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그림들 - 기묘하고 아름다운 명화 속 이야기
이원율 지음 / 빅피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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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환상과 현실, 잔혹과 슬픔이 휘몰아치는 위험하고 매혹적인 그림 이야기

 

 

아름답지만 뭔가 기묘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금빛 드레스를 입은 고운 여성이 꽃과 함께 물에 동동 떠 있는 모습. 눈은 가느다랗게 떠 있고,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다. 초록 잎사귀들로 둘러싸인 고요한 풍경 속에서, 그녀는 마치 깊은 휴식에 잠긴 듯했다.

 

아름다움에 취해 더욱 찬찬히 살펴보니, 그림 속 그녀의 표정이 어딘가 수상하다. 미동도 없는 듯한 자세와 창백한 낯빛. 대체 이 여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 봤을,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Ophelia), 1852>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언뜻 보면 아름답지만, 기구한 여인의 죽음을 담고 있다. 이원율 작가의 <무서운 그림들>은 이러한 작품들의 숨은 이야기를 풍부하게 풀어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이 많지만, 이 책에서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명화 속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선보인다. 이것이 다른 미술책들과 차별화된 점이다. 단순한 감상을 넘어서 작품 속 숨은 이야기, 작품 해설, 당대 사회와 작가의 인생 등을 하나씩 풀어가며 열아홉 작품을 소개한다. 마치 친절한 도슨트가 옆에서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것 같다. 흥미와 재미를 동시에 잡은 것은 물론이다.

 

유명한 작품이지만 그 배경과 얽힌 이야기들이 궁금하다면, 유명하지 않아도 숨겨진 보물 같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대하고 싶다면, 이 책이 당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전래동화를 읽듯 흥미롭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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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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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빚어내는 산문, 그 맛은 어떨까? 백수린 작가의 에세이는 고소하고 담백한 느낌이 들었다. 알록달록한 화려한 디저트보다는, 약간 심심해도 건강한 깊은 맛이 나는 통밀빵 같은. 나는 아무래도 자극적이지 않은 후자가 좋다.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언제 찾아봐도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은 안정감이랄까.



빵과 책을 굽는 마음으로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스럽게 엮어낸 글. 그녀의 책을 펼칠 때마다 코끝을 간질이는 고소한 냄새가 스며든다. 요즘처럼 우중충한 날, 그래서 마음도 헝클어지는 날, 동네 작은 베이커리 앞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그 유혹적인 냄새.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천연덕스럽게 다가와 기분 좋게 끌려들게 하는 경험, 결국 빵집에 들어가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바로 그 냄새 말이다.



이윽고 들어간 가게의 진열대에 갓 구워져 나온 따끈하고 뽀얀 빵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것만 봐도 한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이 책을 펼칠 때마다 그런 추억이 떠올라 그날의 기분 좋음을 다시 느끼게 한다.



시끄럽지 않은 일상과 단상, 빵에 대한 추억으로 버무려진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비슷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그녀도. 나에게는 그저 지나가 버린 순간들이었는데, 그 순간을 붙잡아 글로 표현한 그녀를 부러워하며 애꿎은 커피를 마셨더랬다. 이 글은 그런 추억과 낭만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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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굽는 마음이란, 정성스레 무언가를 창조하여 주고 싶은, 타인을 향한 사랑의 마음일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요리를 보고 놀란 그의 표정과 이내 환한 웃음, 맛을 보고 나서 세상 맛있다고 표현해 줄 때 느끼는 환희. 그 순간을 보고 싶어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대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은 결국 기뻐할 그의 모습을 보며 내가 충만함을 누리는, 결국은 나를 위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여, 나의 부모가, 나의 연인이, 나의 반려자가, 나의 아이들이 무언가를 정성스레 준비할 때는 기쁨 가득한 표정과 사랑 넘치는 언어를 미리 준비해 두자. 필요하다면 연기력도 최대한 동원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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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 수업 - 느끼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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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산 후기



노란 머리의 한 소녀가 창문에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녀는 무엇을 그리 깊이 생각하고 있을까요? 혹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 시대의 따뜻한 에세이스트, 정여울 작가님께서 새 작품을 내셨습니다. 

책의 제목은 『감수성 수업』입니다. 새파란 바탕에 귀여운 소녀와 푸른 잎의 향연이 청량한 기운을 내뿜고 있네요.



 

정여울 작가님은 감수성 세포가 무척 발달해 있으세요.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시는 법이 없죠. 그 찰나의 섬세한 감정을 아름다운 글로 창조해 이렇게 책으로 엮어내셨습니다. 

이번 책은 ‘자극 과다의 시대’에 무엇 하나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나다운 삶의 감각을 깨우는 43번의 감성 수업’을 제안합니다.



 

1부는 <개념과 낱말>, 2부는 <장소와 사물>, 3부는 <인물과 캐릭터>에 대해 다루며 작가님만의 언어와 일화들로 재구성해 주십니다.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이곳저곳 여행시켜 주시지요. 중간중간 인용된 명언들을 꺼내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마지막에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로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시고요. 

작가님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새삼 다가오는 것이 느껴질 겁니다.

 



이승원 작가님께서 촬영하신 사진들도 이 작품에 풍미를 더하는 요소로 등장합니다. 

글과 그림이 한 몸이 되어 글로써 승화되는 것이지요. 

저는 이 책을 한 번에 읽기보다는 자기 전에, 또는 지친 날에, 힐링 받고 싶을 때 천천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쁜 시대에 살고 있으니, 때로는 호흡을 가다듬고 심호흡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이 책이 그 쉴 틈을 제공합니다.



 

내가 나의 고통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타인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공고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시작을 감수성 근육 키우기부터 함께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직 정여울 작가님만이 할 수 있는 감수성 수업을 통해서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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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말들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조소연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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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이라는 자전적 산문을 읽었다. 이 책은 어머니의 자살 이후 그녀의 삶을 회고하며 기록한 작품이다. 글을 읽으며 과거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 보았다. 외면했던 고통의 기억을 글로 남기는 것은, 마치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듯한 통증과 같을 것이다. 글을 쓸 때마다 매번 그 아픔을 견뎌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은 서서히 흐려지고, 도려낸 자리에는 거칠지만 새로운 살이 돋는다. 이전에 부드럽고 매끈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상흔과 같은 글이 남는다. 회고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한트케의 작품과 이 작품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고통의 기억을 마주하고, 그것을 기록하며,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 고인을 자유롭게 하는 과정. 두 작품 모두 글쓰기가 치유와 해방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조 작가는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을 토해내듯 꺼내놓았다. 어머니의 과거와 불륜과 죽음을. 지난한 가정사와 가족 간의 관계를. 자신과 타인의 건조한 관계를. 모든 것이 불안하고 위태로웠던 나날들을.

 

시간이 흘러서인지 차가운 머리로 글을 써 내려간 듯한 느낌은, 자신의 서사에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모습을 유지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의 죽음에서도 울음을 터트리지 못하고 담담했던 그녀. 자신은 괜찮다며 바쁜 일상의 틈으로 무작정 밀어 넣었던 그녀. 글이 이성적일수록 그녀가 더 외롭고 애처로워 보였다. 마치 비 맞은 새처럼.

 

그러나 곧, 글로써 자유로워진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글의 문맥에 맞게 단어들을 정교하게 조율했다. 작품의 제목을 다시 본다. 태어나는 말들.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왜 그녀 자신이 아니고 우리라고 표현했을까? 그렇다. 그녀는 자신에게 집중했던 시선을 세상의 여성들에게로 돌렸다. 그들을 위해 단어를, 언어를 재정의하며 길어 올렸다.

 

나의 이야기는 당신에게 가닿기 위해 태어났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 부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언어, 당신의 말, 당신의 몸으로 들려달라.

- 작가의 말 에서

 

이 글을 읽는 동안 독자는 그녀의 아픔과 치유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공감과 위로를 전해준다. 당신도 이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 이야기를 세상과 나눌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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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날 대신해 소설, 잇다 5
김명순.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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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날 대신해는 김명순과 박민정 작가의 작품을 하나로 묶은 책이다. 이 책은 여성에게 글쓰기가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 작가들의 궤적을 보여주는 '소설, 잇다' 시리즈의 한 일환이다.

 

김명순과 박민정 두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나는 주인공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을 깊이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을 단순히 이러한 감정들로만 정의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독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 감정들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였다.

 

김명순의 작품에서는 외로움과 고독에서 비롯된 다양한 고통을 볼 수 있었다. 억압적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학대와 가부장제의 남성 중심 사상으로 인해 느끼는 좌절감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이러한 피해의식이 작품 속에서 깊이 억눌린 형태로 표현되었다고 생각된다.

 

박민정의 작품에서는 남성에 의한 외로움과 고독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같은 여성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입은 피해에서 오는 좌절감을 더 많이 경험한 것으로 이해했다. 믿고 따랐던 여성에 대한 신뢰가 칼날로 돌아오는 상황이 그러했다. 의심이 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는 죽음. 이러한 요소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작품의 주제와 배경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오늘날 여성 작가들의 글쓰기 활로를 열어준 근대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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