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를 견디는 법
언재호야(焉哉乎也) 지음 / 다향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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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포주의

 

팍팍하고 고된 일상에 경훈은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다. 비루한 일상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 믿었다. 그것은 헛된 착각이었고 멀어져버린 경훈과의 관계에서 도망치듯이 고향집으로 내려간 혜진. 아버지와의 추억이 가득한 고향집에서 그녀를 반기는 것은 생판 처음 보는 낯선 두 남자였다.

 

가족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우스운, 엄마라는 사람이 집을 팔아 버렸다. 당장 갈 곳이 없어진 혜진은 아버지의 집을 차지하고 있던 남자에게 무작정 사정을 했다. 우아하고 단정하게 생긴 남자는 혜진에게 제안을 한다. 이 집에 묵을 사람이 몸이 불편하니 간호할 사람을 구할 때까지 집에 머무르며 그 사람을 돌봐주기를 원하는데 혜진은 낯선 남자와의 동거 아닌 동거 외에는 작금의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목수였던 아버지가 만든 나무소파에 누워 시체처럼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이진우라는 남자. 어쩌면 분장처럼 보이기도 하는 남자의 차림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적막하지만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저 남자와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다. 잘난, 그러나 이상한 남자와 한 집에서의 생활이 걱정되는 혜진. 드리워진 앞날이 깜깜하기만 하다.

 

진한 농도로 녹여낸 씁쓸함과 퍼석하게 말라버린 혜진의 감성에 젖어들기엔 살짝 무리라고 생각했었다. 철벽은 아닌데 상처 많은 그녀가 세우는 방어벽이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고, 차츰 빠져들었고, 종국에는 나도 모르게 벅차오르는 감정에 울컥해졌다. 따뜻한 온기가 무엇인지 모르고 지냈던 그녀는 진우를 자꾸 외면했다.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자신을 알면서도 정작 다가갈 수 없었다. 그 사람의 존재가 거대해서, 감히 넘볼 수준의 남자가 아니라서, 이 남자와의 로맨스는 꿈같을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얼마나 허무해질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혜진은 진우에게 빠져드는 감정을 모른 척하기에 바빴나 보다.

 

시종일관 그 남자의 정체가 궁금하여 놓기 힘든 책이다. 이런 남자에게 늘 취향 저격당하는 나란 여자. == 제목에서 느껴지는 계절의 고독함이 책 전체에 물들어 있다. 어른들의 연애는 마냥 달콤하지 않다. 솔직히 마냥 달콤한 이야기는 또 별로고. ㅋㅋㅋㅋㅋㅋ 달콤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연애, 진정한 어른들의 연애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냥 이대로 묻히는 책이 될까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이다. 나른한 봄날에 읽는 쓸쓸한 가을의 정취라니. 지금의 계절이 아쉽긴 해도 즐기기엔 무리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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