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멘션에서 일가족이 감금되는 사건이 있었다. 천성 사기 기질이 다분한 용의자가 타겟 한 명을 잡아 그 가족까지 모두 감금하고 살해까지 저지른 천인공노할 사건이 벌어졌다. 그에게 지배당했던 피해자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학습된 무기력으로 버티기. 범죄자를 돕는 조력 행위. 범죄자를 신성시하고 닮아가기. 신체에 가해지는 폭행 뿐만 아니라 비이성적인 감금 생활까지. 한 남자는 멀쩡하고도 평범한 일가족을 불과 몇 달만에 완전히 지배해버렸다. 어째서 일가족은 고작 한 남자에게 이용당하고 감금당했던 것일까? 그 남자는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절대적 존재자가 될 수 있었을까. <짐승의 성>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법한 의문점을 가지고 유혹한다. 왠지 결말을 알 것 같은데도 궁금하다. 끌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은 진정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의 힘일 것이다.



<짐승의 성>은 마치다 가도에 있는 '유한회사 사카에 자동차'의 직원인 신고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그의 동거녀 세이코와 함께 있는 지저분한 영감을 마주하면서 시작된다. 세이코는 갑작스럽게 상경한 아버지라고 그를 소개한다. 갈 곳이 없어 당분간 함께 지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신고는 망설인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거녀와 마련한 이 작고 따뜻한 보금자리에 낯선 이가 들어온다는 건 생각만해도 꺼림칙하다. 그러나 어쩌겠나. 애인의 아버지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신고는 이 불편하고 낯선 침입자가 하루라도 빨리 나가기를 바라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신고는 오래 전에 세이코가 자신의 부모님이라며 보여준 사진을 떠올린다. 갸름한 얼굴을 한 백발의 신사와 사람 좋아 보이는 통통한 부인.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해도 갸름한 얼굴의 신사가 노숙자와 같은 지저분하고 뚱뚱한 남자로 변모할 리가 없다. 세이코는 그제야 전에 보여준 사진 속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라고 인정한다. 그녀는 어릴 적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키워진 아이란다.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동거녀 세이코의 과거 속에서 신고는 남자의 이름을 알게 된다. 나카모토 사부로. 또한 한 가지 더 불편한 사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하루가 아닌 당분간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것.


마치다 경찰서의 기와다 에이이치는 7월 8일 화요일 15시 12분. 한 소녀의 신변보호 요청 전화를 받고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그는 그 곳에서 온갖 상처를 둘러 맨 17세 소녀, 고다 마야를 만나게 된다. 마야는 우메키 요시오라는 남자와 아쓰코라는 여자에 의해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폭행이 일어난 곳은 썬코트마치다 403호. 경찰들은 그곳에서 홀로 남아 있는 아쓰코를 상해 혐의로 체포한다. 그러나 여전히 주 용의자로 주목받고 있는 우메키 요시오는 행방이 묘연하다.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와중에 썬코트마치다 403호의 감정결과가 나온다. 그 결과 자료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가와다, 엄청난 게 나왔어."


가와다가 입을 닦고 일어선다. 시마모토도 따라서 기와다와 나란히 선다.


"뭡니까. 엄청나다뇨."


"403호 욕실. 타일 줄눈부터 배수구, 샤워 호스, 욕조 마개까지 철저하게 잔류물을 채취해서 감정했더니-"


순간 나카지마 경부가 시마모토의 얼굴을 흘끔 본다. 하지만 알려져도 별 상관없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다시 시선을 돌린다.

"다섯 명이나 나왔어. DNA가. 더구나 그중 네 명은 혈연관계일 가능성이 높은가 봐."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짐승의 성>은 신고의 이야기와 고다 마야의 사건이 동시에 진행된다. 얼핏 서로 관계 없어 보이는 일련의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실마리를 제공한다. 두 인물의 이야기는 어느 한쪽도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는다. 찜찜하고 끈적거리는 궁금증만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러던 중 무위도식하는 세이코의 아버지에게 화가 난 신고가 그의 뒤를 미행하면서 두 사건은 드디어 무시무시한 연관성을 드러낸다. 나카모토 사부로는 늘 공원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어떤 멘션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곳은 며칠 전에 감금 사건이 있었던 썬코트마치다 멘션이다. 신고는 사부로의 기이한 행동이 위험한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촉이 오게 된다.



<짐승의 성>은 주 용의자가 없이 그 상관관계의 인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악에게 정의구현을 하는 화끈한 경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에 전염된 인간의 나약함과 악마의 천재성에 연신 몸을 떨게 할 뿐이다. 인간은 강인한 동물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 없는 사막에서도, 냉혹한 시베리아에서도 살아남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자신의 생명을 건 극악한 환경에서도 체념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변질된 의미로 해석된다.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가장 가혹한 형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빼앗는 것이다. 존엄성이 없는 무법사회, 나는 그것이 <짐승의 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마치 홀린듯이, 결말을 보기 위해 읽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읽지 말라는 출판사의 경고 태그가 아직도 내 책에 붙어 있다. 그러나 <짐승의 성>은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홀려지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책이다. 놀랍도록 무섭고, 두렵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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