는 궁금증만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러던 중 무위도식하는 세이코의 아버지에게 화가 난 신고가 그의 뒤를 미행하면서 두 사건은 드디어 무시무시한 연관성을 드러낸다. 나카모토 사부로는 늘 공원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어떤 멘션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곳은 며칠 전에 감금 사건이 있었던 썬코트마치다 멘션이다. 신고는 사부로의 기이한 행동이 위험한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촉이 오게 된다.



<짐승의 성>은 주 용의자가 없이 그 상관관계의 인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악에게 정의구현을 하는 화끈한 경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에 전염된 인간의 나약함과 악마의 천재성에 연신 몸을 떨게 할 뿐이다. 인간은 강인한 동물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 없는 사막에서도, 냉혹한 시베리아에서도 살아남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자신의 생명을 건 극악한 환경에서도 체념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변질된 의미로 해석된다.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가장 가혹한 형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빼앗는 것이다. 존엄성이 없는 무법사회, 나는 그것이 <짐승의 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마치 홀린듯이, 결말을 보기 위해 읽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읽지 말라는 출판사의 경고 태그가 아직도 내 책에 붙어 있다. 그러나 <짐승의 성>은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홀려지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책이다. 놀랍도록 무섭고, 두렵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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