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 - 내 이름의 새로운 철자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디플롯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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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ZAMI)

나는 이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 책에서는 '자미'를 서인도제도의 캐리아쿠섬에서 친구 또는 연인으로 함께 일하는 여성을 일컫는 단어라고 한다.

이 책을 쓴 저자 '오드리 로드'는 1934년 2월에 뉴욕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캐리비안 이민자 출신 가정에서 자란 탓에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였으며, 가족 간의 특별한 살가움이나 다정함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가 굉장히 엄격하고 규율적이었으며 때로는 매정한 사람으로 비치는데, 백인 사회에서 흑인들이 겪어야 할 차별이나 부당함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자의적인 방어기제를 내세운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현실을 바꾸고 싶어 했지만, 세상은 무자비했으므로 차라리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한 것이다.

나는 삶을 필요로 하는 만큼, 확인을, 사랑을, 나눔을 필요로 하는 흑인으로 자랐다.

어머니의 내면에 있는 충족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본 뜬 대로.

(...)

어머니는 백인 남성들의 혀에서,

당신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인해

배운 온갖 교활하고 견제적인 방어술을

내게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이런 방어술을 사용해야 했고,

그것들을 통해 살아남았으며,

동시에 그것들로 인해 조금씩 죽었다.

- 책 속에서


성장하면서 오드리는 자신이 백인인지, 흑인인지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자랐다. 그것은 어머니의 고된 방어벽이 곳곳에서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녹록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을 곧 겪게 되는데 오드리의 학교에서 임원 선거를 하게 된 것이다. 오드리는 학년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고, 우등생이 임원이 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자진해서 출마한다. 그녀의 엄마는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본인이 하는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지만-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엄마의 충고였다- 오드리의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우등생이었지만 선거에서 보기 좋게 낙방한 그녀는 이유가 본인이 흑인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테이블에 앉아 먹지 못하고 쫓겨나는 사건을 연달아 겪으면서 그녀는 이 부당한 사회에 대한 분개의 목소리를 더욱 키우게 된다.

부모님은 이런 부당한 일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런 취급을 받을 것을 예상하고

몸을 사렸어야 한다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화가 났다.

나와 같은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한테서

내 분노를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 책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성에 대한 성애(性愛)'인데, 그녀가 왜 여성에게 성적으로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대목이다. 날 때부터 오드리는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분명 남성과도 관계를 맺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정이 폭력적이었다. 즉, 일방적인 남성에 의한 과격한 폭행이었다. 그 과정에서 오드리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믿기 어려운, 당시 불법적인 낙태 시술을 받았고 말하지 못할 고통을 얻었다. 그래서일까? 이후로 마음이 통하고, 대화가 통하고, 섬세한 감정이 통하는 또래 여성들, 연상의 여성들과 몸과 마음을 나누었다. 그녀와 그녀들은 비폭력적인, 섬세한, 비 일방적인, 진실한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진저에게 구애하는 것을, 그리고 우리 둘만 있는 곳에서 사랑에 빠진 구혼자 취급을 받는 것을 즐겼다. 그러면서 나는 권력과 특권을 느꼈고, 비록 그것이 어떤 면에서 보면 역할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환상에 불과했을지언정 나는 의기양양해졌다.

책 속에서

나는 이 대목을 읽고 조금 혼란스러웠다. 레즈비언에서 남성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만족하는 건지, 자신이 흑인일 때 가져보지 못했던 어떤 우월감, 권력 등을 맛본 건지, 정말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언어의 번역에서 오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내가 못 읽어서 그런 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글을 읽을수록 오드리는 섬세하고도 지적이며, 자기 일에 충실하고, 솔직한 여성들을 사랑했다. 마음을 다해서 사랑한 것이다.

살아가며 온갖 모욕적인 시선과 엄격한 잣대가 시시때때로 들이닥쳤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녀는 무슨 마음으로 밀려가는 생을 붙잡았을까.

나는 젊고, 흑인이고,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한다.

대체로 내가 진실과 빛과 열쇠를

지니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대체로 순전히 지옥같았다.

- 책 속에서


"아무 일이 없어. 그냥 똑같아. 평범한 나날들이야."

누가 안부를 물어보면, 대부분 저렇게 이야기한다.

"아무 일 없이,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보통 사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살아보면 알 거야."

대책 없이 갑자기 이 말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 왜 평범한 나날들을 지루하다고, 재미없다고, 잉여 인간이라고, 그렇게 치부해 버리는 걸까.


역설적인 일이지만, 사회 전반에서

그러하듯 내가 흑인 사회건 동성애자

사회건 하위 사회에서도 남들과

다른 입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는 지나치게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받아들여지려고, 펨으로 보이려고,

이성애자처럼 굴려고,

이성애자처럼 보이려고,

제대로 된 사람으로 보이려고, '

괜찮아' 보이려고, 호감을 사려고,

사랑받으려고, 승인받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저 살아 있기 위해,

아니 인간으로 남아 있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지는

미처 몰랐다.

그리고 그 노력을 하느라

내가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하는지도 몰랐다.

- 책 속에서


아마 이 다짐을 하고 난부터일 것이다. 오드리는 자신을 챙겼고, 대담해졌으며, 더욱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여인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상처를 잊지 않도록 노력했다. 흑인이라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그에게 떳떳한 자의식이며 정체성이었다. 그녀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을 맘껏 표현할 시인이 되었고, 여성주의자 및 반인종차별주의자, 강연자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한 사람은 그 사람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또, 어떠한 신념이라도 인간을 계급으로 나누거나 차별을 하여선 안 된다. 나와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여 공존하는 방법을 설파한 그녀는 이런 말을 남긴다.

이제 우리가 스스로를 정의하고

우리 자신이 되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으로 작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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