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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ㅣ 소설, 향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5월
평점 :
'움직임'. 1998년, 약 이십일 곱 해 전에 세상에 내놓은 조경란 작가의 소설 속에서는 짧은 문장들이 이어져 끝없는 전개를 이루며, 독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 마력을 발휘한다. 마치 한 획으로 완성된 그림처럼, 글은 유유히 흘러간다.
외로움과 고독의 심연에서 벗어나려는 스무 살의 신이경. 그녀가 바라본 세상은 어둡고 쓸쓸하기만 하다. 그녀의 젊음에서는 싱그러움이나 새로움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나누는 도시락, 김치통, 검정고시용 학습지, 남자의 방 등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미묘한 소통의 창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외로움 속에서,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사물로 대신하려는 시도를 훔쳐본 것이라고.
그러나 결말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모와 남자는 현실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외할아버지는 세상을 등지는 모습으로 플롯에서 그렇게 멀어졌다. 이경, 외삼촌, 그리고 양미순은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이경의 어두컴컴한 삶 앞에, 어떠한 희미한 빛이 비칠 것인가.
'움직임'이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느낀 '감정 동선'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이경의 시선을 따라 펼쳐지는 공간과 환경에 대한 움직임이다. 이는 마치 그녀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맥락 내내 같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둘째, 인물들 간에 서로의 마음을 나누려는 애달픈 노력의 움직임이다.
셋째, 심하게 엉킨 인생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삶을 모색하는 움직임이다.
그리고, 작품을 읽는 내내 잔잔하게 소용돌이치는 나의 감정 움직임이다. 이경이 오로지 위로를 받았던 말없는 화초처럼, 나 역시 '너와 함께 있다'고 조용한 안부를 전하고픈 감정의 흐름.
백 미터 달리기를 한 뒤 밭은 숨으로 막 내쉰 것 같은, 나의 속마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