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현대시 시인선 154
이화영 지음 / 한국문연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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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들을 숨죽여 읊조리다 침묵의 여울 속에 발을 담군다.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한숨 소리. 시인의 상처인지 나의 상처인지 모를 그 어떤 풍경 속에 너울거리는 시름. 이내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짐을 느꼈다. 칼날이 남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 나와 당신, 그 서성거림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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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현대시 시인선 154
이화영 지음 / 한국문연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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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들을 숨죽여 읊조리다 침묵의 여울 속에 발을 담군다.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한숨 소리. 시인의 상처인지 나의 상처인지 모를 그 어떤 풍경 속에 너울거리는 시름. 이내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짐을 느꼈다. 칼날이 남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 나와 당신, 그 서성거림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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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형이상학 민음사 철학 에세이
알랭 바디우 지음, 박성훈 옮김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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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엉망입니다. 철학적 지식이 폭넓은 분들도 무슨 말인지 모를 문장들입니다. 허공을 보고, 먼산을 좇는 느낌입니다. 사실 분들은 미리보기로 꼭 읽어 보거나 서점에 내방하셔서 좀 보시고 사세요. 문장이 호응도 안 되게 참 애매하고 모호한 글들의 향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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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2021-03-2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번역이 엉망인 것은 아닙니다.

manics78 2022-12-02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 처음 만나는 에티카의 감정 수업
심강현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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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모든 것이 신이다"라는 범신론을 제창한 네덜란드의 유대계 철학자이다. 유물론자ㆍ무신론자 였던 스피노자에게 신이란 종교적인 인격의 의미가 아닌 자연 그 자체였으며, 그의 사상은 데카르트의 철학에 입각한다.

'신은 곧 자연'이라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사상을 뒷받침하는 『에티카』는 정확하게 번역하면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이다. 신의 내적 필연에 의해 일체의 사물이 생긴다고 하는 결정론을 취한 『에티카』는 인식으로써 정념(情念)을 극복하고 일체가 바로 신 그 자체임을 직관하는 것, 즉 ‘신에 대한 지적(知的) 사랑’을 최고의 선(善)으로 인정한다.

스피노자의 철학을 기저로 한 인문학 저서들이 범람하고 있지만, 정작 『에티카』 원전이라는 두터운 벽에 쉬이 접근할 수 있는 서적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스피노자의 핵심적 사상을 개괄하여 현 시대의 눈높이에 맞추어 일반인도 접근이 용이한 해설서이다. 또한 니체와 프로이트의 철학을 적절히 인용하고 더욱 이해가 쉽고 유용하다.

감정의 철학자로 불리우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핵심 키워드는 자기 보존의 욕망 '코나투스'다. 코나투스는 노력, 추구, 경향, 관성을 뜻하는 라틴어로 『에티카』 에서의 코나투스의 의미는 관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려는 생명의 힘, 그에 따른 삶에 대한 욕망이 코나투스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는 논리에 수긍이라도 하듯이 우리는 아찔한 롤러코스터를 타듯 매순간 감정의 격류에 소용돌이친다. 그 감정 노동의 중심에는 자기 스스로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라는 심연이 존재한다. 욕망은 인간에게는 불가항력적인 감정의 기반이며, 심리적 방어기제의 일환이다. 그렇다면 감정이라는 망각의 제국에서 우리는 어떻게 욕망을 능동적 역량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까?

삶에 무수히 흩어진 파편 속에 이성적인 나를 지켜내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나로부터 기초한 부정적 관념의 실재. 자기 본위에 얽매인 감정은 수동적이며 슬픈 정념에 예속될 뿐이다. 영혼의 동굴에 갇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자아를 인식하는 일, 그 침묵의 바깥에서 우리는 우리를 인정하고 직시해야만 한다.
결핍, 우리는 그것을 매우 쉽게 받아들이고 일반화한다. 그 안에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비이성적인 잣대와 타인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포함된다. 자신이 설정한 그릇된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일부터 사라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관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 그 역량은 바로 내 안에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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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용기와 인내를 갖고 무언가를 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이나 남들 앞에서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자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원래'라는 말 뒤로 숨으려는 비겁함일 뿐입니다. - p.93

우리는 그것이 선하다고 생각되기에 그것을 원하고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고 욕망하기에 그것을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p.107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을 사물에 집어넣었다가 다음에 그 사물을 보게 되면 미리 집어넣어 둔 것만을 끄집어낸다 - p.120

스피노자의 철학은 한마디로 '필연성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필연이 아닌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우연이란 단지 우리가 그 원인과 인과관계의 흐름을 아직 다 파악 못한 필연에 붙이는 감탄사일 뿐입니다. - p.124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사안을 자기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가져가고 싶어 한다. - p.170

가장 치명적인 감정인 '교만'과 '자기 멸시'는 자신에 대한 가장 무서운 무지입니다. - p.179

자존감과 자존심은 대게 반비례합니다. 자존심에 민감하다면 자존감이 낮을 것이며, 자존심에 덜 민감하다면 그는 높은 자존감을 안고 사는 사람일 겁니다. 대체로 매사에 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자존감에 스스로 의구심을 품은 경우가 많습니다. - p.231

명예욕은 오직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노력이고, 자기만족은 남들에 앞서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려는 노력입니다. 이렇게 자기만족이란 타인의 껍질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 당당히 존재하며 자기가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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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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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는 한병철 교수의 상론은 현대 사회의 모순을 꿰뚫는 비약적 논리로 시의적절하다. 오늘날의 조직 사회는 자율성을 확보한 성과사회로 규정되지만, 그로 인한 성과적 주체라는 후기근대의 정신적 노동층을 양산하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부정성이 아닌 긍정성의 과잉이 병리학적 현상이 만연한 피로사회와 우울사회를 조장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 속에 군림하는 초자아를 은폐할 수는 없으면서, 사회적 불온 분자로 낙인찍힐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해 스스로를 유폐시키며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과적 인간으로, 성과사회에 부응하기 위한 정당한 경쟁과 성공이라는 미명 아래 타자 속에 자아를 지우고 결박하며 벼랑 끝의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
디스토피아, 그것은 사회에 예속된 집단으로 만들어지는 암울한 시대의 이데올로기다. 그릇된 이상향의 결핍, 자기 착취에서 준거한 탈진과 마모의 반복은 현실에서 고립된 무기력한 인간상을 우회적으로 나타낸다. 이와 같은 사회적 병폐를 탈피하기 위한 해결책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 긍정 과잉의 시대가 낳은 비가시적인 폭력, 그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만의 신념으로 중무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온전한 나로의 회귀,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일 것이다.
#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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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은 과도한 책임과 주도권이 아니라 후기근대적 노동사회의 새로운 계율이 뎐 성과주의의 명령이다. - p.27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나.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이러한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 p.28

자아 피로는 자아의 잉여와 반복에서 비롯되는 피로다. 하지만 치유적 피로는 이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한 피로 속에서 자아는 세계를 믿고 거기에 자기를 밑긴다. 그것은 "줄어든 자아의 늘어남"으로서의 피로. 건강하고 "세상을 신뢰하는 피로"이다. 반면 자아 피로는 고독한 피로, 세계가 없는, 세계가 부족한, 세계를 지워버리는, 개개인을 고립시키는 피로이며, 나르시시즘적 자기 관계의 대가로 타자와의 모든 관계를 파괴해버리는 피로다. - p.82

경험은 이화적이다. 반면 체험은 자아를 타자 속으로, 세계 속으로 연장시킨다. 따라서 체험은 동화적으로 작용한다. 자기애는 자기 자신에 비해 타자를 폄하하고 거부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부정성의 영향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아는 타자와 대립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정립한다. 이로써 자아와 타자를 분리하는 경계선이 유지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타자와의 대립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이다. 반면 나르시시즘에서는 타자와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나르시시즘적 장애를 겪는 사람은 자기 자신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리하여 타자관계가 소실되고 이에 따라 안정된 자아의 이미지도 형성되지 못한다. - p.88

우울증은 주도권을 쥐려고 노력하는 주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좌초됨으로써 얻게 되는 병이다. 여기서 통제할 수 없는 것, 환원 불가능한 것, 미지의 것은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부정성의 형상이다. 하지만 이들은 긍정성의 과잉이 지배하는 성과사회에서 더 이상 핵심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 p.94

하데스의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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