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익숙한
심윤서 지음 / 가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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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묻는다. 너의 인생 영화는 무엇이냐고. 나는 그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한다. ‘러브 액츄얼리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바뀌어도 늘 나의 대답은 똑같다. <낯설지만 익숙한> 속의 갑이가 너무 낯이 익었다.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한 갑이가 불편하면서도 반가웠던 건 아마 영화 속의 사라 때문이었을 거다. 심각한 불안 증세에 시달리는 오빠의 시도 때도 없는 전화에 짝사랑하는 남자와 격한 키스를 하다가도 오빠에게 달려가야만 했던 사라의 모습이 내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낯설지만 익숙한 갑이의 모습과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라의 쓸쓸한 모습이 겹쳐져, 혹시 갑이도 사라처럼 쓸쓸하게 될까 안절부절, 못난 마음만 탓했더랬다.

 

세상의 잣대로 결코 평범하지도, 평범할 수도 없는 준이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갑이 때문이었다. 엄마와 영화를 보며 슬픔과 기쁨을 공부하던 어린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감정이란 것에 무지했다. 감정적인 결함으로 타인을 만나는 것은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 투성이었다.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하고 준이의 홀로서기가 가능했던 건 바로 사랑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 덕분이 아니었을까.

 

서 을녕, 너란 남자. 이기적이게도 갑이만을 간절히 원한 남자. 끓어오르는 청춘의 열정만으로 갑이를 사랑하기엔 그때 이 남자의 그릇은 작았는지도 모르겠다. 7년 전, 이기적인 욕심으로 갑이에게 나를 잊으라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갑이의 무심한 눈빛을 마주했을 때 을녕은 그제서야 실감했다. 갑이가 정말로 나를 지워 버렸다고. 갑이의 기억 속에는 을녕이란 남자가 없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7년의 시간이 갑이와 을녕의 앞에 놓인 높은 벽이었다. 을녕은 욕심 때문에, 갑이는 미안함 때문에 서로를 놓아주어야만 했던 안타까운 시간들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을녕은 진지한 고민 끝에 용기를 내기로 한다. 갑이의 진심을 마주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돌아온 을녕의 마음이 아릿하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이들의 사랑에 젖어 들었다. 금방 그치리라 생각했던 가랑비는 소나기가 되어 흠뻑 적셨다. 나도 모르게 차올랐던 뜨거워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울컥해 버렸다. 갑이와 을녕, 준이와 은하가 보여주는 사랑에 따뜻해지던 마음들. 갈무리하지 못한 감정들이 툭툭 튀어 올라와 혼란스러워도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증명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거, 낯설지만 익숙한 사랑. 태양에서 세 번째 돌 위에서 갑이와 을녕이도, 준이와 은하도, 나도, 당신도, 우리도 사랑을 한다. 가슴 저미도록 찬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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