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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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둣빛 바탕 위에 갈색 물감이 한 방울 떨어진 듯한 이 모습은 마치 은은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소녀를 연상시킨다. 이 감람색 혹은 올리브색은 지속 가능한 생명력과 평화, 그리고 희망을 상징한다.

이 소설은 어두운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새로이 피어나는 희망의 이야기를 그리며 그 깊은 의미를 더욱 강조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치 솔잎 향기가 나는 것 같아, 나는 자주 책에 얼굴을 묻고 코를 킁킁대었다.

1976년, 박완서 작가의 첫 작품으로 세상에 선보인 이 소설은 그녀가 40세가 되던 해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20세가 되기 전,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떠올리며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녀는 그 시절의 순수함과 열정이 희미해질 때마다, 이 작품을 다시 열어보곤 했다고 하는데, 나도 그 마음을 닮고 싶어 책장을 소중하게 넘겼다.


작품은 한국전쟁 직후 서울의 수복 시기를 배경으로, 당시의 고통을 겪는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내면의 감정을 미세하게 포착한다. 주인공 이경은 '나'라는 시점에서 자신이 경험한 사건과 감정을 세밀하고 생생한 문체로 담아낸다.

이경에게 옥희도는 단조롭고 침체된 일상에 새로운 감정의 파동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반면 이경은 옥희도에게 새로운 바람을 가져다준 존재였다.

옥희도의 잿빛이면서도 공허한 눈빛을 통해, 이경은 둘이 어떤 면에서 서로 닮아있다고 느꼈다.

마치 서로의 외로운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잊혀진 퍼즐 조각처럼.

하지만 서로를 뮤즈로 여겼던 그들의 관계는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결국 무너져 내렸다.

결국, 결혼과 예술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들을 이어주던 연결 고리는 끊어지고 말았다.

수년 후, 옥희도의 유작 전시회에서 이경은 '나목'이라는 작품과 마주한다.

한때 그의 작업실에서 본 황량한 '거목'의 그림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녀 앞에 선 나무는 쇠약해진 '거목'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나목'이었다.


나는 '나목'이 상징하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한국 사회, 주인공의 가족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 지루한 나날의 단조로움, 황폐해진 마음 등, 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한다고 느꼈다.

이경은 '나목'을 통해 위안을 찾았고, 옥희도는 그림을 통해 희망을 전했다.

이 작품은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내며, 인간의 내면 깊숙한 감정을 탐구한다.

'나목'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삶의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한다.

이경과 옥희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겪는 삶의 고통과 회복, 그리고 재생의 과정을 반영한다.

그들의 관계는 일시적으로 끝났지만, 그들의 이야기와 '나목'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작품은 삶이 때때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지만, 그 안에서 성장하고, 치유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되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다양한 서사와 줄거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으며, 그 메시지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물들의 심리와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이슈를 잘 반영하여 현시대의 독자들에게도 큰 의미를 전달한다.

박완서 작가라는 거대한 등불이 자신의 처녀작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많은 독자가 작품의 행간에 서린 애잔함과 새로운 희망을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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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수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삶의 해를 구하는 공부
카를 지크문트 지음, 노승영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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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지성인들은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세상의 이치를 수학으로 풀었다.

학문의 근간이 되는 것은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된다고들 한다. 그것은 문제를 더듬어 그 근원에 이르려는 학문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는 흔히 '우주의 언어'라고 불린다. 저세상 언어처럼 말이다. 이 시대의 지성인인 유시민 작가도 과학은 도전할 만하지만, 수학은 넘사벽이라 하신 적이 있다. 그렇다면 허준이 교수와 같은 수학 천재는 과연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걸까?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의 수학과 명예교수이자 진화적 게임이론의 선구자인 카를 지크문트는 수학이 철학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탐구했다. 수학자는 '' 자체에 몰두하기보다는 과정의 규칙성을 찾아내는 데 주목한다. 우연과 확률이 좋은 예인데, 주사위 놀이나 타로, 룰렛 게임 등이 그러하다.

 

최근 떠들썩한 이슈 중 하나인 AI도 수학의 원리를 따른다. GPT-4는 통계학, 선형대수학, 최적화 이론 등 수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학습하고 예측한다. , 뉴럴 네트워크의 가중치를 조절하는 과정은 수학적 최적화 문제로 표현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부터 현대 수학자까지 수학을 통해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키는지, 논리 및 정치, 언어, 도덕을 아우르는 다양한 사회 문제에 수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풍성한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

수학을 왜 배우는가?’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어쩌다 이과'였던 나는, 그간의 골치 아픈 숙제를 한소끔 덜어낸 느낌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_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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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확장판 -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몰입
황농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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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마치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이 개념은 미국의 안데르스 에릭손 교수가 처음 세상에 내놓은 것으로, 어느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자 한다면 적어도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수라는 것이다. 이를 매일 세 시간씩 투자한다면 대략 10년의 세월이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몰입>이라는 책 역시 이러한 생각을 공유한다. 즉, 영재나 천재라는 존재는 타고나기보다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이 책에서는 '얼마나 깊이 몰입하여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웠는가'가 중심 주제로 다뤄진다.

'1만 시간의 법칙'과 다른 점은 강한 몰입을 하면 10년까지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몰입이란 단지 잠깐의 집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며칠이 걸리든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결국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내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여기에서 과거의 지식과 경험이 결합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처음부터 완전한 몰입단계에 들어설 수 없으므로, 이를 경험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책은 마지막 부분에서 몰입의 단계법들을 설명해 준다. 끝부분의 방법론만 읽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설득력이 떨어져 실제로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있다. 책의 앞부분은 몰입의 단계를 설명하기 위한 충분한 근거와 경험 및 체험 중심의 사례들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나에게 '천재이자 괴짜'로 여겨졌던 인물들이 하나둘 떠오르며, '아, 그들이 그랬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 깨달음을 나 자신에게 적용할 차례이다.

수많은 좋은 자기계발서들이 그러하듯, 결국 중요한 것은 본인이 직접 행동으로 옮겨야 의미가 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고양감이나 성취감을 잠깐 느낄 뿐, 실제로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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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소설, 향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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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1998년, 약 이십일 곱 해 전에 세상에 내놓은 조경란 작가의 소설 속에서는 짧은 문장들이 이어져 끝없는 전개를 이루며, 독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 마력을 발휘한다. 마치 한 획으로 완성된 그림처럼, 글은 유유히 흘러간다.

외로움과 고독의 심연에서 벗어나려는 스무 살의 신이경. 그녀가 바라본 세상은 어둡고 쓸쓸하기만 하다. 그녀의 젊음에서는 싱그러움이나 새로움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나누는 도시락, 김치통, 검정고시용 학습지, 남자의 방 등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미묘한 소통의 창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외로움 속에서,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사물로 대신하려는 시도를 훔쳐본 것이라고.

그러나 결말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모와 남자는 현실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외할아버지는 세상을 등지는 모습으로 플롯에서 그렇게 멀어졌다. 이경, 외삼촌, 그리고 양미순은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이경의 어두컴컴한 삶 앞에, 어떠한 희미한 빛이 비칠 것인가.

'움직임'이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느낀 '감정 동선'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이경의 시선을 따라 펼쳐지는 공간과 환경에 대한 움직임이다. 이는 마치 그녀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맥락 내내 같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둘째, 인물들 간에 서로의 마음을 나누려는 애달픈 노력의 움직임이다.

셋째, 심하게 엉킨 인생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삶을 모색하는 움직임이다.

그리고, 작품을 읽는 내내 잔잔하게 소용돌이치는 나의 감정 움직임이다. 이경이 오로지 위로를 받았던 말없는 화초처럼, 나 역시 '너와 함께 있다'고 조용한 안부를 전하고픈 감정의 흐름.

백 미터 달리기를 한 뒤 밭은 숨으로 막 내쉰 것 같은, 나의 속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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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지배 사회 -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 그에 반항하는 인간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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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로 유전자의 권력을 설파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유전자의 손에 운명을 맡기는 듯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좋은 유전자를 타고나야만 대를 이어 번영할 수 있다는 믿음은 많은 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하지만 최근 도킨스의 말이 재해석 되고 있는데, 유전자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발달 과정에서 진화생물학적으로 유리한 차원으로 나아간 것이고, 그 과정을 '이기적'이라 칭한 것일 뿐,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어떤 학자는 아예 ‘이기적’이라는 말을 빼라고 한다).

지난 거의 반세기 동안, 유전자와 진화를 둘러싼 논의는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 왔다. 분야를 두루 다룬 책이 없었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탄생한 이 책의 저자, KAIST의 최정균 교수는 '유전자 지배 사회'를 통해 현대 사회의 불평등, 혐오, 착취, 능력주의를 유전자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책을 읽어본 입장에 의하면 그간 지배해 온 ‘유전자 만능 설’에 대한 인식이 책에 실린 각종 검증된 데이터와 논문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중 정치 분야를 논한 것이 흥미로웠는데, 유전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역할을 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정치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결국 우리 뇌 속 구조의 차이와 그에 따른 세로토닌 비율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 물질은 사회적 서열과 위계질서를 조성하는데,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안정성과 질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이 물질이 더 높게 측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유전자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사회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전자에 지배당하는 존재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유전자가 우리 삶의 방향을 일정 부분 제시할 수는 있으나, 우리의 선택과 노력이 유전자보다 ‘절대 가볍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유전자가 제시하는 '상식'적이 범위를 넘어선 다양한 문제들과 맞서 싸우며 오늘날까지 발전해 왔다. 인간의 행동이 '이로울 것'이라는 기준에 따라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행동이 유전자의 진화를 끌어냈다고 보면 어떨까. 수많은 피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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