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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새가 말하다 1
로버트 매캐먼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12월
평점 :

처음 만나는 작가에 대한 설렘은 늘 존재한다. 전작들이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면 그 기대치는 높아지는데 <밤의 새가 말하다>의 로버트 매캐먼이 나한테는 그랬다.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읽기도 전에 지치게 만드는 책의 두께는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절필을 선언하고 10년 만에 독자들 곁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가 책 속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판사 우드워드와 서기 매튜는 재판을 위해 파운트로열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마을에 도착한 우드워드와 매튜는 마을의 시장 비드웰을 만나고 마녀로 몰린 레이첼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레이첼이 마녀로 몰리기까지의 증거가 너무 확실하고 증인들의 증언도 빈틈을 찾을 수가 없다. 그녀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이미 마을 주민들의 마음속에 뿌리 깊게 자리한 의구심은 옅어질 줄 모른다. 매튜는 마녀가 아니라는 레이첼의 결백을 믿고 그녀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을에 일어나는 의문의 사건들로 시간은 자꾸 지체된다.
애초에 레이첼은 혼혈로 태어난 그녀의 외모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늘 마을 주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인공이었다. 사람들의 편견이 낳은 소외는 마녀라는 이름이 대신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의 편견과 무지 속에서 과연 진실은 찾을 수 있을까. 범인의 또 다른 이름인 악마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녀가 진짜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녀는 존재 자체가 기묘하고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마녀를 소재로 한 것들은 언제나 귀가 솔깃해진다. 마녀는 소설이나 영화 등 인간이 허구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닌 역사 속에 실제 존재했었다. 마녀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 일단 마녀로 몰리게 되면 화형을 면치 못했다. 죄가 없어도 군중심리가 이루어낸 화형이란 극단적인 처형은 잔인한 일이지만 그렇게 몰아간 인간들의 숨겨진 모습일 뿐이다.
우드워드 판사와 그의 서기 매튜가 파운트로열 마을로 온 뒤 6일간의 이야기다. 읽는 내내 습하고 눅눅한 기분을 떨쳐내기 힘들다. 복잡하고 정교하게 꼬인 의문의 사건들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흔들리는 중심에 한 번 어긋날 법도 한데 뚝심으로 끝까지 힘 있게 밀고 나간다. 책의 두께에 읽기도 전에 질려버리는 단점이 있긴 해도 워낙 탄탄하게 글 잘 쓰는 작가이니 미리 겁부터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 빠른 스피드의 전개는 아니어도 마녀재판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군상을 세밀한 필치로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소설 속 주인공인 판사의 서기 매튜가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하는 성장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스터리든 성장기이든 책 두께 때문에 외면받기에는 아까운 소설임은 틀림없다.