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본능 어디에서 오는가
이수정 외 지음 / 학지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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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고 등장하는 사건·사고 뉴스. 하도 끔찍한 소식들을 접하다 보니 현대인들의 범죄 감수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희대의 사건이 아니면 뉴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건들이 많으니까, 아예 화젯거리도 되지 않으니까.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버리니까,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이니까.




최근에도 묻지마 폭행, 영유아 폭행 및 살해, 사이코패스 사건 등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사건들이 연달아 보도되었다. 갈수록 뉴스를 보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너도나도 현생, 갓생 살기에 등이 터지는 생의 한가운데서, 살기 등등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안 그래도 힘든 현생에 불안과 공포감을 추가로 업게 되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현실조차 마주하기 어려운 인간들은 마음 불편한 뉴스에서 유튜브, OTT로 얼른 눈을 돌려 가볍고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시시각각 마음을 달랜다. 그래야 다음 날 비슷한 현생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일종의 살고자 하는 '자기방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를 비롯해, 프로파일러, 심리 박사 등 현장에서 범죄 사건과 관련하여 심리 전문가로 활동한 5명이 지난 20년간 직접 겪었던 것 중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재구성한 사례집이다. 왜 인간이 인간의 탈을 쓰고 악마가 되는지, 그 기원을 찾기 위한 추적서로 보아도 무방하다. 책에 쓰인 사례들을 보며 범죄자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범죄를 시작하며, 그들의 사고회로는 어떤 식으로 가동되는지 독자가 곁에서 쫓아갈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다, 그러기에 이 책은 불편한 책이다.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이 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사악한 본성의 근원이란 성선설·성악설을 따지는 거리감 있는 주제가 아니다. 현생·갓생을 사는, 모두의 발끝 앞에 놓여있는, 인간의 추악한 부분을 직면함으로써 '함께 살아갈 방법'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너, 나, 우리 그 누구라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는 가정을 현실적으로 체감하기 위해서이다.

청소년 중독문제부터 연쇄살인, 스토킹 범죄, 성범죄,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정신질환자 범죄 등 18편에 달하는 사건들을 만날 수 있다. 픽션 같은 논픽션에 마음이 힘들 것이다. 나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책을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중간에 다른 것으로 환기해야 했다.

그래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소설처럼, 영화처럼 마구 빠져들어 감정 이입하지 말 것. 내가 '범죄 수사관이다, 프로파일러이다' 하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문제 해결 차원의 시각으로 보면, 사건의 궁극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조금 더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읽으면서 내리 들었던 생각은, 주요 성격과 자아상이 형성되는 유·아동 시절에 부모-자녀 간의 유대감과 애착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였다. 사람의 평생을 좌지우지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불우한 시절을 겪었다고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 곁에는 부모가 아니어도 존재 자체를 지지해 주는 단 한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 사건의 베이스가 그러하다. 가난하고, 부모가 없거나, 불행하거나, 아이를 존재 자체로 대우하지 않거나, 편애하거나, 비교하거나, 무시하는 등의 인격모독과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악의 씨앗을 품고 싹을 틔우다가 어떤 트리거(trigger)를 만나 본격적으로 줄기를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그 끝이 인간을 향해 겨누는 순간, 칼이 되고 착취가 되고 주먹이 된다. 문제는 이것이 대물림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한 인간의 평생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부모까지도 조사해야 하는데, 가해자에게 영향을 준 부모는 또 어떤 부모를 만났길래 그렇게 되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범한 사람이 사회에서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다가 별안간 악마로 돌변하여 범죄를 저지른다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것과, 특별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해서 범죄자에게 '정신질환'으로 섣부르게 단정 짓지 말 것도 당부하고 있다. 내가 부모라면 어떻게 자녀를 대해야 할지, 교사라면 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떤 진실한 조언과 따스한 감정을 줄 수 있을지 신중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곧 성숙한 사회로서의 책임과 국가의 국민이 안전하게 살 권리를 되묻는 것과 동일하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나, 솔직하게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학지사 #사악한본능어디에서오는가 #범죄심리

#이수정 #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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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살인법 - 독약, 은밀하게 사람을 죽이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
닐 브래드버리 지음, 김은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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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에는 어떤 매력이 있다.

… 리볼버의 총알이나 둔기의 조악함을 찾을 수 없다.'

- 애거사 크리스티 <미술 살인>, 1952



20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추리 소설 작가로 꼽히는 '애거사 크리스티'는 작품에서 주요 역할을 할 아이템으로 '독약' 또는 '독극물'을 자주 사용하였다. 작품에서 약 중독의 증상을 너무 자세히 묘사하는 바람에 어느 약학 저널에서는 '그녀가 전문적인 약학 훈련을 받은 것이라 믿고 싶다'라는 글이 실렸을 정도라고 한다.



책의 제목인 『한 방울의 살인법』은 약물의 두 가지 얼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써, 한 방울의 미세한 용량 차이로도 인간에게 치료제 또는 독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학부 때부터 약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보았는데, 약 자체에 관한 특정 화학식이나 구조보다는 약물의 작용, 원리, 메커니즘을 알아가는 데 재미를 느끼는 편이었다. 물론 암기량이 어마어마하여 시험점수는 매번 별로였지만, 이 책처럼 약물과 스토리를 엮어 약의 기원부터 기전, 각종 약리 작용을 배웠더라면 더 쉽게 이해하고 오래 기억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에서 소개한 것 중 인상 깊었거나 스스로 연결한 몇 가지를 들어본다.


1. 사방이 노랗게 보인다, '디지털리스Digitalis'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유명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를 통해 노란색이 자주 이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왜 유독 노란색이 그에게 상징적인 색이 되었을까?


이를 분석한 하나의 시나리오로 약제 '디지털리스'를 꼽고 있는데, 오늘날 강심제로 쓰이지만, 당시에는 우울증이나 구토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인 이를 과량 복용하였을 경우 '황색 시력'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가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하였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고흐를 돌봤던 주치의를 그린 작품 <닥터 가셰 초상화>에서, 의사 앞에 놓인 디지털리스 약초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추측되었다.


하지만 현대 의학계에서는 고흐의 노랑을 단순히 황시증의 결과라고 단정지을 수 없으며, 디지털리스의 중독에 의한 황시증은 파란색과 보라색에 대한 지각이 없어지지만, 고흐의 작품에서는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반박하였다.


하지만 현대 의학계에서는 고흐의 노랑을 단순히 황시증의 결과라고 단정지을 수 없으며, 디지털리스의 중독에 의한 황시증은 파란색과 보라색에 대한 지각이 없어지지만, 고흐의 작품에서는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반박하였다.


2. 영화<헤어질 결심>의 서래가 사용한 '펜타닐(Fentanyl)'

책에서 모르핀(Morphine)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모르핀은 아편의 주요 성분으로 마약성 진통제이다. 중추 신경계에 직접 작용하여 급성이나 만성통증을 줄이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지만, 의존성과 내성이 주요 문제점으로 꼽힌다. 또한 중증 부작용으로 호흡수 감소와 심한 저혈압이 나타나기에 약물을 투여받는 환자에게 주의 깊은 모니터링을 해야함은 필수이다.

이에 비교하여 요새 남용 문제로 자주 언급되는 펜타닐(Fentanyl) 또한 마약성 진통제지만 효과는 모르핀보다 100배 이상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건강한 일반인도 2mg의 극소량으로 근육경직, 호흡곤란, 혼수상태,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고위험 약물에 속하는데, 중국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서래는 약물의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로 이 약물을 이용하여 병든 모친을 안락사시켰다.


3. 김고은, 엄지원의 주연으로 열연한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푸른 난초

드라마의 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상징적으로 나타난 정체 모를 푸른 난초.

책에서는 늦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긴 고깔처럼 생긴 보라색 또는 푸른색의 '투구꽃'으로 소개하였다.

영어 이름으로 '몽크스후드monkshood', '울프스베인woflsbane', '데블스 헬멧devils helmet' 등으로 불린다고 하였는데 '베인bane'이라는 말이 즉 '독'을 일컫는다. 식물에서 얻은 독을 화살촉에 발라 사냥하는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3. 김고은, 엄지원의 주연으로 열연한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푸른 난초

드라마의 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상징적으로 나타난 정체 모를 푸른 난초.

책에서는 늦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긴 고깔처럼 생긴 보라색 또는 푸른색의 '투구꽃'으로 소개하였다.

영어 이름으로 '몽크스후드monkshood', '울프스베인woflsbane', '데블스 헬멧devils helmet' 등으로 불린다고 하였는데 '베인bane'이라는 말이 즉 '독'을 일컫는다. 식물에서 얻은 독을 화살촉에 발라 사냥하는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약이냐 독이냐를 가르는 것은 '용량'이다. - 파라켈수스

이외에도 다양한 약물을 실제 사례와 연결하여 어떻게 범죄에 이용되었는지, 약의 작용과 부작용 뿐만 아니라 약물기전까지 설명하고 정해진 용량을 벗어날 경우 인체에 미치는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자신의 주된 관심사인 미스터리와 독약에 대해 오랜 기간 동안 연구한 '닐 브래드버리(Neil Bradbury)' 교수의 픽션 같은 논픽션 과학 인문 도서를 올 여름, 함께 즐겨보자.

약이냐 독이냐를 가르는 것은 '용량'이다. - 파라켈수스

이외에도 다양한 약물을 실제 사례와 연결하여 어떻게 범죄에 이용되었는지, 약의 작용과 부작용 뿐만 아니라 약물기전까지 설명하고 정해진 용량을 벗어날 경우 인체에 미치는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자신의 주된 관심사인 미스터리와 독약에 대해 오랜 기간 동안 연구한 '닐 브래드버리(Neil Bradbury)' 교수의 픽션 같은 논픽션 과학 인문 도서를 올 여름, 함께 즐겨보자.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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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설계자 - 장르불문 존재감을 발휘하는 단단한 스토리 코어 설계법
리사 크론 지음, 홍한결 옮김 / 부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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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읽었을 뿐인데 어느덧 마지막 장까지 읽은 경험, 드라마 첫 편만 보았는데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날이 새도록 시리즈를 내리 보았던 경험이 있는가? OO 폐인이라는 말도 한참 유행했었다. 그만큼 열혈 독자, 시청자라는 의미를 세게 표현한 것이다.

특히 스토리와 플롯이 탄탄하거나,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들은 종종 이 '폐인'들을 양산한다. 영상물은 배우자들의 연기, 연출, 영상미 등 다양한 기법이 동원되지만, 책은 오로지 글로만 승부하기 때문에 독자들을 끝까지 끌고 갈 힘이 강해야 한다. 결국은 영상물이나 책이나 주된 스토리가 개연성이 있고, 메시지가 있으며 보는 이를 사로잡을 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광팬들이 구전을 통해 다른 이들을 작품으로 끌어들이는 자연스러운 마케터 역할을 할 테니까.




책 『스토리 설계자』 는 스토리 컨설턴트로 유명 영화사에서 스토리 각색을 맡고,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는 일명 '작법 전수자' 리사 크론이 쓴 작품이다. 스토리계의 대가가 썼으니, 자신의 책에서는 스토리 설계법을 어떻게 적용했을까 궁금했는데, 설명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설계의 기승전결부터 주요 포인트를 흥미롭게 집어주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다.

책을 요약하기 보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주요 포인트를 적용한 예시를 들면서 글을 써볼까 한다.

최근 "연진아, 나 되게 신나."로 박연진, 문동은 신드롬으로 각종 상을 휩쓴 『더 글로리』를 타겟으로 잡았다.

기억에 남는 많은 대작들이 많지만, 『파리의 연인』, 『신사의 품격』, 『태양의 후예』, 『시크릿 가든』 등을 탄생시킨 김은숙 작가의 특별한 스토리 작법이 있는지 대응해보기 위해서이다. 김은숙 작가는 스토리, 플롯, 인물과의 갈등, 반전, 메세지 등 사람들을 사로잡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녀는 어떤 힘으로 작품들을 설계하고 써내려갔을까?

잘 구성된 스토리는 우리가 그 세계에 빠질 때 쾌감, 즉 복잡한 현실에서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스토리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증가한다. 이는 주인공의 내적변화를 겪으므로써 동시에 희노애락을 경험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들의 뇌 활동을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으로 보면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로서의 뇌활성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래서 드라마 속 주인공과 자신을 연결시켜 대리만족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닐까?

거의 모든 스토리는 클리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출중한 창조력이다.

영국 문인 새뮤얼 존슨은 "작가의 가장 매력적인 능력 두 가지는 새로운 것을 친숙하게 만드는 것과 친숙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1. 클리셰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은 부모의 보살핌은커녕 지독한 가난과 알코올 중독 홀어머니의 폭력 밑에서 불행하게 자랐다. 사회적 약자인 그녀는 왕따를 넘어선 학교 폭력에 무자비하게 노출된다. 소설과 시나리오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다. 여기서 출발하는 작품의 세계는 김은숙 작가의 새로운 창조력으로 재탄생된다.

2. '만약에'를 설정

문동은이 현실에 적응하며 그저 그런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삶에 도전해 볼 것인가?

만약 얼굴에 점이라도 찍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복수극을 펼친다면?

3. 나만의 주인공

『더 글로리』에 나오는 인물들은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주를 이룬다. 박연진, 전재준, 하도영, 이사라, 최혜정, 손명오, 주여정 등. 각자의 캐릭터가 분명하니 누구를 초점으로 전개하느냐에 따라 다른 작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다들 주인공 같은 역할일지라도 핵심 주인공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인공 문동은의 눈을 통해 나머지 인물과 연관된 사건의 중심을 보게 된다.


4. 주인공이 원하는 그것, 왜?

친구들의 폭력으로부터 내내 당하던 동은은 더 이상 같은 삶을 살지 않기로 한다. 이미 자신은 망가졌으니 홀로 세상을 등지기에는 너무도 억울하다. 자신이 겪었던 처절한 고통을 그들도 느끼게 할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은 운명적으로 착착 맞아떨어진다. 이 부분은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이것이 작품의 중요한 플롯이다. 관객들은 알면서도 다음을 궁금해한다. 결국, 사람은 어떠한 이유로도 일방적이고도 비인간적인 폭력을 당할 수 없고 주인공에 동화된 관객들은 통쾌한 복수를 갈구하기 때문에.

5. 주인공의 세계관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은 작가가 창조할 세계 전체를 한눈에 본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세계관이다. 즉, 주인공이 겪게 될 '내적 변화와 관련된 범위'에 한해서다. 스토리와 관련된, 주인공의 '주관적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저 세상에 복종하며 살아왔던 동은은 끔찍이 겪어왔던 사건들을 가해자들에게 되새겨 주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꾸민다. 같은 인간이기에 누구도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하거나 당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복수극을 진행하며 느꼈을 동은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속이 마냥 시원했을까? 자신도 괴로워하지만 시작한 이상 멈출 수는 없다. 그 누구에게도 정을 주거나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도우미 강현남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주여정을 만나며 원망, 미움, 절망 등에서 조금씩 회복되는 과정을 천천히 보게 된다.

6. 주목할 장면

스토리가 계속해서 고조되기 위해서는 중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이 드라마의 주요 장면을 꼽으라면 1. 문동은이 당한 폭력(학폭, 어머니) 2. 문동은의 복수극(주된 내용) 3. 문동은의 마음 변화 이 세 가지로 꼽겠다. 사이사이 극적인 주제와 메시지를 던지면서 관객은 작품에 더 몰입하게 된다. 이것은 책에서 제시한 장면 카드로 더욱 구체화할 수 있다.

7. 스토리를 어디에서 끝낼 것인가?

극이 전개될수록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간의 갈등을 치열하게 보여줬다면, 장면의 끝은 어떻게 매듭을 지을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결말을 미리 생각해 두고 작품을 연결하는 전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내 긴장감과 스릴을 보여주다가, 결국 이 모든 게 꿈이었다고 관객에게 허무함과 실망감을 불러일으킬 테니까(아마 생각나는 작품들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더 글로리』에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통쾌함, 서늘함, 안타까움 등등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극이 끝에 다다를수록 희망도 보았다.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지만, 인간으로부터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주인공 스스로 깨닫게 하면서 관객들도 같은 감정을 전이 받게하여 결말을 이끌기 위한 주요 테마로 이용했다.

8. 스토리의 논리. '무엇'에 일일이 '왜'를 깔아 두기

찰진 구성을 자랑하는 작품들의 대부분은 굳이 왜 이런 플롯을 심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숨어있다. 에피소드를 심고 주인공이 왜 그런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왜 사건의 발단이 되었는지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그것이 스토리의 전개와 절정, 결말을 짓는 중요 요소가 된다. '이 작품은 배우의 연기력이 다 했다.' 이런 평이 나오는 이유는 스토리의 개연성과 논리가 부족해서였을 것이다.

9. 배경 스토리도 스토리이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이라는 주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일진, 빵셔틀' 등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고데기 사건은 너무도 충격적이었으며 진화된 악행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인 주요 사건임과 동시에 근절되어야 할 문제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하고, 주의 깊게 조명함으로써 악에 빠진 이들이 결국 파멸해 가는 모습을 작품으로 말하고 있다. 사람은 사람으로 절망하고 치유된다는 메시지도 함께 일러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10.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두 가지

글을 쓰다 보면 강력한 아이디어에 매몰되어 이야기의 중심이 흐릿해질 때가 있다. 스토리 전개는 감정을 이입해서 쓰지만, 퇴고 시에는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

리사크론이 강조한 두 가지는 첫째, 모든 것에 '왜'라는 질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작품에 서술되는 사건, 캐릭터, 감정의 변화, 주요 메시지 등은 '왜'라는 질문에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의 두께 또는 영상물의 횟수와 시간만 늘어지는, 관객들에게 외면받는 작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둘째, 모든 것에 대해 '그래서?'라고 묻는다. 독자가 왜 이것을 알아야 하나? 스토리 전개에 도움이 되나? 말하려는 요점이 무엇인가? 이 두 가지는 작품을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요건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전하는 일방적인 앵무새가 되지 말고,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독자를 생각하는 글,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스토리텔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책을 보면서 스토리 전개에 대해, 작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꽤 구체적인 사례와 논리로 공감하게 했다. 더불어 하나의 작품을 쓰는 일이란 얼마나 힘들고 고된 작업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우리가 마냥 소비하는 훌륭한 작품들, 그저 별점 몇 점, 평가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입장, 연출자의 입장, 배우의 입장 등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 쓰기를 고려하거나, 작품을 평가하려는 자는 창작물을 다각도로 접근하고 이해하기 위해 일독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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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지만,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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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 - 내 이름의 새로운 철자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디플롯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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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ZAMI)

나는 이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 책에서는 '자미'를 서인도제도의 캐리아쿠섬에서 친구 또는 연인으로 함께 일하는 여성을 일컫는 단어라고 한다.

이 책을 쓴 저자 '오드리 로드'는 1934년 2월에 뉴욕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캐리비안 이민자 출신 가정에서 자란 탓에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였으며, 가족 간의 특별한 살가움이나 다정함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가 굉장히 엄격하고 규율적이었으며 때로는 매정한 사람으로 비치는데, 백인 사회에서 흑인들이 겪어야 할 차별이나 부당함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자의적인 방어기제를 내세운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현실을 바꾸고 싶어 했지만, 세상은 무자비했으므로 차라리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한 것이다.

나는 삶을 필요로 하는 만큼, 확인을, 사랑을, 나눔을 필요로 하는 흑인으로 자랐다.

어머니의 내면에 있는 충족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본 뜬 대로.

(...)

어머니는 백인 남성들의 혀에서,

당신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인해

배운 온갖 교활하고 견제적인 방어술을

내게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이런 방어술을 사용해야 했고,

그것들을 통해 살아남았으며,

동시에 그것들로 인해 조금씩 죽었다.

- 책 속에서


성장하면서 오드리는 자신이 백인인지, 흑인인지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자랐다. 그것은 어머니의 고된 방어벽이 곳곳에서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녹록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을 곧 겪게 되는데 오드리의 학교에서 임원 선거를 하게 된 것이다. 오드리는 학년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고, 우등생이 임원이 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자진해서 출마한다. 그녀의 엄마는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본인이 하는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지만-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엄마의 충고였다- 오드리의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우등생이었지만 선거에서 보기 좋게 낙방한 그녀는 이유가 본인이 흑인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테이블에 앉아 먹지 못하고 쫓겨나는 사건을 연달아 겪으면서 그녀는 이 부당한 사회에 대한 분개의 목소리를 더욱 키우게 된다.

부모님은 이런 부당한 일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런 취급을 받을 것을 예상하고

몸을 사렸어야 한다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화가 났다.

나와 같은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한테서

내 분노를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 책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성에 대한 성애(性愛)'인데, 그녀가 왜 여성에게 성적으로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대목이다. 날 때부터 오드리는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분명 남성과도 관계를 맺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정이 폭력적이었다. 즉, 일방적인 남성에 의한 과격한 폭행이었다. 그 과정에서 오드리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믿기 어려운, 당시 불법적인 낙태 시술을 받았고 말하지 못할 고통을 얻었다. 그래서일까? 이후로 마음이 통하고, 대화가 통하고, 섬세한 감정이 통하는 또래 여성들, 연상의 여성들과 몸과 마음을 나누었다. 그녀와 그녀들은 비폭력적인, 섬세한, 비 일방적인, 진실한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진저에게 구애하는 것을, 그리고 우리 둘만 있는 곳에서 사랑에 빠진 구혼자 취급을 받는 것을 즐겼다. 그러면서 나는 권력과 특권을 느꼈고, 비록 그것이 어떤 면에서 보면 역할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환상에 불과했을지언정 나는 의기양양해졌다.

책 속에서

나는 이 대목을 읽고 조금 혼란스러웠다. 레즈비언에서 남성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만족하는 건지, 자신이 흑인일 때 가져보지 못했던 어떤 우월감, 권력 등을 맛본 건지, 정말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언어의 번역에서 오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내가 못 읽어서 그런 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글을 읽을수록 오드리는 섬세하고도 지적이며, 자기 일에 충실하고, 솔직한 여성들을 사랑했다. 마음을 다해서 사랑한 것이다.

살아가며 온갖 모욕적인 시선과 엄격한 잣대가 시시때때로 들이닥쳤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녀는 무슨 마음으로 밀려가는 생을 붙잡았을까.

나는 젊고, 흑인이고,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한다.

대체로 내가 진실과 빛과 열쇠를

지니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대체로 순전히 지옥같았다.

- 책 속에서


"아무 일이 없어. 그냥 똑같아. 평범한 나날들이야."

누가 안부를 물어보면, 대부분 저렇게 이야기한다.

"아무 일 없이,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보통 사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살아보면 알 거야."

대책 없이 갑자기 이 말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 왜 평범한 나날들을 지루하다고, 재미없다고, 잉여 인간이라고, 그렇게 치부해 버리는 걸까.


역설적인 일이지만, 사회 전반에서

그러하듯 내가 흑인 사회건 동성애자

사회건 하위 사회에서도 남들과

다른 입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는 지나치게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받아들여지려고, 펨으로 보이려고,

이성애자처럼 굴려고,

이성애자처럼 보이려고,

제대로 된 사람으로 보이려고, '

괜찮아' 보이려고, 호감을 사려고,

사랑받으려고, 승인받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저 살아 있기 위해,

아니 인간으로 남아 있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지는

미처 몰랐다.

그리고 그 노력을 하느라

내가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하는지도 몰랐다.

- 책 속에서


아마 이 다짐을 하고 난부터일 것이다. 오드리는 자신을 챙겼고, 대담해졌으며, 더욱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여인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상처를 잊지 않도록 노력했다. 흑인이라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그에게 떳떳한 자의식이며 정체성이었다. 그녀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을 맘껏 표현할 시인이 되었고, 여성주의자 및 반인종차별주의자, 강연자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한 사람은 그 사람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또, 어떠한 신념이라도 인간을 계급으로 나누거나 차별을 하여선 안 된다. 나와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여 공존하는 방법을 설파한 그녀는 이런 말을 남긴다.

이제 우리가 스스로를 정의하고

우리 자신이 되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으로 작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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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 - 내 이름의 새로운 철자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디플롯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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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은 내가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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