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1930 1
김민주 지음 / 단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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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오빠와 친일파인 아버지 사이에서도 티 없이 밝게 자란 석정. 오빠를 따라 갔던 가스카노 미하로의 공연을 보고 신무용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한 눈에 반해 신무용을 배우기로 결심을 하고 미하로에게 부탁을 하러 찾아갔지만 미하로는 단칼에 거절한다. 석정은 배우고 싶다는 자신의 굳건한 의지를 내보이려 옷을 벗기 시작하는데 우연히 마주친 이치카와 타이요우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금발머리 미남자의 기묘한 매력에 압도당한다.

 

일본인이지만 영국인의 피도 물려받은 이치카와 타이요우. 혼혈로 일반 동양인들과는 다른 외모에 어딜 가나 늘 관심의 대상이다. 게다가 천왕의 신임을 얻고 있는 정치 명문가의 유일한 아들이니 그 관심은 하늘을 찌를듯하다. 한량처럼 지내던 어느 날 눈앞에 나타난 석정에게 한없이 이끌리고 있음을 깨닫는 타이요우는 석정이 있는 무용연구소를 들락거리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그 잔인했던 시절.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운명처럼 만나 가슴 시리도록 아픈 사랑을 했다. 생채기만 가득한 사랑에, 서로에게 상처뿐인데도 이토록 절절한 사랑이라니... 찡해지는 코끝이 아려와 결국엔 눈물을 쏟아내고야 만다. 가슴이 답답해져 한숨이 푹 내쉬어져도 책장을 덮을 수 없었던 것은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이라는 단순명료한 진리 앞에 숙연해졌기 때문이었다.

 

석정은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사는 여자였다. 온통 혼란으로만 가득했던 그 시절에 명분, 사상, 나라, 이념에 통제 당하지 않고 굳건하고 초연하게 자신의 길을 묵묵히 내딛었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한 그녀를 보고 있으니 그녀보다 그 시대가 원망스럽다. 그녀를 벼랑 끝에 서게 만든, 물리적인 통제만 가득했던 그 시대 말이다. 아마 타이요우에게도 원망스러웠던 시대였을 거다. 온전히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이들의 앞에 놓여있는 길은 순탄치 않은 가시밭 투성이었으니까.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본 느낌이다. 사랑이 있지만 아픔도 가득했던 이야기여서 먹먹해지는 기분이다. 청춘의 무모함으로 이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겠다.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은 무기가 되어 석정과 타이요우를 아프게 찔러댔으니까. 사랑이 없어서 못 사는 게 아니라 서로가 아니면 사랑을 할 수 없다는, 헌데 그 사랑이 아니면 또 죽을 것 같다는 석정의 말이 사무치도록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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