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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서양철학사 (개정증보판) - 서양의 대표 철학자 40인과 시작하는 철학의 첫걸음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2월
평점 :
보통 고등 교육기관인 대학에서 가장 기초 학문을 꼽으라면 당연 철학이 튀어나올 것이다. 중등 교육시절에는 도덕, 윤리라고 불리었던 학문이 확장되어 철학이라는 언어로 둔갑하는 순간 어려움이 몇 배로 휘몰아쳐온다. 원래 대학기관에 오면 그 동안 '쉽게' 배웠던 것들의 진실한 영역을 마주하게 된다고 한다. 철학은 그 중에서도 가장 생소하게 느껴지는 학문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가 왜 철학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하면서도 어떻게 철학을 쉽게 배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목소리가 작았던 이 시점,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가 그 질문에 답을 하는 첫 책이 아닌가 싶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같은 서양철학자들의 이름은 몇 년동안 줄기차게 듣고 공부하는데도 여전히 이름만 익숙해질 뿐, 그들이 무엇을 주장했는가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늘 막연한 단어들만 입 안에서 맴돌곤 했다. 동양철학보다 더 많이 배우고 익숙한 서양철학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여전히 그들의 이름'만' 알고 있다. 그들이 해왔던 논쟁거리, 시대상황, 배경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고 했지만 이미 그들의 이름과 어려운 용어를 아는 데서도 버겁고 힘들었던 탓이다.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는 필자와 같이 철학용어에 생소한 독자들에게 어떻게 서양철학을 쉽게 배울 수있는가를 고민하다 나온 책이 분명하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최대한 용어를 배제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데 힘을 보탰다고 하더니 그게 책 안에서 느껴졌다. 특히 독자들이 알지 못했던 부분을 역사적 서사와 연결짓는 부분은 매끄럽게 이해가 되었다. 일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산층이 다스리는 중산 정치를 주장했지만 그의 제자였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철저한 황제 집권적 권력으로 정치에 임했다. 이에 대해 저자 안광복씨는 이렇게 말한다.
장차 세계를 손아귀에 넣을 성격이 급하고 성취욕이 강한 소년에게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저는 권력이나 영토를 넓히는 일보다는 선을 아는 데서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단다.
하지만 이는 인사치레의 말 정도였던 듯 하다. 절절한 고백이 무색하게도 알렉산드로스는 나중에 권력과 영토 확대에 더 관심이 많은 대왕이 되었으니까. 어쨌든 3년 뒤, 알렉산드로스는 정치 현장에 뛰어들어야 했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도 자연스럽게 끝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는 어느 정도 재산과 상식을 가진 사람들, 즉 중산층이 다스리는 '중산 정치'라고 주장한다. 그의 중용은 정치 철학에도 통했다. 즉 지나친 부와 가난은 모두 극단적인 것으로, 정치를 할 때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한다. 따라서 그 중간의 형태가 현실에서는 가장 바람직하다.
언뜻 보기에도 그의 정치사상은 황제가 모든 권력을 틀어쥐는 제국의 통치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 어릴 때부터 군대에 바탕을 둔 강력한 대제국을 꿈꾸었던 알렉산드로스에게 그의 가르침이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본문 中 -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으로 자신의 정치 이념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물심양면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도운 것은 역사에도 드러나있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스승의 이념이나 생각을 자신의 프레임에 가두려고 하지 않는 것. 철학이란 것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닐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같지 않더라도 그것을 배타적으로 치부하지 않고 나름의 것으로 녹여내고 중히 쓰는 것도 중용의 철학이라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은 이 중용의 철학에 묻어났을 듯 하다.
<처음 읽는 서양사>는 서양철학의 소개 뿐만이 아니라 일화를 마치면서 생각할 논쟁거리를 던져준다. 서툴러도 시도해봄직한 논쟁거리를 통해 생각의 영역을 넓힐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 온전히 철학을 알았다고 단정짓기는 이를 것이다. 어려운 서양철학을 좀 더 쉽게 이해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어려운 책에도 도전할 수 있는 끈기와 호기심을 선사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철학을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로 시작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