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망하다
진진필(이주연) 지음 / 스칼렛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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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성격과 예민한 입맛으로 찬모가 오래 버티질 못했다. 그나마 시혁의 곁에 오랜 시간 머물렀던 예산댁이 떠나고 찬모로 새로 들어온 여자 정민수. 영후각의 찬모로 있던 이의 외동이라던 여자. 허름한 옷차림에 비해 이질적인 외모, 허리가 요동치며 절룩대는 다리, 가느다란 목에 걸린 단정한 스카프. 게다가 말도 제대로 못하는 말더듬까지. 민수를 향한 뾰족한 마음은 시혁의 신경을 묘하게 거슬리기 시작한다.

 

스카프에 가려져있던 목의 화상 자국 때문이었을 거다. 무슨 목적이 있든 자신을 속이고 들어온 사람이라 생각했다. 고작 참모 따위에 곤두 세웠던 신경이 순식간에 우스워졌다. 동정인지 짜증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에 시혁은 답지 않게 민수를 곁에 두기로 한다. 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고, 눈 한 번 마주치지도 않고, 말 섞기는 더더욱 힘든 이 여자와의 생활이 가능하기는 할까.

 

찬모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듯이 시간적 배경은 아주 조금 옛날이다. 자동응답 전화기가 등장하던 시절 정도. 음울한 글의 분위기가 민수와 꼭 닮았다. 성치 않은 몸으로 정갈한 밥상을 차려내며 시혁의 곁을 맴도는 민수. 시혁은 민수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저 눈에 보이는 단편적인 걸로 이 사람을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초반의 분위기로 봐서는 이걸 로맨스 소설이 맞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갸웃. 어쨌든 남자와 여자가 만났고 한 집에 붙어 있으니 없던 정도 생기기 마련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끝까지 내달렸다. 쉽게 쭉쭉 읽히는 글은 아니었어도 떡밥을 덥썩 물었더니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게 책장이 넘어가더라.

 

초반과 후반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떡밥의 정체(?)가 드러나고 힘이 조금 빠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내 개인의 취향이라면 초반의 분위기가 훨씬 더 좋았다. 미스터리 냄새도 조금 나면서 긴장감이 살아있는 글. 민수의 절룩대는 다리가 묘하게 신경을 긁는 것처럼 읽는 내내 한 눈을 팔진 못했다. 최대한 책의 내용은 피하면서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포가 있는 글은 아니어도 재미가 반감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한 호흡으로 쭉 읽어야 더욱 재미있는 글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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